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상점 II
감정상점의 문이 열렸다.
이번에 들어온 손님은 창백한 얼굴을 한 남성이었다. 그는 천천히 가게 안으로 걸어와 선반에 놓인 감정의 병들을 흘깃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호기심도, 기대도, 망설임도 없었다.
감정상인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어떤 감정을 찾으십니까?”
남성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감정상인의 손이 멈칫했다.
“전혀…?”
“네.” 남성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때는 분명 감정을 느꼈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더군요.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화나는 일도 전부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세상과 나 사이에 투명한 벽이 있는 것처럼요.”
그는 담담하게 덧붙였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차갑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차가운 게 아니라, 그저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는 겁니다.”
감정상인은 천천히 눈을 가늘게 떴다.
“감정을 잃어버린 원인을 알고 계십니까?”
남성은 피식 웃었다.
“몰라요. 그냥 점점 희미해지더니 사라졌습니다. 마치 내 안에서 감정이 말라버린 것처럼요. 이제는 웃어도 웃는 게 아니고, 울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그는 감정상인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감정을 되찾고 싶습니다.”
감정상인은 서랍을 열어 조그만 유리병을 꺼냈다.
그 병 안에는 아무런 색도, 빛도 없었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보면 아주 희미한 파동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것은 ‘되찾은 감정’입니다.”
남성은 병을 바라보았다.
“이걸 사용하면…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나요?”
감정상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주의하십시오. 감정이 사라진 이유를 모른다면, 감정을 되찾아도 다시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신은 감정을 되찾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남성은 병을 손에 쥐고 깊이 고민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만약 감정을 되찾았을 때, 그 감정이 너무 아픈 거라면 어떡하죠?”
감정상인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감정은 아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슬픔이 있으면 기쁨도 있고, 외로움이 있으면 따뜻함도 있죠. 감정을 다시 느낀다는 건,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남성은 한참 동안 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뚜껑을 열었다.
순간, 아주 희미한 파동이 퍼졌다.
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이내, 아주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
눈을 감은 채 손끝을 스치고 지나가는 감각들.
따뜻하다.
그것은 미약하지만 확실한 감정이었다.
남성의 눈가가 아주 희미하게 떨렸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아주 작게, 그러나 확실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감정상인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남성은 병을 품에 안고 가게를 나섰다.
감정상인은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감정이란, 때로는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아주 희미하게 살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감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너무 작아져서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
— To be continued…
(다음 화에서는 감정상점에 ‘단 하나의 감정만을 가지고 싶어 하는 손님’이 찾아오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