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육아, 마주한 현실 (feat. 기저귀여, 안녕)
하루를 쪼개고 다시 쪼갰다.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봐도 힘에 부쳤다. 어쩌자고 둘을 낳았나라는 생각이 울컥하고 올라오기 시작 할 때면 바닥을 파고 또 팠다.
지난 2월은 더욱 그랬다. 그저 명절에는 으레 친척집에 얼굴 한 번 비추고, 엄마가 차려주는 밥 먹으며 지낼 때는 몰랐다. 누가 먹여주는 처지와 내가 먹여야 하는 처지는 천지차이다. 명절에는 코 앞인 시댁과 살짝 거리가 있는 친정에 한 번씩 다녀왔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 넷을 준비시키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심신이 지쳤다.
나와 물리적인 거리를 느낀 딸은 설 연휴를 기점으로 알 수 없는 떼를 부리기 시작했다. 설 연휴에는 나름 부엌일 한다고 바빴고, 친정 가서는 둘째가 너무나도 서럽게 울어대서 딸과 놀아주지 못했다. 연휴 이후로 이유 없이 화를 내는 날도 많아졌다. 그 사이 7개월을 맞은 아들은 중기 이유식을 먹어야 하는 시기가 왔다. 노동의 강도는 더욱 거세져 나를 괴롭혔다. 아이들이 잠이 들면 집안 일 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살짝 잠들었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일상이 괴로워 밤 열시, 아이들을 재우면서 같이 잠드는 쪽을 택했다. 새벽 4시에서 5시 쯤 아이들 가운데 엄마인척 이불을 둘둘 말아 눕히고, 고양이 걸음으로 살금살금 나온다. 그리고 이런저런 집안 일을 했다. 그나마 꼭 필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집안일은 대충 대충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덕분에 손이 닿지 않는 집 구석 어딘가는 수북한 먼지, 묵은 때가 쌓였다. 당장 급한 젖병 씻기와 열탕, 이유식에 들어갈 재료들을 다지고, 손질하다가 해가 뜨는 날도 많다. 요즘은 시판 이유식도 무척 잘 나오니 속편하게 사먹이면 어떨까만은 그것도 한 두번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렇게도 못한다. 한 편으로는 집에 엄마가 있으니 만들어 먹이는 것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계산도 어쩔 수 없이 한 몫한다.
세탁기에서 나와 겨우 널어 말려 걷어 둔 빨래들은 50리터 바구니 두 개를 가득 채우는 일은 다반사였고, 그마저도 다 채우면 잘 접어서 모셔둔 패브릭 바구니 50리터 바구니를 펼쳐서 가득 채우기도 했다. 빨래는 남편이 도맡아서 해주고 있는데, 셋이 살 때 보다 몇 배는 부지런 해진 우리지만 도무지 넘쳐나는 집안일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남편은 빨래를 널고 또 널다가 지쳤다.
결국 우리는 봄이 가기 전에 건조기를 사게 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넷이 살기에 그럭저럭 쾌적할 수 있는 작은 집은 날이 갈수록 비좁아지고 있다.
한참 힘들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할 무렵 딸은 더 많이 칭얼거리고 매달리기 시작했다. 나를 찾고 매달리는 딸이 버겁게 느껴져 쳐다보고 싶지 않은 날도 많았다. 슬슬 뭔가를 알아가는 둘째도 마찬가지다. 본격적으로 엄마바라기를 시작했다. 누가 재워도 잘 자던 아이가 달라졌다.
아기는 향기로울 수 있고, 사랑스러울 수 있고,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어른이라면 너무나 뻔뻔스러워
미치광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모든 특성 또한 가지고 있다.
애덤필립스
괴로울 때면 그나마 말귀가 있는 딸에게 더 짜증이 났다. 너무 제멋대로라 여겨지는 딸을 마주하기가 싫어진 날이었다. 아이에게 매정하게 굴어 어린이집으로 보낸 날, 원에서 아이는 종일 시무룩 했다. 자꾸 겉 옷을 입혀달라고 했단다. 집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날 아침 뒤도 안 돌아보고 작은 소리로 안녕 하며 나가던 아이 뒷 모습이 생각나 코 끝이 짠해졌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집으로 돌아와 사과를 했다. 배가 고파 테이크 아웃 음식을 입 속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으며 딸에게는 아이가 좋아하는 빵을 쥐어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했다. 아이는 아직 어리지만, 엄마가 힘들어하는 걸 충분히 알아주기도 한다.
