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육아, 낭만 한 스푼
스무 살, 그 이전에도 그렇지만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엄마가 되겠다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다. 결혼에 대해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고, '엄마'라는 단어는 어쩐지 '희생'만을 요구했다. 격동의 80년대생, 내가 자라던 시절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그랬다. 어려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혹은 출생 순서에 따라서 다른 형제들에게 양보해야 할 일들 투성이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 '내 것' 없이 온전히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대였다.
쉼 없이 움직이던 엄마를 보며 늘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철없던 나는 엄마가 무척 부지런하다고는 생각했지만, 힘들겠다는 생각은 못했다. 이제야 힘들었겠구나 한다. 어쩌면 무의식 중에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결혼을 아주 늦게 하거나 안 해도 괜찮겠지 했겠지.
그런 내가 스물여덟에 결혼을 한다. 그리고 스물아홉 크리스마스이브에 선물처럼 찾아온 아기 티끌이. 그 날 병원에 갔더니 아기는 0.2cm 콩쾅콩쾅 뛰는 심장을 가진 벌써 6주를 살아온 생명이었다. 그렇게 티끌 이를 만나고 엄마가 되었다.
티끌이는 소담이가 되었고, 나는 엄마가 되었다. 소담이를 만난 이후 오늘은 49일, 엄마라서 얻게 된 몇 가지를 적어본다.
영국문화원에서 비영어권 102개국 국민에게 '가장 아름다운 영어단어'를 조사해 70위까지 순위를 발표했다.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1위가 mother 어머니(엄마)란다. 워낙 유명한 순위 발표라 모두들 알고 있었겠지만, father는 70위권 안에도 없다는 건 웬일.
누군가에게 평생 엄마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 '엄마'로 불릴 수 있다는 사실은 축복이다.
어떤 형용사로 표현해야 적합할까를 고민했다. 사전에서는 '덩이진 물건이 말랑말랑하고 몹시 매끄러운 느낌'으로 정의한다. 아기를 만나게 된 이후 자주 느끼는 몽글몽글이다.
아기를 낳고 처음 볼을 맞댔을 때의 몽글몽글한 기분. 그리고 처음 젖을 물리면서 알게 되는 마음 한편이 뜨뜻해지는 느낌, 게다가 한가득 설렘은 보너스. 여러 가지 몽글몽글하고 폭신한 감정들을 시시때때로 느낄 수 있다. 아기가 아침에 눈을 뜨고는 살며시 웃을 때 역시.
집안일만큼 반드시 필요하면서 해도 해도 티 안나는 일을 찾기 어렵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워낙 귀찮아하고 안 해 버릇하다 보니 살림은 최소한으로 하자는 주의다. 그런데 소담 24시가 시작되니 최소한으로 하려던 살림도 별수 없이 노동의 강도와 양, 심지어 질도 (양질의 노동) 늘어나게 된다.
갓난아이는 거의 상전처럼 모시게 되는 일이 많다. 그런데 효율이 떨어지게 일처리를 시키는 상전과 보내는 하루가 쉽지 않다. 아기는 너무 자주 먹는다. 이론적으로는 하루에 8번 정도 먹이라 하는데 모유를 먹이면 이것보다 더 먹을 때도 있다. 아기에 따라 다른데 어떤 아기는 계속해서 물고 있으려 한다. 자주 먹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먹으면서 싸는 것도 문제다. 이것도 아이에 따라 다른데 우리 집 아기는 먹다가 싸면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다시 드셔야 한다.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식사를 멈추고 발을 바둥바둥한다. 기저귀를 봐주지 않으면 어느 때는 화을 내고 어느 때는 그냥 잠을 자버리기도 한다. 밥을 먹다가 똥을 싼다라 (... )
이 외에도 비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할 일이 많더라. 화장실에서 빨래를 하다가도 아기가 울면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나가봐야 하니까. 이 정도는 귀엽다. 머리를 감다가 물과 비누가 흐르는 채로 나와야 한다거나 라면 끓여 먹고 싶어서 물만 세 번 끓였지만 결국 못 먹는 일도 있다.
