brunch

매거진 쓰는 낭만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 Nov 09. 2015

너와 나의 구강기

서른,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 010


둥이씨가 못 끊는 건
구강기의 문제라 할 수 있겠지


그녀가 말했다. 푸근한 눈빛, 여유 있는 미소를 띤 그녀는 친근감 있는 외모다. 그 앞에는 20대 초반을 사는 무기력한 내가 앉아 있다. 평소 그녀를 신뢰하지 않았지만, 구강기의 문제라는 말에 그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위로가 됐다.


주변에서 끊은 것이 기적이라 할 정도로 담배를 좋아했다. 우울한 일, 골치 아픈 일은 연기와 함께 날려버릴 수 있었으니 세상에 이와 같은 마법이 있다면야 거절할 사람 하나 없겠지. 각기 다른 담배마다 필터 안에 꽉 들어찬 이파리와 독성물질들이 저마다 다른 맛을 낸다. 느끼한 연기 맛, 어딘지 비릿한 향, 화하게 매운 맛, 탄산과 활명수를 섞은 듯한 뒤 끝. 이맛 저 맛 맛보는 재미에 새로운 담배를 피워보기도 했다.



환자는 언제나 옳다


드왈드라는 정신분석가는 "환자는 언제나 옳다"라고 했다. 이유는 그가 어떤 증상을 보이든 당시 그로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아기 엄마가 된 지금,  그때의 나를 후회하거나 부정하지는 않는다. 가끔 염려하기로는 작고 귀여운 저 아기가 어느새 훌쩍 커버려서 엄마 몰래 담배를 피운다면, 그리고 그걸 알아버렸다면, 어떤 위로가 필요할지 혹여 내가 아이에게 준 상처는 없는지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싶다. 담배가 때마다 그럭저럭 위로가 될 수는 있지만 본질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걸 오랜 시간 그것을 곁에 뒀던 나이기에 누구보다도 잘 안다.






프선생님(프로이트)은 인간의 생애 초기 발달과정을 탄생 이후부터 약 12세까지 5단계로 나누었다.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성기기(생식기)로 나누어 설명했다. 처음 심리성적 발달이론을 들고 나왔을 때는 야단 났었다고. 그럴 만도 하다.


웃을 때가 유독 예쁜 아기들을 성적 욕구를 가진 본능 덩어리로 규정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동시에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여전히 성적 요소를 다분히 묻힌 창작물들은 옳건 그르건 이슈의 중심이니까) 금욕주의로 가득 찬 비엔나에서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그의 이론은 결국 읽히고 받아들여졌다. 무의식을 설명하는 그의 이론은 알 수 없는 이유로 고통당하는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는데 효과 적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가 말하는 심리성적 발달이론의 구강기는  생후로부터 12개월(1년), 길게는 18개월(1년 6개월)까지다. 구강기는 엄마의 젖을 빨며 식욕과 쾌락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단계로 기본적인 양육을 필요로 하며, 그렇지 못하면 후에는 탐욕이 생길 수 있다. 구강 만족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구강 고착이 생기는데, 후의 성격 문제는 타인에 대한 불신이나 타인의 사랑에 대한 거부, 친밀한 관계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구강 고착시 나타나는 성격을 구강형 성격이라고 하는데, 성격의 예로는 과도한 의존성, 지나친 낙관주의 혹은 비관주의, 입과 관련된 문제 행동적 특성이 이것이란다.




서두에 상담자를 신뢰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9년 전 선생님이 딱 맞추셨네. 이렇게 나중에서야 심리학을 공부한다며 책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떠올리기를 "나는 구강고착인가"한다. 고착은 특정 발달단계에서 욕구가 과대 충족되거나 과소 충족될 때 그 단계에서 성장을 하지 못하고 일종의 발달 정지가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구강 고착이 의심되는 여자들의 식욕이란

8년 동안 함께한 담배라는 녀석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끊을 때는 19개나 남은 녀석을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 개찰구를 지나기 전 쓰레기 통에 매몰차게 던져 넣었다. 함께한지 8년, 그리고 헤어지고 6년이 지났다. 오늘도 여전히 내 옆에는 커피와 달달한 것들의 비닐 껍데기가 너저분하게 널려있다. 값이 제법 나가는 커피로 속을 달래던 것도 녀석과 헤어지기 위한 시도를  하면서부터, 좋아하던 먹는 것들에 '단 것'이 추가된 것도 그렇게 헤어지기를 바라던 그것과  헤어지면서부터다. 누가 담배를 끊으면 부자가 된다고 했던가, 그저 새로운 대체재가 생겨날 뿐이란다. 이놈의 살은 빼야지 하면서도 어째서 다이어트는 언제나 내일, 혹은 다음 주부터, 아니면  다음달부터가 되는가.


(나를 포함한) 여자들의 식욕은 엄청나다. 그들이 모이면 먹고 떠들고를 반복한다. 10시간도 모자라다. 전화를 할 때면, 세 시간을 떠들어도 꼭 마무리는 이렇게 한다.



"그럼, 내일 만나 이야기해"

그녀들은 모두 구강기에 아주 약간의 문제가 있었음이 틀림없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녀들의 만남과 활동 내용은 대부분 '입'의 활동에 치중해 있으니.



우리는 위로가 되는 것에 의존하고 싶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여자들의 먹고 또 먹는 상태를 구강기의 문제라며 웃자고 비유를 들었지만, 이는 '여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 먹고자 하는 욕구, 물고 있고 싶은 마음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위로다.





젖을 물고 자려는 아기를 어르고 달래서 재웠다. 어느 날은 꼭 필요할 것 같아서 보챌 때 얼른 물려 재우기도 한다.


아기와 함께 구강기라니, 나도 모르게 동지애가 생긴다. 우리는 앞으로 성장을 해야 하니, 동지는 동지다.

너도 한 살, 나도 한 살. 엄마 된 지 한 살이다. 아직 100일도 안 된 한 살, 엄마와 딸이다.



딸아, 우리 이 구강기를 잘 보내자꾸나






덧, 생후부터 1년 아기들의 구강기

아무래도 프로이드는 육아에 흥미가 있었나보다. 아기를 보다보면 정말로 입에 모든 에너지가 쏠려 있다는 게 보인다. 먹겠다고 버둥대거나, 손을 촵촵 거리면서 빨고, 빨면서 자다가 물고 있던 것을 살며시 빼내면 빨던 입모양을 쪽쪽 반복한다. 자기 전에는 물고 빨 것을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가 나기도 한다. 다같은 젖병인데 어떤 젖병은 먹고 어떤 것은 먹지 않는다. 경우에 따라서 각자의 취향이 있어 모유만 먹겠다고 하는 아이가 있고, 분유만 먹겠다고 하는 아이가 있다. 빠는 힘이 세져서 100일 이후에는 젖병은 물지 않는다는 아이도 있다. 사람마다 기질과 성향이 다른 것처럼 아이마다 다르다. 신기해라.




<참고도서>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김혜남

프로이트의 의자, 정도언

상담심리학의 기초, 이장호, 정남운, 조성호 공저


매거진의 이전글 낭만, 비오는 수요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