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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Sep 20. 2017

썸, 중독을 생각하다

썸, 연애, 감정 그리고 관계중독 _양귀비



썸, 중독을 생각하다: 썸, 연애, 감정 그리고 관계중독

* 오늘 지칭하는 여자 A는 특정 성별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편의상 정한 ‘불특정 다수 중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 정도로 생각해 주세요.     

   

여자 A는 늘 아쉬운 연애를 해요. 짧은 주기의 연애이기도 하지만 연애에 접어들지 못한 썸으로 끝난 잠깐의 만남도 제법 많았죠.     


뉴스에서는 썸에 대해 안타까운 사회현상이라거나, 개인화되는 사회 속에 어떠어떠한 현상이라는 둥 나름의 분석을 쏟아놓기도 하더군요. 혹자는 썸의 종착역이 연애라 하기도 하고 연애의 종착역이 결혼이라 말하기도 해요. 그런데 세상일이 정해진 대로 흘러가지 않듯 결론이 항상 그렇지도 않아요.

    

오늘은 우리가 그토록 원하지만, 사실 독인 줄도 모르고 빠져 사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요. 말하자면, ‘중독’에 대해서요.     


썸이라는 것도 그래요. 설렘으로 시작하지만 짚어보면 이 감정에만 중독되어 있는 경우가 있어요. 이 글에서는 편의상 이런 상태를 ‘썸 중독’이라 부르겠습니다.


만약 연애를 시작하기 전 과정에도 기승전결이 있다면 썸을 타면서 ‘연애를 할 것만 같은 기대가 고조되는 그 시점’이 ‘전’에 해당될 것 같네요. 연애 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상태를 썸이라 한다면 설렘이 최고조가 되는 시점도 바로 '전'에 해당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썸이라는 상태에 중독된 것은 아무래도 '설레는' 감정에 중독된 상태가 아닐까 싶어요. 설렘이라는 감정은 매일 똑같이 느껴지는 일상을 새롭게 보이게 하는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매력이 있어요. 그런데요, 연애를 하게 되면 이전과는 다르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설레는 감정이 아무리 좋아도 ‘설렘’만 추구할 수는 없어요. 이 한 가지만 쫓다가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니까요.




“Lieben und Arbeiten.”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의 궁극적 목표를 사랑과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는 것이라 했어요. 삶을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우리가 건강한 삶을 살아가려면 사랑과 일을 균형 있게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매번 일상을 새롭게 하는 감정에만 몰두하는 것을 건강한 일상을 보낸다고 볼 수 없겠죠. 어떤 날은 기쁘다가, 어느 날은 지루할 수 있어요. 화가 나는 날도 있고, 무기력한 날도 있고, 우울한 날도 있어요. 또 어느 날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평범한 날도 있잖아요. 그런데 설렘이라는 감정에 치중하다 보면 그때그때 찾아오는 다양한 감정들을 깊이 생각해 볼 시간이 없게 되죠.


그래서 우리는 썸을 탈 때는 그렇게 신이 나다가 막상 연애가 시작되면 심드렁해지는 경험이 반복된다면, 중독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어요.     



   


깊은 관계를 원하지만 관계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사회현상이라 하기에는 너무 일반화시키는 감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짚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과거 90년대 이전에 비해 인간관계에 서툰 세대가 20대가 되고, 30대로 성장하는 중이기 때문이죠. 아마 지금 20대, 30대를 지나 그 이후 다음 세대로 채워지는 2030 세대들은 더욱 다양하고 활기찬 양상으로 "썸"과 같은 현상에 대한 단어가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우스갯소리지만, 요즘 초등학교에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도 너무 힘든 현실에 외동아들, 딸들이 많다고 해요. 외동으로 자라는 경우 어른들과의 관계가 굉장히 자연스러워요. 반면, 형제관계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적고, 부모님이 대부분의 것을 도와주고, 친구가 되어 주기 때문에 또래 관계에서는 능동적이기보다 수동적인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아이들이 어떤 과제가 주어지거나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면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선생님을 바라보며 앉아만 있더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관계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비슷할 거예요. '썸'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고, 예전에는 없던 연애하는 법을 알려주거나 연애상담을 해주는 서비스들이 생겨났어요. 그만큼 우리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조심스러워지고, 친구관계, 연인관계가 되기까지 있을 수 있는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말이죠. 친구를 사귀는 것, 연애한다는 것 모두 서로의 노력이 필요해요. 혹은 혼자 사랑하는 중이라면 어느 정도 끈기 있게 기다리는 연습을 동반하기도 하죠. 인간관계를 이어가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고,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우리는 살아가면서 피부로 느끼게 돼요. 이렇게 노력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기 때문에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도 하고요.     




