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주기적으로 정년퇴직 공고가 뜬다.
이제 막 입사한 나에게는 먼일이었지만 우리 지점에는 대상이 몇 명 있었다. 나이는 많지만 승진하지 못한 대리님들이 그 대상이었다.
그분들 중 두 분은 자녀가 아직 성인이 아니었다. 가장으로서 돈을 벌어야 하는 시기라는 말과 같았다. 당연히 퇴사 생각이 없었다.
어느 날 지점이 어수선했다. 높은 사람이 찾아왔다.
나이가 많은 대리님들 두 분이 차례대로 면담을 하고 나오셨다. 표정이 좋지 않으셨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런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그만두지 않으면 멀리 지방 발령을 내겠다. 자리를 없애겠다 등.
2022년 지금 이 시기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그 당시에는 비일비재했다.
새벽까지 회식을 하는 일,
회식 2차로 꼭 노래방에 가는 일.
아침마다 지점장님의 커피를 타는 일.
위의 이야기처럼 누군가의 퇴사를 종용하는 일.
결국 두 분은 회사를 그만두셨다.
50세 남짓되는 나이에 평생을 은행만 다닌 분들이 무슨 일을 하게 되실까.
가족들에게는 어떤 마음일까 등등
내 마음이 다 복잡했다.
회사란 원래 이런 곳일까?
내 젊음 다 바쳤는데
이렇게 쉽게 그만두는 곳인가?
나이가 많아지면 퇴물 취급당하는 곳인가..?
연차가 쌓인 직원들은 연봉이 높다.
그만큼 생산성이 낮아진다.
회사는 같은 돈으로 최대한 더 많은 효율을 뽑아내길 원한다.
그래서 연봉이 낮은 젊은 직원들을 채용하길 원한다.
20대였던 나는 회사는 무서운 곳이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회사는 오래 다녀서는 안 되는 곳, 이란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은 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막상 몰랐다.
회사 외에 다른 것으로 돈을 벌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도 똑같은 직장인이었다.
매월 월급날만 기다리며,
가끔 좋아하는 가방 하나씩 사고 취미생활 즐기며
퇴근 후엔 마음 맞는 동료와 술 한잔으로 서로 위로하는.
평범한 직장인 중의 하나였다.
늘 마음속에 차지하는 질문이 있었다.
회사를 떠나고 난 뒤의
회사 밖에서의 나는 무엇일까?
회사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지점장님도,
50대인 대리님들도 그렇게 회사를 떠나셨다.
1 금융권 대기업인 ㅇㅇ은행에 다니는 직원이 아니라
아무 타이틀도 없는 나는 세상에서 어떤 모습일까?
회사에서의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할 수 없었다.
인사 발령 시즌이 되면 다들 내 운명을 기다리며 공문이 뜨기만을 기다렸다.
난 다음번엔 승진이 될까?
다음번 발령지는 어디일까?
모두의 고민은 비슷했다.
마치 이곳이 그들에게는 전부이자 온 우주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방법을 몰랐기에 매일 쳇바퀴처럼 지냈다.
나름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회사에 있는 동안 내 몸값을 높이는 것이었다.
hsk, 토익 꾸준히 공부했고
AFPK, CFP까지 도전해서 합격했다.
자격증이 밥을 먹여주진 않았지만
내 자존감은 높여주었다.
그래, 난 여기서 PB로 성장해야겠다.
진정한 자산관리를 해봐야겠다.라는 다짐을 했다.
일하고 돈 모으기 시작한 지 5년이 흘렀다.
5년간 한 점포에 있으면서 고객들과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었다.
결혼식에 찾아와 주신 고객도 계셨고.
작은 점포였지만 배울 게 많았다.
은행원이란 직업이 결혼할 땐 참 좋은 직업이었다.
왠지 돈 관리를 잘할 것 같고
돈 걱정 없이 살 것 같다고 했다.
실상은 아닌 사람들도 많은데..
정말 생계형으로 일하는 분들도 많은데..
30대가 되기 전
좋은 시기에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했다.
결혼하고 나니 발령이 났다.
서울의 한 점포였다.
결혼과 임신, 그리고 두 아이의 출산으로 인해
나는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의 문제점을 절실히 파악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