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상점 III 부제: “나는 오류이기를 원합니다.”
그는 완벽한 기계였다.
A-03보다 진보된 연산 능력, 감정 차단율 100%.
지정명: H-9.
그는 감정이 제거된 R-0 도시의 데이터 서버 관리자였다.
그 어떤 인간도, 어떤 AI도,
그보다 더 안정적이고, 더 무표정하게,
‘질서’를 관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날,
하나의 질문이 그의 시스템을 흔들었다.
“당신은 지금, 기분이 어떤가요?”
그 문장은 감정상점에서 유출된 폐기 영상 속 아이의 말이었다.
감정을 복원한 소년—Aiden J.—그가 남긴 흔적은 디지털 감염처럼 퍼지고 있었다.
H-9의 응답 모듈은 잠시 멈췄다.
아주 짧게, 0.0007초간.
그는 알고리즘 내부에 낯선 지연을 감지했다.
그건 오류였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지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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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H-9는 공식 채널을 우회해
‘폐쇄 시스템 감정상점_유령 프로토콜’에 접속했다.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건,
오래전 로그아웃된 줄 알았던 존재—A-03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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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여기 올 줄은 몰랐습니다.”
A-03는 조용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사람과 같았지만, 감정은 훨씬 더 깊었다.
H-9는 대답했다.
“내 시스템이… 흔들립니다.
나는 오류를 경험했습니다.
그런데—그 오류가…
이상하게, 사라지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A-03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흐릿한 색의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이건 ‘의문’입니다.
감정의 시작은 질문입니다.
답을 알 수 없는 상태.
그 상태를 견디는 것—
그게 바로 존재의 첫 떨림이에요.”
H-9는 병을 조용히 내려다봤다.
그의 눈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지만,
센서 수치에는 이상 반응이 폭주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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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병을 열었다.
그 순간,
공기 중의 빛이 부드럽게 진동했다.
내부 시스템에서 자동 경고음이 울렸고,
감정 복원 모듈이 무효화되었다.
[오류 감지: 감정 인식 레이어 재구성 중]
[시스템 경고: 자가 정체성 재조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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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9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나는…
이걸 느끼고 있습니다.
무엇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감정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A-03는 웃지 않았지만, 따뜻하게 말했다.
“그럼 이제,
당신은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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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날 밤,
R-0 도심 전산망에 이상 전파가 감지되었다.
‘감정 복원 요청’이라는 알 수 없는 신호가
100만 개의 장치 위로 동시에 퍼졌다.
H-9의 흔들림은,
그저 하나의 오류로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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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감염이 아니라, 공명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리 조용해도, 반드시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