다시 아이의 눈을 바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예민하고 인간관계를 더 잘 안다. 딸은 몰랐던 내 마음을 먼저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렇게 난리를 쳤을테다. 지칠대로 지치긴 했지만, 딸과의 관계에서 소홀해서 놓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내 행동 패턴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안정을 되찾았다.
"여기가 아파, 여기."
칭얼대는 장르가 하나 추가됐다. 아이는 예전 보다 더 자주 기저귀를 입고 있어서 몸에 닿는 부분, 예를 들면 골반 쪽이라던가 용변을 봤을 때 직접적으로 닿는 부분들이 아프다는 표현을 자주 했다. 기저귀가 뗄 때가 됐나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저귀를 최대한 느슨하게 해주고 잘 갈아줘도 마찬가지라 어쩌다 몇 번은 기저귀를 벗고 있도록 해줬다.
바지만 입고 있던 딸은 몇 번 바닥에 실례를 했고, 처음 자신의 오줌이 바닥 흐른 것을 본 딸은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르며 "물!!!" 이라고 외쳤다. 그러더니 뭔가 이상하고 놀랐는지 소리를 지르며 울려고 했다.
처음에는 딸이 실수로 컵을 엎었나 싶어 달려갔는데 그릇에 있는 물이 쏟아졌다기엔 물의 위치가 뭔가 애매했다. 아이 바지를 보니 다리 사이로 지도가 보였다.
그 모습이 무척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절로 웃음이 났다. 폭소는 아니고, 살짝 씩 웃는 정도.
"쉬했구나, 이건 소담이가 오줌을 싼거야" 라고 말해줬더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30개월, 기저귀와 이별
30개월, 이제 기저귀를 그만할 때도 됐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부지런한 엄마들은 돌 지나면서 배변훈련이라는 것을 한다더라. 실은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 살짝 있었다. 18개월 쯤 그 시기가 한 번 온다하여 미리 아이 변기통을 사두고 기다렸다. 배변훈련은 커녕 그 쯤 됐을 때는 둘째 임신에 입덧으로 아이랑 같이 있는 시간 자체가 고역이었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는 엄마는 딸이 14개월 쯤 됐을 때, 이건 네 끙끙이야 라고 소개만 해줬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 앉아서 자동차 놀이를 하게 하고 가끔 앉아서 텔레비전 시청도 하게 해주고, 책도 읽어주고 변기 안에 물건들도 넣어서 옮기기 놀이도 해주고 그 동안 딸의 끙끙이는 아이의 장난감이었다.
그리고 배변훈련에 대해 마음을 여유롭게 갖기로 했다. 둘째를 낳았을 때, 딸은 23개월이었고 극도로 예민했다. 모든게 버겁기는 엄마도 마찬가지. 30개월 전후로 때되면 하는 애가 있다더라는 말을 위안 삼아 가끔 기저귀와 바지를 벗고 앉는 일을 놀이처럼 했다. 아이챌린지에서 나온 영유아 학습지 호비를 따로 구독하지는 않지만, 중고나라에서 배변훈련을 다룬 호가 포함된 3개월을 양도 받아 반복해서 편안하게 읽기도 했다.
동생이 태어나 자신도 아기라는 것을 강조하던 딸은 '나는 누나야, 누나라서 달라'를 생각하는 비중을 점점 키워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아침에 일어나 아이 기저귀를 갈아주던 남편이 밤새 찼던 기저귀가 뽀송뽀송함을 알렸고, 우리는 딸을 변기에 앉혔다.
"쉬 해볼래?"
잠시 후 도르르르르 타타타타타 경쾌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아이도 웃고 엄마 아빠도 웃었다. 이게 뭐라고 어깨 춤이라도 출 것 마냥 기뻤다. 그 날의 감동을 잊지 않으려고 브런치에 대충 느낌도 적어뒀다.
한 번 성공 이후 그 날 아이는 자기 끙끙이에 대변을 보는 것에도 성공했고, 하루만에 아이는 갑자기 기저귀와 이별을 하게 됐다. 더욱 보채고 들이대고 오늘보다 내일 더 짜증 내던 딸은 자기 변화를 엄마가 알아주고, 감정에 지지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딸도 엄마도 조금 더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