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쎄이쓰기 그것은 추억쓰기이다 5
젊었을때. 학교 졸업할 무렵. 강남에 있는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영어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그 학원은 명성만큼이나 재정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여유있는 상류층 학생들이나 아님 나처럼 급하게 영어회화실력을 올려야만 하는 학생들이 수강등록을 하는 꽤 빡빡한 일정과 강의과정으로 유명한 학원이었다. 그때 매일 세시간씩 저녁에 다녔던 학원은 나름대로 상당히 재미가 있었다. 새로운 친구들과 사귀는 계기가 되었었고 또 미국 젊은이의 문화를 배우는 기회가 되기도 했었다. 그때 학원에서 쓰는 내 이름은 폴(Paul)이었었다. 그런데 그런 학과과정중에 매일 한시간씩 에쎄이를 쓰고 평가받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는 에쎄이 시간이 정말로 싫었었다. 그리고 때론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했었다. 쓰는 것 자체가 지겨웠었고 또 다 쓰고 난 후 새빨갛게 고쳐서 되돌아온 내 원고를 보고 또 고치는 수난의 수업시간이었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25년의 시간이 지난 후 에쎄이 쓰기가 재미있다니? 솔직히 가능하다면 그 영어학원에 다시 다녀보고 싶다.
나는 여러가지 목적으로 글을 쓴다. 차후 사용하게될 전공 교과서나 참고서적을 준비하기위해 쓰기도 하고 일반교양서적을 쓰기위해 쓰기도 하고 그리고 한가지 더 나의 오랜 추억을 또박또박 새롭게 재경험하기 위해 쓰기도 한다. 특히 추억을 기록하는 일은 재미 이상의 감격이 있기도 하다. 그러니 에쎄이 쓰기가 재미있어질 수 밖에 없지 않으가? 25년전 에쎄이 시간에는 나는 추억을 그려내지 못했었다. 그때 나는 나의 주장을 외쳐대고 있었다. 추억이 없는 글은 당연히 쓰는 이의 마음을 잔잔하면서도 강하게 그러면서도 즐겁기도하고 후회되기도 하는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한다. 그러니 에쎄이 쓰기가 재미 없을 수 밖에. 게다가 쓰는 이의 마음에 감동이 없는 글은 당연히 읽는 이의 마음을 향해 아무 역할을 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지금 나의 추억의 에쎄이를 쓰고 있다. 추억속의 또 하나의 나는 현재의 나를 향해 공감을 넘어 동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과거속의 폴과 현재의 존이 지금 에쎄이 쓰기를 통해 마음이 하나가 되고 있다. 나는 오늘 비형상적인 둘의 하나됨을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에쎄이 쓰기가 재미있다. 폴이라는 인간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존이라는 작가가 직접 제작하는 이 에쎄이가 “존이 바라본 폴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많은 이와 동감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나는 쓰기를 계속 즐기고 있다. 그때 같이 영어공부했던 제임스, 조셉, 찰스, 윌리, 미셀, 샤론은 지금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