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일기
아담의 자손들은 서로에게 한 몸의 다른 사지처럼,
하나의 본질에서부터 창조되어,
사지의 한 부분이 고통을 겪으면,
다른 한 부분도 평안할 수 없다.
타인의 역경에 대해서 어떤 측은심도 가지지 않는다면
그대는 정녕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가
- 사아디 (페르시아의 시인)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 중 하나다. 한 손가락이 아프다고 손은 안아플 수 있는가?
우리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인식 가능한 것으로 쪼개서 세상을 보기도 한다. '아동문제', '노인 문제', '장애인 문제', '인종 혐오 문제' 등... 그런데 사실 이 문제들은 '나'와 분리되어서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아이가 아니였던 사람이 없고, 늙지 않을 사람이 없으며, 아프지 않을 사람이 어디있다 말인가. 내가 한국에 있으면 내국인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외국인이듯이 우리는 모두에게 외국인이고 외부인이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를 나눈다. 그리고 가끔은 이러한 분리는 효과적인 통치/정치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적과 동지를 가르고, 차별과 특권의 범주를 짓는 가운데 권력은 작동한다. 대학생 시위대와 청년 전경을 가르는 라인을 긋는 것, 인종적 약자를 악마화 시키고 그 경계선을 넘어선 이들에게 눈총을 보내는 것 등등의...이러한 경계 짓기 속에서 정치는 작동한다.
인종 문제는 그 구별의 핵심에 있다. 인종이라는 아주 가시적인 요소를 통해 인구를 나누고 차별과 특권의 범주를 나누는 사회적인 억압은 가장 뚜렷한 형태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지만 가장 저항하기 힘든 형태의 정치이기도 하다. 특히 양극단에 존재하는 극단주의자들은 인종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난제로 만들어버린다.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나 반달리즘은 인종적 구분 자체가 인위적이라는 사실을 항상 인지하고 있는 일반 시민들 조차 이분법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르완다의 학살은 그 형태의 가장 극단적인 버젼일 것이다.
이럴때 상향 형태의 사회적 연대화는 아주 중요하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조직되면 가장 이상적일테고...그게 아니라도 연대를 표현할 수 있는 상징적인, 혹은 실질적인 행동은 인종 갈등의 극단화를 막는데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혐오의 직접적 표현을 사회/공동체의 힘으로 무력화시킨다는 데서도...
뭐 아무튼 서론이 길었는데, 포스팅을 하기로 한 계기는 몇몇 기사들을 지나치게 되어서... 뭔가 정리해보고 싶어서...
나중에 인종 혐오에 어떻게 전략적으로 공동체가 함께 대항할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면, 좋은 사례들인 것 같아서 정리해본다.
1. 캐나다, 콜드 레이크
무슬림 신자가 아침 여섯시에 예배를 드리러 자신이 사는 지역에 있는 신전 (모스크)에 갔더니 심하게 공격당한 흔적을 목격하게 되었다고 한다.
창문이 깨져 있었고, '네 집으로 돌아가'라는 등의 공격적인 낙서가 여러군데 있었다고.
경찰들은 과거에 퀘벡에서 있었던, 과격 무슬림 신도들에 인한 살인사건에 대응한 과격반응으로 보고 있었다고 한다.
콜드레이크 시의 시장은 이를두고 유감을 표시했고, 시민들은 페이스북을 통해서 이 훼손 행위에 대해 분노를 표출했다.
그들은 '당신들은 우리를 대변하지 않아. 당신들은 그들을 위협할 수 없어. 우리는 무슬림과 함께 연대하고 있다.', 혹은 '이것은 캐나다의 가치가 아니다'라는 등 닥 잘라 이 행위를 비판하고 나섰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나중에 왔다. 시민들이 직접 나서서 무슬림들에 대한 지지를 표시하는 소소한 rally를 열고는, 모스크에 'love your neighbor'라는 큰 문구를 붙였다고 한다.
기사링크
www.tipsubmit.com
2. 노르웨이
노르웨이에서는 과격 이슬람분자들이 유태인 예배당 (시나고그)를 공격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반-이슬람 정서를 더 자극하는 효과를 낳았다고..
노르웨이계 무슬림들은 이러한 양 극단에 존재하는 인종혐오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페이스북 이벤트를 준비했다. 그리고 노르웨이계 무슬림들을 포함한 수백명들의 시민이 토요일 (예배날) 유태인들의 시나고그를 보호하기 위해 손을 잡고 시나고그를 인간 사슬 (human right/chain)을 만들었다. 그들은 추가적인 과격 이슬람분자의 테러에 대비해, 그리고 상징적으로 인종간의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이 행동을 조직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