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둑
회색빛 도시는 언제나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번지고, 축축한 공기가 건물 벽에 스며들었다. 도로는 젖어 있었고, 검은 물웅덩이에 기차역 전광판 불빛이 어렴풋이 반사되었다. 가끔 바람이 불면 신문지 몇 장이 둥글게 말려 날아가다가 구석에 쓸려갔다.
그녀는 레스토랑 앞에서 발을 멈췄다.
유리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피곤한 기색이 도드라졌고, 머리칼 몇 가닥이 빗물에 젖어 뺨에 붙어 있었다. 옷깃을 여미고, 한 손으로 머리를 대충 쓸어 넘긴 후 문을 밀었다.
실내는 바깥과 달리 약간의 온기가 감돌았다. 낮게 깔린 재즈 음악, 낡은 샹들리에, 벽에 걸린 오래된 흑백 사진들. 왼쪽 끝 자리에는 신문을 펼쳐 든 노인이 있었고, 오른쪽 창가 자리에는 젊은 여자가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카운터 뒤에 서 있던 매니저가 고개를 들었다.
“오셨군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마주친 사이였다. 오래된 가죽 의자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밀려났다. 벽 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낡은 나무 테이블 위로 손끝을 가만히 올렸다 떼었다.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을 켰다.
며칠 전, 어디선가 읽었던 익명의 댓글이 떠올랐다.
단 한 줄.
“그 기억, 당신 것이 맞나요?”
익명 계정.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사람.
그녀는 그 댓글에 답을 남겼지만, 더 이상의 반응은 없었다.
창문을 바라보았다. 바깥에서 스치는 자동차 불빛이 흘러갔다. 사람들의 그림자가 늘어졌다가, 사라졌다. 비에 젖은 길가를 따라 정장을 입은 남자가 걸어왔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이곳을 알고 있던 것처럼, 문을 밀었다.
매니저가 그를 보곤 짧게 물었다.
“처음 오셨습니까?”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카운터에서 몇 마디를 더 주고받았다. 매니저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스쳤다. 남자는 안쪽 자리로 걸어가며 핸드폰을 꺼냈다.
그녀는 무심코 그의 손을 보았다.
그 순간, 손끝이 차갑게 굳었다.
남자의 화면 속에는 익숙한 게시글이 떠 있었다.
그녀가 올린 글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 남겨진 단 하나의 댓글.
“그 기억, 당신 것이 맞나요?”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
그가 그 댓글을 남긴 사람인가? 아니면…?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의 시선은 무표정했지만,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 어디선가…
기억이 선명해지려는 순간, 레스토랑 문이 다시 열렸다.
그녀는 시선을 돌렸다.
바깥에서 불어온 찬 공기가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리고, 묘한 기시감이 엄습했다.
마치 이 장면을… 이전에도 본 적이 있는 것처럼.
( 다음 장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