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의 고통?

에쎄이쓰기 그것은 추억쓰기이다 6

by The Soul Food Writer

글쓰기가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조금 지겨울때도 있긴 했었지만 글쓰기가 힘들어 본적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8월말일로 되어있는 마감일을 넘기고 그리고 1달이라는 마감연장을 겨우 받고 나서도 이번엔 글쓰는 진도가 영 더디고 더디었다. 내가 쓰는 글에 스스로가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책상에 앉았다가 일어서는 일이 반복되었고 이책을 봤다 저책을 봤다 하며 책상에 다른 사람들이 쓴 책들과 글들이 쌓여만 갔다. 결국 마감일인 9월30일을 닷새나 넘긴끝에 오늘에야 졸작을 대충 완성했다. 이런 졸작을 낳느라고 이렇게 힘들었었는지 마음으로는 한심하기도 하고 몸으로는 기운이 딸리기도 한다. 이번에 쓰는 글은 사실 내가 잘 아는 그런 내용이 아니었다. 다만 나와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믿고 이번에는 철저하게 글쓰기 기획만 하려는 계획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우선 한국과 미국, 요르단에서 근무하면서 나를 도울 수 있는 동료와 선배들을 확보하고 그들에게 적당한 자료와 준비기간을 주어서 각자가 맡은 부분을 완성한 후 나는 그냥 그들의 쪽 원고들을 취합해서 글의 마지막을 완성하려고 계획했었다. 이건 계획이 사실은 당연히 실험적인 방법이기도 하지만 우선 내가 가지고 있는 인맥을 확고히 다질 수 있는 좋은 프로젝트라고 여기고 그들에게 각각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를 넘겨주고 맡은 부분을 잘 쓰도록 독려했다. 그들 모두 자기들이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가 없고 또 새로 공부하면서 써야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불평을 호소하면서도 나의 부탁을 거부하지 못하고 나를 믿어줬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공동저자가 나를 포함해서 총6명이 되었다. 한국에 3명, 요르단에 1명, 미국에 2명 총 6명이 자신이 맡은 부분을 쓰기로하고 6개월의 집필기간을 주었다. 물론 매월 그들을 독려하는 이메일을 보내며 점검을 해왔지만 결국 6월달이 되어서 한국에서 한명이 자기가 맡은 주제와 조금 거리가 있는 원고를 보내오면서 더이상 주제에 맡게 쓰기에 역량이 딸린다고 연락이 왔다. 7월이 되어서 요르단의 교수는 자기가 시간관리를 할 수 가 없다고 프로젝트에서 빠지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러나 나머지 한국의 2명의 교수는 그들이 늘상 그래왔듯이 자기가 맡은 부분을 너무 성실하게 기한내에 완성하고 원고를 보내왔다. 미국의 동료는 원고쓰기를 전혀 진행이 되지 못한 상태로 포기를 했다. 결국 그들이 완성하지 못한 부분은 고스란히 프로젝트 매니저인 내게 돌아오게 되었다. 그것도 7월말이 되어서 벌어진 다급한 상황이 나를 쥐어 짜기 시작했다.


이번에 기획한 논문은 Rutgers대학에 근무하는 친한 동양계 미국 교수가 기획한 책의 한 챕터를 맡아서 쓰는 일이었는데 주제가 “식품과 음료를 위한 지속가능한 에코 디자인 개발”이라는 다소 생소한 내용의 글이었다.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가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사실 기능성 포장재의 개발과 식품가공기술 개발이라는 나의 전공분야와는 많지는 않아도 조금 거리가 있는 주제였고 다분히 내가 새로 배워 나가야할 그런 분야의 주제였다. 그래서 처음에 이번 출판에 관한 제의가 왔을때 사실 포기할 수 없는 프로젝트 였었다. 왜냐하면 내가 앞으로 계속 연구활동을 해나갈 경우 반드시 거쳐가야할 관문에 해당하는 연구주제였기 때문이다. 지금 하지않더라도 5년후 10년후 언젠가는 내가 반드시 공부를 하고 연구를 직접해야하는 그런 분야였다. 어짜피 해야할 연구주제라면 일찍 시작하는 것이 차후를 위해 도움이 된다는 것은 나만이 아닌 모두에게 마찬가지인 삶의 지혜라 믿었다. 그래서 무리해서 원고청탁을 수락했다. 무리했던 것이 내가 오늘까지 몇주동안 힘들어 했던 바로 그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다.


잘 아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욱 더 값진 것으로 알고 나서 경험한 것들을 글로 써 내려가는 것은 머리 속에 있던 비물질적인 생각을 볼 수 있는 글로 바꾸는 정형화 작업이다. 충분히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되어진 것들을 써 내려가는 작업도 비단결 같이 부드럽지만은 않은데 아직 미확인되고 미경험한 것들을 구체화 해서 글로 쓴다는 것은 그만큼 속성법을 요구하게 된다. 시중의 즉석밥은 공장에서 이미 거의 다 완성된 것을 판매하는 것이고 이런 제품을 사와서 집에서 내가 매우 간단하게 즉석이란 용어를 쓰며 마지막 완성을 시키는 제품이다. 그러나 글쓰기의 속성법이란 것은 공장에서 다른 사람이 미리 대신해서 어느정도 완성시켜주고 나는 즉석에서 펜으로 써내려간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사실 불가능하다. 공장도 나이고 펜잡은 이도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미리 어느정도의 미완성의 작품을 머리속에 만들어 놓지 않는다면 하루밤에 한권의 책을 쓴다는 것이 가능할 수 없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 머릿속에서 미리미리 작업을 해놓고 있어야 좋고 편히 읽을 수 있는 글이 완성된다. 삶도 이렇게 평상시에 미리미리 어느정도 미완성으로나마 작업해 놓고 있을 수 있다면 즉석에서 훌륭한 완성도를 이루며 살 수 있으련만 대부분의 인생이 이번에 내가 글쓰기를 할때처럼 제목만 뱅뱅 머릿속에서 돌고 그것의 구체화 작업이 체인빠진 자전거 바퀴처럼 제대로 되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면에서 이번 원고쓰기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생사와 닮은 것 같다.


어쨌던 원고는 창피를 면할 정도로 완성해서 출판사에 보냈지만 아마도 탈고한답시고 많은 부분을 다시 쓰듯 한바탕 수정할 일이 불보듯 뻔하다. 그때까지 출판사가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기를 바랄 뿐이다. 나의 인생이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시던 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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