썸 중독, 우리가 썸이라는 것에 끌리는 이유



의존성이 심화 극단화된 상태


<사람 풍경> 김형경의 심리여행 에세이에서는 중독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책에서는 중독을 의존성이 심화 극단화된 상태로 정의하죠.     


왜냐면요, 중독 대상은 흔히 미화되고 숭배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당사자가 환상 속에 만들어 둔 '이상적이고 좋은 엄마'의 대용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친밀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와 친하고 싶어요. 그래서 친구를 만들고 싶다, 연애하고 싶다, 존경하는 선생님의 인정을 받고 싶다 등의 감정을 갖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런데, 만약 우리가 썸이라는 관계에 의존하고 싶은 상태라면, 썸남 썸녀는 많지만 연애는 어려운 여자 A의 경우처럼 '나'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해요.

    

주변 사례를 토대로 정리해 본 다음의 다섯 가지에 나는 몇 개나 해당하는지 생각해보세요. (세 번째, 네 번째 문장은 묶어서 한 가지 문항으로 봅니다)

 



□ 누군가와 연락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 끊임없이 상대방을 들추느라 바쁘다 (솔직한 내 모습은 보이기 싫고 상대방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는 일에 몰두한다)

□ 호감을 보내오는 이성과 (식사와 영화 등) 데이트를 종종하지만 사귀자는 말을 듣지 못한다

□ 그런데, 듣게 되더라도 그다지 사귀고 싶은 마음은 없다

□ 이성에게 친구 이상의 무엇을 주고받기를 원한다

□ 그러다가 가끔은 급하게 사귀기도 하지만 좋지 못하게 헤어지고, 어느 때는 괜찮은 사람을 놓쳤다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와 연락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여자 A는 바쁘다. 계속 연락을 해야 해서다. 딱히 어장관리를 한다 싶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누군가와 꾸준히 연락을 하고, 그런 관계 안에서 위로를 얻는다.     


끊임없이 상대방을 들추느라 바쁘다

나쁘게 말하면 간을 보는 것, 좋게 말하면 확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누군가와 썸을 주기적으로 타기를 반복하기만 하는 그녀에게서 본모습은 그러하다. 나를 보이고 조금은 솔직하게 다가가기보다 그 사람의 인격을 비롯한 기타 배경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연애로 이어지지 않게 되면 상대방의 단점을 부각하며, 연애로 이어지지 않은 상황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호감을 보내오는 이성과 (식사와 영화 등) 데이트를 종종하지만 사귀자는 말을 듣지 못한다

그런데, 듣게 되더라도 그다지 사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여자 A, 그녀는 썸남이든 남자 친구든 항상 누군가와 함께다. 그녀 옆이 완전한 공석이기 어려운 이유는 아무래도 책임과 의무가 없는 관계를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그녀에게 있기 때문이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한다. 상대방도 그녀도 마찬가지.


이성에게 친구 이상의 무엇을 주고받기를 원한다 

이런 만남이 유지되고, 이런 방식의 교제가 지속될 수 있는 이유는 책임과 의무는 없지만 친구 이상의 관계에서 주고받는 '무엇'을 원하기 때문이다. 감정일 수도 있고, 함께 보내는 시간일 수도 있다. 그리고 친구일 뿐인 이성에게는 절대 건넬 일이 없는 보살핌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흔히 '썸' 탄다라고 말할 때, 썸이 안전한 관계라고 할 수는 없다.     


친구인지 연인인지 애매한 중간의 상태를 취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연애보다 두근두근 거리긴 하는데, 사실은 이 두근거림 때문에 간혹 '썸'만 타기를 선택하는 경우도 더러 있더라.    


그러다가 가끔은 급하게 사귀기도 하지만 좋지 못하게 헤어지고

어느 때는 괜찮은 사람을 놓쳤다며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여자 A에게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는 이유는 '나'를 돌아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썸'이 주는 달콤함에만 집중하다 보니 정작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 '나'와 그 사람이 같은 시간을 공유했을 때 서로에게 책임과 의무를 즐거운 마음으로 다할 수 있는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순간에 휩쓸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느 때는 너무 외로운 나머지 '아무거나 주워 먹었다'며 후회하고 또 어느 때는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연애에서 말하는 '타이밍'을 놓쳤다며 아쉬워하게 되는 일이 많다.