아기와 하루 종일 붙어 생각해본다. 이렇게 매사가 비효율적이지만 매일을 가치 있게 느껴야 한다니, 한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직접 몸으로, 마음으로 깨닫는다. 물론 이렇게 쌓여가는 일상이 늘 가치 있고, 희망 찬 하루로 느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어떻게 태어나고 자랐는지를 알게 되는 건 임신기간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한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 수고로 가득 찬 많은 날들로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곧 알게 된다.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와 단 둘이 보내면서 아기를 통해 어릴 적 나를 마주하게 된다. 이제 막 한 달 살아본 나는 어땠을지, 우리 엄마는 이 무렵 어떤 기분이었을지 생각하게 된다. 이러다 보니 많은 부모들이 하게 되는 실수가 아이를 또 다른 '나'라고 착각하게 되는 일인가 보다. 아이를 통해 나를 보게 되는 것 까지는 좋다. 하지만 아이는 내 분신이 아니므로 엄마는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아이와 나를 분리해서 보는 연습이 필요하겠다. 아이와 자신을 분리할 수 있는 부모가 된다면 조금 더 성숙한 인간이 되겠지.
엄마의 엄마, 그리고 우리 엄마, 세상을 어찌어찌 살아내고 있는 다른 엄마들을 조금 더 알게 된다. 누워서 먹고 자는 아기 하나로 나에 대해서, 엄마에 대해서도, 심지어 '엄마들'에 대해서도 생각한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되는 선순환도 있더라.
나를 닮은,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작은 생명체와 24시간 붙어있게 되면서 끈끈한 정이 생긴다. 말러는 유아와 엄마의 공생관계를 가장 강력한 애착관계라고 표현했다.
누군가와 오랜 기간(6개월 이상을 매일같이)을 하루 종일 붙어 있었던 기억이 없다. 있다면 유일하게도 막 태어났을 나를 엄마가 키우던 그 때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애착관계를 만들어간다. 함께 먹고 자면서 아기는 엄마와 강력한 애착관계를 형성하는데, 엄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아기가 독립할 단계가 되면 엄마도 아기에게서 독립할 단계에 이른다. 엄마도 아기와 함께 자란다.
아이 키우는 일은 생각했던 것만큼 고되다. 이렇게 힘들어도 아기가 한 번 웃어주면 오케이.
칭얼대고 보채는 아기를 달래다가 기분이 좀 나아진 아기가 살며시 웃을 때면 고단해서 몰려왔던 짜증이 같이 녹는다. 아기는 울다가 웃었을 뿐인데. 그렇게 부모님이 왜 나를 (돈도 안 되는, 그러면서 고된 일상을 가져다준) 키우셨는지 알게 된다.
아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예전부터 동생과 한다는 소리가 '사슴이나 말들은 몇 번 핥아주면 걷는데, 왜 사람은 (...)'이라는 소리.
물론 아기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건 알고는 있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라 생각) 돌볼 생각을 하면 아득해졌다. 나에게 아기의 존재는 '그냥 아기'. 그뿐이었다. 이제는 안다. 아기는 충분히 예쁘고 사랑스럽다.
소담이에게 "엄마가 해줄게."라고 말한 다음에 처음에는 혼자 얼마나 어색했는지 몰라요. 지금은 많이 자연스러워졌어요.
아침에 아기가 눈을 마주치며 웃을 때, 아침부터 몽글몽글해요.
아기 코가 어제부터 무척 그렁그렁해요. 숨을 못 쉬고 잘 때도 힘들어하고, 잘 먹지도 못하고 그랬죠. 하루 종일 아기 콧구멍만 들여다봤어요. 저녁에는 병원에 급하게 갔다가 약국 들르는 길에 입으로 코 빼주는 기구를 샀어요. 집에 하나 있는데도 괜히 샀어요. 집에 와서는 언제 환불하나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하면 코를 잘 빼줄 수 있을까 고민 고민하다가 전동식 코 빼주는 기구를 사기로 했거든요.
아기를 키우는 일은 생각 외로 나를 많이 돌아보게 해요.
누구와 친하다고 말하기 어렵잖아요. 아기와 친하게 지내보려고요.
엄마 아빠는 돈 벌고 노동하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아기 마음을 얻으려 하잖아요. 아기는 웃음 한 번이면 되는데.
좀 오래된 일이긴 하지만, 나도 그랬고 당신도 그랬죠. 그러니 우리 힘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