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에 성공했다.

by 은행원

합격자 발표날이다. 입사지원 사이트에 들어가서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검색한다. 먼저 생년월일을 넣고, 이름을 입력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조회를 누른다.


<입사를 축하합니다>


입사를 축하한다는 한 문장에 민지는 마음이 놓인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1년 반이나 휴학을 한 탓이었다. 물론 1년 반이란 시간을 놀고먹으며 지냈던 건 아니었지만 한국사회에서 조금 늦춰진다는 것은 인생이 순탄치 않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대학만 가면 끝일 줄 알았건만 취업이라는 관문이 남아있었다. 민지는 동기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신의 적성보다는 남들이 보기 좋은 기업 위주로 원서를 넣었다. 지원하는 회사는 전부 대기업이었다. 외국어를 전공했고 자격시험에서 가장 높은 등급을 받을 만큼 열심히 공부했지만 취업이라는 장벽 앞에서 적성보다 중요한 건 빠른 취업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내 적성은 맞추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외국에서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보낼 만큼 외국어를 좋아했고, 타지의 낯선 공기도 좋아했다. 승무원을 고민했지만 외적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역 쪽으로 지원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경영 전공자를 선호했다. 운 좋게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인 s물산에 최종면접까지 갔지만 불합격했다. 최종면접 불합격도 충격이었으나 더욱 민지를 속상하게 만들었던 것은 함께 스터디했던 친구들은 전부 s물산에 최종 합격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고비를 넘기고 난 후의 취업이었으니 민지에게는 이제 꽃길만 펼쳐진 듯했다.


'엄마 나 합격이래'

'어머 정말? 축하해'


민지의 취업 소식에 가장 좋아한 건 누구보다 부모님이었다. 민지의 아버지는 국내 10대 대기업을 30년 이상 근속했다. IMF, 구조조정 등의 위기에서도 살아남아 직장생활을 하고 계셨다. 새벽까지 회식을 해도 늘 4시 전에 일어나서 출근을 하던 사람이 아버지였다. 부모의 세계가 자녀에게는 전부다. 민지는 성실하게 회사생활을 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연스럽게 회사원이 되리란 생각을 했다. 취업만 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줄 알았다.


돈을 벌게 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걸 의미했다. 내가 나 자신을 책임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누구에게 돈 때문에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나도 돈을 모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20살에 성인이 된 건 물리적인 성인이었지만 취업을 한 후엔 진짜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그것도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 그것도 연봉 높기로 소문난 금융권이었다.


민지는 몰랐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모든 것에는 대가가 있다는 것을, 금융권에서 근무한다는 것의 압박감이 어느 정도인 줄은. 그저 돈을 벌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잊혔다.


취업의 기쁨에 젖어있는 동안,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연수 일정이 잡혔다는 것이다. 연수 일정은 한 달이었다. 동기는 180명이나 되었다. 학점 3.8, 토익 900점, 각종 봉사 및 인턴 이력, 수도권 중위 대학, 비전공자. 이 정도 스펙으로 금융권에 취업한 것은 어쩌면 능력보다는 180명씩이나 신입사원을 뽑던 시절에 취업을 한 운이라는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운을 자신의 능력이라 착각한다. 시간이 흐르고 나면 그때 그 일이 내 능력보다는 시기와 운때가 맞아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민지 역시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 비전공자가 금융권에 취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운 때문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수원에 가니 스펙이 출중한 친구들이 많다. 일단 대학이 모든 걸 말해준다. 이 정도면 잘했다,라고 생각하며 입학했던 대학교는 동기들 사이에서 중하위권에 속했다. 민지는 대학생활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학벌에 대한 콤플렉스를 느꼈다. 왜 어른들이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했는지, 다 때가 있다고 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 학벌로 인해서 입사 후에 큰 격차가 벌어지게 된다는 것을 몇 년 후에 알게 되었다. 모두 같은 출발선에 서 있었지만 점점 누군가는 일등의 자리로, 누군가는 꼴등의 자리로 자리가 배치되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연수원에서는 기본적인 돈 세는 것부터, 통장을 교체하는 것, 이론, 법규 등 다양한 것을 배웠다. 경영을 전공한 친구들도 많았지만 민지처럼 비전공자도 절반은 되는 듯했다. 180명이나 되는 동기가 있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경영을 전공했다고 해서 연수원 교육이 쉬운 건 아니었다. 수신, 외환, 대출 여러 가지 업무를 배우는 곳이 은행이었다. 민지는 연수원 생활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취업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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