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가는 길이, 넓이, 공간 그리고 시간

에쎄이쓰기 그것은 추억쓰기이다 4

by The Soul Food Writer

어려서 안양천이라 불리는 개천하나 건너편이 서울특별시였던 경기도 시흥군 서면

광명리에서 한동안 살았다. 그때는 곧 광명리가 서울시에 편입이 된다면서 사람을

들뜨게 하더니만 그것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흘린 결정되지 않은루머 였다. 내가

알기로 그곳은 현재 광명역이 건설되어 있는 광명시이다. 그곳에 작은 주공아파트에서

국민학교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다. 물론 그당시 서울에서 광명리로 이사가는데에는

아버지 사업의 실패와 가족이 그 불편을 함께 감수하기위한 방편으로 작으나마 선착순

분양의 아파트를 융자를 얻고 그리고 가지고 있던 백색 전화를 팔아서 옮겨가게 된

것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광명리의 추억은 내게는 보물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100번 서울시내버스의 종점이

있었고 그리고 몇해후 비교적 가까운 곳에 개봉전철역이 들어서서 서울시내가 생활권에

속하는 서울의 외곽지역임이 되었지만 그곳은 가난한 사람 그리고 농사짓는 사람

모두가 같이 어울려 지내던 정리되지 않은 시골주거지역이었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

바로 뒤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다. 언젠가 그 연못을 쓰레기로 매우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주택단지가 되어있다. 여름철엔 가끔 그 연못가에서 놀았다. 때때로는 세월을

낚는지 물고기를 낚는지 모르는 몇몇의 낚시꾼이 낚시대를 드리우던 연못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친구들과 잠자리를 잡고 개구리와 맹꽁이를 잡으며 시골 어린이의 삶을

살았다. 겨울에 그 연못은 스케이트장으로 변한다. 땔감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서

지금보다 유난히 더 길던 겨울방학은 내게는 스케이트장에서 놀던 기억으로 가득차

있다. 방학전에 숙제로 주어지던 겨울방학 생활계획표가 생각난다. 동그란 모양에

맨위를 0시로 써놓고 그리고 파이모양으로 잘라서 기상, 세면, 아침식사, 숙제, 놀기

등등의 생활계획표를 만들어 벽에 붙여 놓았었는데 그중에 반드시 스케이트 타기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매일 얼음을 지쳤다는 이야기가 된다.

언젠가 한여름에 도마뱀을 잡으러 상당히 멀리 연못 건너편까지 갔었다. 당시에 우리

아파트 단지에 살던 아이들은 모두 자전거를 가지고 있었던 광명시의 부르조아 였다.

기동력이 좋다보니 상당히 멀리까지 원정 놀이를 다닐 수 있었다.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고 거리를 연장할 수 있었던 우리들이었다. 정신없이 놀다보니 해가 기울고 있었다.

많이 놀았음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친구들. 그러나 우리가 하나 잊고 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원정을 나와 있었다는 것 이었다. 잊을 만 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눈앞에 넓게 펼쳐진 논과 밭 그리고 그뒤로 조그마한 물 웅덩이를 건너 커다란 연못이

있었고 그리고 그 연못 건너 멀리 우리가 사는 아파트가 가물가물 보이는 곳에서 놀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 만큼의 절대적 거리감을 느낄 수가 없었던 상황으로

기억된다. 결국 그날 저녁 해가 꼴깍 넘어간 후 집에 들어갔고 우리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날 경험했던 거리에 대한 상대성으로 인해 이곳 저곳에서 그날밤 야단맞는

아이들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그들 이름도 얼굴도 기억할 수 없는

친구들이다. 어디에선가 모두들 자신들이 맡은일이 있고 또한 그일을 충실히 하는

이세대에 조용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중년들이길 바란다.

지금 나는 한겨울의 캐나다 중부 한복판에서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사무실에서 잠시

일손을 놓고 이글을 쓰고 있다. 지금의 나의 시간은 그때 연못가에서 놀던 그 시간보다

빠르게 느껴진다. 그나마 외향적인 성격이 있는 탓에 넓디 넓은 타국에서 다르디 다른

타인들과 잘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을 남보다 조금 더 많이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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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축복된 생활을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여유롭게 하고 있지만 그러나 나그네의

삶을 사는 것임은 틀림이 없다. 나그네가 너무 비어 보이면 순례자로 산다고 할까?

순례자가 너무 거창해 보이면 인생 여행중인 선비라고 불러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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