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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Nov 26. 2015

고시원 블루스

서른,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 011



약 3.6㎡ 넓이의 누워서 바라보는 천장, 보이는 그대로가 혼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 그게 다였다. 창문이 있는 방이라 3만 원 정도 값이 더 나갔다. 창문은 큰 편이었다. 가로 1.2m, 세로 1.5m 정도. 방 크기에 비해 큰 편이다. 창문을 열면 0.6미터에서 1미터 정도 사이를 두고 벽이 보인다. 사이를 뒀다 뿐이지 창문을 열면 외기와 통할뿐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쓰레기 약간, 먼지 약간이 널브러져 있었던 것 같다. 아주 더러운 정도는 아니고, 뭐 그럭저럭.


화장실은 공용이다. 샤워실도 마찬가지. 화장실이 딸린 방에 살아본 친구들 말로는 한 달에 50만 원 정도, 상태 좋고 깨끗한 방이라면 그 이상이라 했다. 볼일을 보고, 간단한 샤워를 할 수 있는 방이었다면 좀 더 산뜻한 일상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 정도의 돈을 지불할 수는 없었다. 방세로 나가는 돈은 20만 원 내외로 이미 충분했다. 돈이 없었다. 돈이 문제였지.


돈 말고, 그 방도 그 방에 있던 나도 문제였는지도. 고시원인데 고시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집을 나오면서 읽을만한 책을 잔뜩 갖고 나왔지만, 부끄럽게도 한낱 짐짝에 불과했다. 편입 준비한다고 집을 나와서 편입 준비를 하는지 알바를 하는 건지 술을 먹는 건지 당체 애매해서 떳떳하게 말하기는 뭐한 그런 일상이었다.


생활비를 해결하고, 그 외 편입에 필요한 학원비 등 기타 비용을 해결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고시원에 들어가 처음에는 PC방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당시 PC방이 한참 유행이었다. 시간도 벌고 돈도 벌고 싶어서 8개월 정도 야간 알바를 했다. 야간 알바 후 학원에 바로 가서 공부를 하고, 고시원에 돌아와 화장실 칸막이로 칸칸이 나뉜 샤워기 앞에서 대충 몸을 씻고, 잠깐 눈을 붙였다가 다시 아르바이트를 갔다. 주말이면 좁은 침대 위에 몸을 뉘고 <마이걸>을 봤다. 뚱뚱한 아날로그 텔레비전 화질이 구려도, 배가 고파도, 꼼짝 않고 누워 보면서 외로워했다. 우습다. 고시원 생활의 추억이 외로워하면서 보던 <마이걸>이라니.


작은 방에 누워 <마이걸>을 보던 처량한 청춘, 어쨌든 그랬다. 그 곳에서 1년을 어찌어찌 보냈다. 운이 좋아 어찌어찌 편입도 했다.


작은 방에서 외롭게, 그래도 씩씩하게, 가끔은 처절하게 하루를 나던  그때. 지금도 누군가는 좁은 방에서 피곤한 몸을 녹이고, 주말이면 외롭게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겠지. 옆방 사는 여자가 언제 들어오는지,  밤마다 술에 취하는 건너 방 여자는 무슨 사연인지 별로 궁금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아이러니 속에 오늘도 바닥까지 닥닥 긁어모아 힘을 내보는 누군가에게 나도 그러하다며 손을 내밀고 싶다. 


외로움을 아는 동지 아니냐며 슬그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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