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엄마는 교감 선생님이셨다.
쓰러지셨을 때에도 엄마는 학교였다.
퇴원 무렵, 학생이 찾아왔다.
어서 학교로 돌아오시라고...
이런 몸으로 어떻게 학교에 가겠어...
선생님 그래도 돌아오시기를 저희는 기다리고 있어요.
엄마는 그 다음날 학교로 복귀하셨다.
엄마는 오른쪽 감각이 무뎌져서 걷는 모습이 신경 쓰이셨고 학생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셨다고 했다.
교감실에서 화장실 갈 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복도에 지나가던 학생들이 일제히 양옆으로 갈라지는 듯 했고 등을 보였다고 했다.
한두번이 아니었다.
조회 시간이 끝나고 일어나 걸어가려고 할 때에도 학생들이 하나씩 하나씩 등을 보였다고 한다.
엄마가 행여 걷는 모습때문에 부끄러워하실까봐, 학생들이 보는 걸 불편해하실까봐 길을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힘들어하시지 말라고 우리는 선생님이 헤쳐나가실 수 있도록 돕겠다고...
엄마는 그렇게 학교생활을 이어나가실 수 있는 힘을 얻으셨던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여기가 시작이 아니다.
한 학생이 있었다. 중학생이 되도록 한글을 깨치지 못 한 학생이었다. 집안 사정이 녹록치 않았고 부모는 아이의 한글을 챙겨줄 여력이 없었고 방치 되었다.
그래도 한글은 알고 지내라고 한글을 배우도록 하였다. 아이는 학교의 보살핌 속에 한글을 깨우쳤다. 다른 학습도 조금씩 조금씩 하게 되었다. 아이는 책임감이 강하고 리더십이 있어서 주어지는 공부와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네 생각을 말로 전달하는 연습을 하라고 회장선거에 나가 연설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아이는 전교회장이 되었다.
그 아이가 병원에 찾아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