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만화가 하나의 장르와 문화로 많은 인정을 받고 있지만 내가 어렸을때까지도 만화는 어른들로부터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만화를 안보지 않았다. 물론 지금과 같이 웹툰 등으로 본 것은 아니고 종이에 인쇄되어 단행본으로 나온 만화책을 만화책방에서 한권당 500원 정도의 대여료를 내고 빌려보거나 아이큐점프와 같이 여러 만화를 모아 매주 발행하는 만화잡지를 사보는 등의 방법으로 정말 많은 만화를 보며 컸던거같다. 그렇게 보던 만화는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점차 종이에서 웹상으로 그 수단이 변모해가고있고 지금은 웹툰을 통해 매일 새로 올라오는 다양한 만화를 즐기는 40대 아저씨가 되었다.
뭐 지금 만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최근 즐겨보는 몇몇 만화를 보며 문뜩 느낀 것이 있어 그것에 대한 생각을 말해보려한다.
요즘 만화뿐만 아니라 소설, 드라마 등에서 자주 활용되는 콘텐츠가 있다.
바로 귀환, 회귀, 빙의 등 흔히 "인생2회차"라 일컫는 현상에 대한 것이다.
주인공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시간을 되돌려 다시 자신의 몸으로 인생을 살게 되거나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 이미 지나온 인생을 한번 더 살아갈 수 있게 되며 이전과 달리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가며 목표한 삶을 만들어 간다는 스토리가 많은 호응과 인기를 얻고 있다.
(*저작권문제가 있을지 몰라 따로 이미지를 붙이진 않지만 화산귀환, 광마회귀, 투신전생기, 신과함께 레벨업, 신마경천기, 무림세가 전생랭커 등 필자가 좋아하는 웹툰이 그런 플롯을 가진다. 사례에서 본인의 취향이 너무 드러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는 한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살아간다는 스토리는 그리 신박하거나 획기적인 콘텐츠는 아니다.
그런데 왜 유독 최근 소설, 만화, 드라마 등에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는가. 그건 전생물을 읽고 보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인생2회차 이야기에 열광하는가. (당장 나부터 그런 내용의 웹툰을 즐겨 보고 있으니말이다)
먼저 인생2회차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봐야 할것이다.
간단히 말해 인생2회차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선택을 되돌릴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음을 말한다. 내가 잘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가 좋았던 과거를 지금와서 되돌리고 싶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즉, 내가 잘못 선택하고 행동해서 좋지않은 결과를 야기했고 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가슴에 안고 이를 후회했던 어떤 일련의 과정을 겪은 사람에게 다시금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유혹이며 설레임일 것이다. 이를 문화콘텐츠에 투영해보면 주인공은 어찌보면 억울하거나 허무한 죽음에 이르게 되고 자신 또는 타인의 몸을 통해 다시금 인생을 살수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본래 본인이 겪었던 그 결말에 이르지않기 위해 고전분투하게 되는 것이 인생2회차 문화콘텐츠의 메인스트림인 것을 알 수 있다. 인생에 대한 회환과 후회, 분노와 증오, 안타까움과 애처러움이 없는 주인공은 인생2회차를 살아갈 의미가 없다.(물론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으니 살지않겠다고 하진않을거같다)
이런 것들을 보면 우리가 인생2회차를 주제로한 다양한 콘텐츠에 흥미를 가지고 재미있게 보는 것은 우리가 살아온 삶에 온전히 만족하고 충족하지않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기회를 가진 주인공을 바라보며 기회를 온전히 활용하여 결과를 변화시켜나가는 과정에서 대리만족과 희열을, 변화의 기회를 얻었음에도 반복되는 실수와 상실에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느끼며 이야기속에 빠져들게 되는것이다. 어떻게 보면 전능하다고까지 여겨지는 주인공의 활약상을 보며 마치 우리 자신이 주인공처럼 목표한 것을 이루어가며 생각한대로 살아가는 듯한 만족감과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현실은 인생2회차와는 꽤 거리가 멀것같다. 내가 살고싶은대로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수 있는지, 더 나아가 무엇을 정확히 원하고 목표로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는것같다.(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본인은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 많다)
한치앞을 예측하기 어렵고, 주어진 상황속에서 조금의 변화도 용이하지 않은 갑갑함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다가올 멋진 순간에 대한 기대보다는 오히려 이미 지나온 수많은 아쉬움과 후회와 자조의 순간들이 더많이 떠오를거같다.
그때 그 학교를 가지 않고 다른 학교를 갔더라면.
그 친구가 아니라 다른 친구랑 친하게 지냈었다면.
뒤늦게 합격발표가 난 그 회사를 다녔었다면.
계속 준비해온 시험에서 결국 합격했었다면.
그 때 만난 그 친구와 결혼했었다면.
부모님에게 그 말을 뱉지 않았었다면.
.....
생각에 생각을 무는 수많은 순간과 말과 행동이 떠오르지만 어느 것하나 다시 해볼수도, 고칠수도, 바꿀수도 없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옛날 무릎팍도사라는 예능에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씨가 나온적이 있었다. 마흔이 넘어버린 발레리나에게 MC는 다시 젊었을때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냐는 달콤한 상상의 질문을 던진다. 발레리나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한창때의 몸상태는 지나가버린 강수진씨는 일말의 망설임없이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그 이유가 이미 겪어온 수십년의 시간이 너무 아깝고, 다시 돌아간다고 그렇게 열심히 할 자신이 없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않다는 것이었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이유가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매우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매순간 그렇게 다시 그렇게 할 자신이 없을만큼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순 없을것같다. 결국 이미 지나간 과거도, 알 수 없는 다가올 미래도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부차적인 것일거 같다. 과거의 경험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을 고찰하고, 미래의 상상으로 현재를 살아갈 힘을 얻으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태도일지도 모르겠다.
일어나지 않을 인생2회차의 삶은 만화와 소설 등에서 즐기고 우린 또 힘을 내서 열심히 현실을 살아가야 인생2회차를 지나치게 꿈꾸는 후회와 불만가득한 삶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지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