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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니 Nov 07. 2023

내 우울감은 지나친 반추로부터

진짜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야지 

 드디어 마음 건강 검진 당일. 남편 손을 잡고 떨리는 마음으로 정신과의 문을 열었다. 밝고 따뜻한 분위기, 조금은 발랄한 간호사들. 면담에 앞서 15분 정도 자가 척도 테스트를 끝낸 후 진료실로 들어갔다.


 테스트 결과에서 우울도는 예상대로 높은 편이었고, 그 외에 의미 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이 '높은 반추 경향'이었다. 선생님 말에 따르면 반추는 2가지 버전이 있다고 했다. 과거를 돌아보는 회상 개념의 반추,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걱정을 앞서하는 반추. 결국 두 개념 모두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정작 나는 내가 누구보다 '현재'에 충실하기 때문에 우울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현재'라는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반추하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어제의 일, 그저께의 일부터 내일, 모레, 다음 주, 다음 달, 내년, 그리고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일까지 말이다. 반추를 해야 오늘의 일을 더 잘할 수 있고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 것 같다. 


 실제로 나는 회사 일의 시작과 끝에 늘 반추를 했다. 일의 크기나 중요도는 상관없었다. 어떤 일이든 진행 과정에서 아쉬움이 있었다면 일이 시작된 순간의 기억부터 하나씩 곱씹으며 어떤 부분이 부족했고 좋았는지 분석하고 그걸 팀원들과 공유하면서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높여갔다. 그게 회사에서의 내 일이자 내가 성과를 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뭐든 지나치면 독이 된다고 했던가. 발생할 가능성이 희박한 일까지 미리 걱정하고, 멤버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리뷰해 주는 나 자신에 나만큼 동료들도 힘들었겠구나 생각이 스쳤다. 나는 일이 잘 될 가능성과 잘 되지 않을 가능성을 5대 5, 반반으로 보지 않았다. 늘 부정적인 경우를 더 가능성이 높은 일로 받아들였고, 이런 성향은 지나친 반추로 이어지기 좋았다. 일이 잘 되고 일과 팀의 규모가 커질수록 내가 반추할 아이템은 많아졌다. 그러니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회사 일에서 시작된 반추의 악순환은 개인의 삶에 금세 스며들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지쳤나?로 시작한 생각이 내가 얼마나 더 이렇게 일할 수 있을까? 일을 못하게 되면 우리 가족은 어떻게 생활을 유지할까? 우리가 갚아 나가야 할 돈은 어떻게 모을까? 아이를 갖고 싶다는 소망은 포기해야 할까?로 이어졌다. 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의 끝은 울다 지쳐 잠드는 것이었다. 


 사실 내 모습을 이렇게 바라보게 된 것도 첫 진료를 받고 난 후에야 가능해졌다. 당장 걱정하지 않아도 될 몇 년 후의 일까지 혹은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일까지 끌어와 걱정하고 있는 나 자신을 '드디어' 발견하게 된 것이다. 진료를 받기 전까지는 생각에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져도 내가 그 생각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기 어려웠다. 생각이라는 바다에 빠져서는 내가 바닷물인 줄 착각하는 모습이랄까. 사실은 열심히 헤엄쳐 나와야 하는데. 


 내가 '깊이 혹은 지나치게 반추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치 내가 유체이탈을 한 듯 나 자신을 조금은 멀리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나 스스로를 보듬어야겠다는 생각을 진정으로 했던 것 같다.  


 20살 때 대학진학을 위해 상경하면서 나는 늘 내가 나를 지키고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 속에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늘 '씩씩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지낸 지 10년 하고도 3년은 더 지났으니 '얼마나 더 씩씩하게 살아야 할까?' 생각이 들만도 하다. 그러니 지금을 잠시 나 자신에게 '고생했다' 말해주고 토닥여주는 시간이라 생각하련다. 이제는 진짜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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