         

썸 타기만 반복하는 그녀도, 썸남 썸녀 없는 독자도 우울할 필요 없다

안타깝게도 여자 A와 같은 사람이 많지는 않아요. 우리는 썸의 홍수 속에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요. 그런데 현실은 남중, 남고, 공대, 군대를 나와서 집에 있는 개마저 수컷인 것이 슬픈걸요. 이럴 때, 가진 자는 더 부하고 없는 자는 항상 없는 빈부격차라는 말을 실감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썸 타기로 분주한 A와 같은 친구를 부러워하며 우울할 필요 없어요. 이건 만약 당신이 A와 같은 여자, 혹은 남자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간혹 썸을 타는 누군가가 끊이지 않고 곁에 있다는 사실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이건 자랑할만한 일이 아닙니다.    

 

"난 늘 (새로운) 썸남이 있어요"라는 말은 ‘나는 인기가 많아요’와는 다른 말입니다. 따뜻한 연애를 해 본 지 제법 오래된 당신은 이제 그만 썸이 주는 즐거운 감정의 롤러코스터에서 하차할 필요가 있어요. 썸남 썸녀가 항상 존재하는 그와 그녀를 부러워하는 누군가에게도 썸 타는 대상이 많을 뿐인 썸의 홍수는 추천하지 않아요. 지난번 발행글 <연애와 자존감>에서 강조한 것처럼 여러 썸들로 밀고 당기느라 바쁠 시간에 연애를 시작하기 전 자존감을 먼저 준비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랍니다. 나와 상대를 반짝이게 하는 속이 꽉 찬 연애를 알차게 준비하는 당신이 되길.     




매일의 일상에 약간의 낭만이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낭만윤X꽃처럼



제이드가든, 양귀비 ⓒ2017. 꽃처럼 all rights reserved



당나라 현종의 비, 실질적 황후였던 그녀. 양귀비는 절세의 미인이었다죠. 중독 성분이 있는 아편꽃에 양귀비란 이름을 붙일 정도로 그녀의 미모는 치명적이었나 봐요. 5,6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양귀비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비길 정도로 예쁘다 하여 같은 이름이 지어졌어요. 양귀비는 진통제로도 사용되기도 했지만, 마약성분이 있기 때문에 현재 한국에서의 재배는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어요.


하지만 어디선가 양귀비꽃을 보신 적이 있으실 거예요. 마약성분이 없는 개양귀비가 관상용으로 재배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바쁘고, 예쁘고, 나빠요


우리는 중독을 독려하는 세상에 살아요. 21세기에 살면서 우리가 중독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곳이 '바쁘고, 예쁘고, 나빠서'라고 생각해요. 중독은 의존하고 싶은 대상을 찾기 시작하면서 시작되잖아요. 지금 우리 곁은 대부분이 '바쁨'으로 채워져 있어요. 그래서 지긋이 한 사람을 의지하고 깊이 있는 관계를 맺는 게 예전보다는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깊이 있는 관계로 채워지던 일상이 SNS, 각종 모임, 스펙 관리 등 바쁨을 의존하며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중독은 사람에게 해롭지만, 자본주의에게는 이로워요. 쇼핑에 중독되고, 음식에 중독되고, SNS에 중독되어야 더 많은 제품이 팔리고, 가게가 잘되고, 사람들이 새로운 정보를 퍼 나르니까요. 자본은 계속해서 생산하고 소비되기 위해서 바쁘게 예쁜 것들을 만들어내죠. 그래야 다시 더 큰 자본이 되어 되돌아가니까요.


양귀비의 꽃말은 기약 없는 사랑, 위로, 위안이라고 해요. 안사의 난 피난길에 현종을 호위하던 병사들이 양귀비를 죽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겠다 하여 어쩔 수 없이 양귀비를 버렸어요. 무력한 황제 현종을 그렇게 양귀비를 버리고 후회하는 삶을 살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죽은 양귀비를 기약 없이 그리워했어요.


양귀비를 만나기 전 현종이 정치에 꽤 유능했다는 평이 있었던 걸 보면 중독의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됩니다.


감정에 중독되는 것도 바쁘고, 예쁜 것과 같아요. 설레는 감정을 쫓느라 바빠서 정작 오늘을 살면서 어떤 기분이었는지 모르고 지나칠 때가 있죠. 사랑에 중독이 되면 처음에는 그 사람이 좋아서 시작된 사랑, 연애가 사랑하는 모습이 예쁜 '나'의 모습에 빠져버리기도 하니까요.


하나의 감정에 치우치면 다른 감정들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을 놓칠 수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내 주변을 비워봐요. 설렘을 주는 남사친, 여사친이 주변에 와글와글 하다면 정리해 보세요. 혹은 나의 연애가 사랑하는 모습을 유지하고 싶어서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연애는 아닌지 천천히 살펴보세요.


얇은 꽃잎으로 햇살을 가득 머금은 양귀비의 모습처럼, 가끔은 혼자라도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는 당신이 되길.













참고문헌

사람풍경, 김형경, 사람풍경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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