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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Jan 02. 2016

괜찮아, 보통이야

서른,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 012


보통내기가 아니야



이 말을 들을 때면 우쭐해지던 나. 우쭐해져서 보통이 아니기 위해 무언가를 더 하려던 나. 그러다 지쳤나 보다. 노란 표지가 마음에 들어 펄럭거리며 펼쳐 본  책날개에는


모든 것은 어느 날, 자신이 결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섬뜩한 자각을 하게 된 어떤 사건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옆에 두고 보고 싶은 마음에 그 책을 사들고 집으로 왔다.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다. 책은 어느 사이 좋아하는 책이 되어 가끔 들춰보는 책이 되었다. 심드렁하고, 가끔은 힘이 빠져있기는 해도 있는 그대로라서 보통이 아니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나와 같은 누군가에게 잔잔한 위로가 될지도 모르는 책이다.


또 그럴 수 있을까 싶게 필사적이었다. 아등바등 편입을 하고, 취업을 하고, 그 돈으로 유학을  가려했다.  우리말은 참말 매력적이다. '아등바등'이라는 말이 딱  그때를 살던 내 모습이다. 무엇이 되기 위해 꾸역꾸역 했다. '왜'를 잊고 점점 맹목적이 되다 보니 무엇이 되려는 목표만 있고,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은 생지옥이 되어가더라. 문득 정신이 들어 '보통의 존재'를 돌아보게 되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보통의 존재', 지극히 평범한 사람, 지구에 단  하나뿐이긴 하지만 그저 '보통의 누구'라는 사실 말이다. 만약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이토록 헤맸다면 아까운 힘을 애꿎은 곳에 낭비하며 시간을 보낸 것에 불과했다.


학교에서도 그럭저럭 이거나 중간보다 못한 설계 센스(건축학을 전공하는 건축가 지망생이었다)를 발휘 중, 꿈은 크다만 생각처럼 쉽지 않고, 도전하는 공모전은 줄줄이 아웃되는, 취업을 하고 싶어 원서를 써보지만 이력서와 자소서에 딱히 쓸 말은 없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 그래, 난 '보통의 존재'다.


스물넷, 청춘. '보통내기'가 아니기 위해 필사적이던 나는 '보통의 나'를 인정하게 된다. 이십 년간 끌고 온 고집은 생각보다 너무 쉽게 녹아버렸다. 인정한 뒤 바로 발걸음이 가벼워지진 않았지만, 덕분에 '보통의 연애'를 할 수 있었고, '보통의 삶'의 감사함도 알게 되었다. '보통'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어깨에 빡 들어간 힘을 살짝 느슨하게 하고, 앞만 보던 눈에게 옆도 볼 수 있는 자유를 주는 일이었다.   


가끔 드는 생각으로 보통이 아닌 삶을 상상하기도 한다. 스스로 생각하는 보통이 아닌 비범한 삶에 대한 상상은 '대단한' 사람이 된다는 상상이다. (부끄럽게도 상상보다는 망상에 가깝다) 출중한 능력은 기본, 명예롭고 우아하며, 많은 나라들을 내 집처럼 오가는 사람. 여러 국가에 혹은 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 주절주절 이하동문.


왜 이런고 했다. 엄마가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다 보통이 아닌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를 읽고 '옳다구나' 하게 됐다.


전형적인 유명인사의 유년기에는 (거의 틀림없이) 거절의 경험이 도사리고 있다. (중략) 한때 스스로를 얼마나 투명인간처럼 느껴야 했는지가 훗날 얼마나 간절히 특별하고 널리 알려진 사람이 되고자 하는지를 결정한다. 안타깝지만 당연하게도, 명성을 획득한다고 해도 어린 시절에 겪은 모멸감은 거의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품은 진짜 소원은 (음악, 조각, 거래 성립 등에서 거둔) 성공을 통해 부모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 게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것이다. 따라서 명성을 얻은 바로 그 순간에 공허감이 따라오기 십상이다. (중략) 이와는 대조적으로, 권리를 주장할 필요도 없고 웬만한 직업에도 만족할 수 있는 행복한 무명의 성인은 이런 시나리오에서 진정으로 특권을 가진 사람이다. 

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 2014


그랬다. 명예에 대한 욕심을 가지게 된 뿌리는  부모님으로부터 온 '거절감'이었다. 다행이다. 그래도 지금은 한창의 20대를 살던 나처럼 욕심으로 고통스럽지는 않다.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행운이 어느 날 나에게 찾아왔다. 때로는 심각하지만 이보다 달달할 수 없는 '연애'라는 이름으로 찾아온 행운은 괜찮은 부분도 있고 유독 못난 부분도 있는 나의 '보통' 모습을 오늘 더 감사하게 한다.


"있는 그대로" 사랑을 받게 되니, 이제 "보통내기가 아니다"는 말을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전한다. 치킨을 사줘야 상냥한 표정과 말투로 대하는 나를 즐거운 마음으로 데리고 살아주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2016년 새해도 잘 지내봅시다라고.




덧, 우리는 '보통'입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보통'이라서 좋은 점들은 수도 없이 많아요. 아직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 새해에는 보통의 너와 내가 만나서 소중한 우리가 될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아등바등하지 말고 반짝반짝 나를 닦아봅시다. 저도 여전히 반짝반짝 닦기 위해 노력하는 것 보다  아등바등해서 뭐라도 빨리 해야 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날들이 수두룩 빽빽하지만 그래도 다시 고쳐 생각하곤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보통의 날에, 
나에게 맞는 때를 사는 것.

느리지만 꾸준히,
뛰지 말되 쉬지 않고.

하지만 인생의 쉼표는 잊지 않고
하나씩 챙겨가면서.





자, 자신이 보통의 재능과 운명을 타고난 그야말로 보통의 존재라는 것도 알았고, 세상이 공정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세월이 갈수록 나를 가려주던 백열등이 수명을 다해가고 있음도 직시하게 된 지금.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나의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가. (중략) 그러나 너무 일찍 자신에게 주어진 불리한 여건에 수긍하거나, 운명을 거역하기 위한 노력을 쉽사리 포기한다면 ... 하여 보통의 존재는 역시나 보통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게 된다면 ... 이야기의 결말이 조금은 허무하지 않을까. 주인공의 미래가 몹시도 궁금해진다. 

보통의 존재, 이석원, 2009




주인공의 미래가 몹시도 궁금해진다 








<문장수집>

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

보통의 존재, 이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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