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에 다니기 한 달 전,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던 자리에서 예전에 처치해 두었던 이의 일부분이 떨어졌고 그때부터 치과를 다니기 시작했다. 신경 치료 4회에 본뜬 가짜 이를 붙이기까지 5번 정도 치료를 받아야 했다. 치과 치료 중이란 사실을 굳이 말하고 다니진 않았지만, 혹여 말하게 되더라도 그리 부담되지 않았다. 그저 또 하나의 이야깃거리일 뿐이었다.
하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말은 어디서도 쉽게 꺼내지 못했다. 매주 평일에 고정적으로 진료를 받아야 하고 장기 재택근무에 들어가기 위해 직장 상사와 다른 팀 리더들에게 내 상태를 공유했다. 이 과정에서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나와, 심각하지만 덤덤한 척 연기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나의 가장 약한 패를 꺼내어놓고 눈감아 달라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첫 정신과 약을 받아 나오던 순간도 잊히지 않는다. 정신과 층에서 약을 들고 사람들이 가득 찬 엘리베이터를 탔던 순간. 모두가 내 약봉투를 바라보는 듯한 기분과 약봉투를 품에 안아 숨겼던 그 시간. 받아 나온 약 봉투에 '정신과'가 아니라 '의원'이라고 쓰여있음에 안도했던 순간. 병원이 유독 많았던 건물임에도 위축되던 나.
정작 내 진료를 봐주시는 주치의 선생님은 우울증도 잠시 왔다 가는 '감기' 같은 거라고 했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우울증이라는 단어에 당황하고 그 사실을 편히 말하지 못하는 걸까. 우울증이 정말 감기처럼 왔다 가는 것인지 내 경험으로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울증도 감기처럼 남들 앞에서 숨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이 앞에 있고 없고를 떠나 기침을 참기 어렵고 막힌 코에서 코맹맹이 소리가 나는 것처럼 우울증에 걸리면 앞에 누군가가 있어도 지하철이든 버스에서든 눈물이 흘러내리고 누군가와 대화할 때 쉽사리 감정이 동요하며 목이 멘다.
받아 나온 정신과 약도 아침과 취침 전 섭취하는 것으로 처방해 주셨는데, 이것 또한 바깥 생활을 하는 점심 저녁 시간대를 일부러 피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식사 후 약을 먹을 때 다들 '무슨 약 먹어? 어디 안 좋아?' 한 마디 해주는 게 우리나라의 정이니까, 그런 곤란한 상황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것이다.
치과에 다녀요 편하게 말하지만, 정신과에 다녀요 쉬이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 사람들의 편견 때문일 거다. 실제로 미디어에서 보이는 수많은 정신병원에 대한 이미지는 나에게도 꽤나 무서웠기 때문에 (공포 테마의 배경으로도 자주 노출되었고) 상담 예약 후 병원 문을 열면서 따스한 분위기에 놀랐었다. 선생님도, 간호사도, 병원 인테리어도 그렇게 아늑하고 깔끔할 수가 없었다.
첫 진료 때, 주치의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이 생각난다.
"의료비가 비싼 것으로 유명한 미국도, 의료비가 무료인 호주도 정신과를 경험한 국민 비율이 40%가 넘는데, 우리나라는 고작 7%예요."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신과는 낯설고 어려운 공간이며, 우울증은 나약한 사람이나 걸리는 것 혹은 의지만 있으면 이겨낼 수 있는 문제로 여겨지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시간이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감기도 있지만, 코로나19나 독감처럼 약 없이 버티기 힘든 감기가 있듯이 우울증도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분명 있다. 지금의 나는 독감 같은 우울증을 겪는다 생각하고, 언젠가 '우울증? 그거 감기 같은 거야, 내가 겪어봤잖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