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츠업

1. 가지 않은 길모퉁이

by Lamie

2006년 봄.


그 해의 봄은 유난히도 바람이 많이 불었다.

회사 앞 벚꽃이 몽땅 날아가 버리기 전에, 뭔가 한 가지쯤은 나도 바꿔보고 싶었던 시절.


나는 그를 ‘동생’이라 불렀지만, 실제로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그 흔한 사진도 없이

우리는 채팅으로 만났고, 그게 전부였지만, 이상하게도 말이 잘 통했다.

가끔은 누구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 같기도 했고,

어떤 날은 내 마음을 꿰뚫는 말 한마디로 하루를 다 정리해주던 사람이었다.



“왓츠업?”

“……뭐야 그건, 영어 잘한다고 티 내는 거야?”

“미국선 다 그렇게 시작해. 그냥 ‘잘 지내?’ 같은 거지.”

그는 특유의 유쾌함으로 낯선 표현들을 내 일상 속으로 끌어들였다.

미국 고등학교를 다녔고, 미국 대학에서 수학했다는 그는 한국에서는 ‘둔재’라 불리며 왕따를 당했지만,

미국에선 “관심과 격려가 이토록 사람을 바꾼다”는 말을 몸소 증명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도 내 삶을, 내 사소한 고민과 일상에도 진심으로 반응해줬다.

우리는 만나본 적 없지만, 낯설지 않은 사이였다.



그가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누나, 음악하는 형이 있는데, 누나랑 진짜 잘 맞을 것 같아. 말이 좀… 통할 사람?”


흘려들었다.


그런데 왜 20년이 지난 지금 심장이 이상하게 두근거리지?


그 시절, 나는 늘 무언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회사의 회색 풍경, 익숙한 인맥, 나를 ‘형체’로만 아는 사람들.


어느날 회사 동료가 물었다.

”나 소개팅 좀 시켜줘“



그날 왜 그의 말이 떠오른걸까?

“누나, 음악 하는 형 있는데… 누나랑 진짜 잘 맞을 것 같아. 감정선도 비슷하고, 조용하면서도 깊은 사람이야.”


그때, 나는 누군갈 만날 생각 조차 없이 일만 했다.


그의 말에 담긴 확신 때문일까.

아니면, 음악을 하는 사람이란 말이 어쩐지 낭만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일까. 소개시켜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

나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요즘 회사에 괜찮은 언니 있는데… 그 언니 소개해줘도 괜찮을까?”


그 동생은 잠시 뜸을 들인 후,


“음… 누나가 원한다면.”


라고만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그를,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 ‘음악 하는 사람’을,

회사 동료에게 소개해줬다.


회사 동료와 그 사람은 서로에게 아무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별로 안 맞는다는 말만 했다.

내 얘기 조금 한 것이 다였다고 했다.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대체 내 얘기는 뭐 할 게 있담?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동생과의 연락도 점점 끊겨갔다.



몇 달 후, 문득 ’그 형은 어땠대?’라고 묻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지만,

이미 그는,

채팅창에서도, 내 기억 속에서도,

조용히 사라져 있었다.



2026년, 겨울.


TV에서 우연히 본 장면.

한 여자가 음악 연주를 듣다, 울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장면이었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그 사람은 어떤 음악을 했을까?’

‘정말 나와 말이 통했을까?’

‘그때 그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Tim 그가 내게 처음 가르쳐준 말, 여전히 기억난다.


“왓츠업. 그건 그냥… 잘 지냈냐는 인사야.”


어쩌면 그건,

그가 내게 처음으로 건넨 ‘호의의 멜로디’였는지도 모른다.


잘 지내니? What’s up?



내가 그를 만나봤다면.

아니, 단지 그의 호의에 내 자신을 맡겨보는 선택을 했더라면,

우리의 시간은 달라졌을까.



겨울 밤, 조용한 방 안.

한 여자가 노트북 앞에 앉아 채팅창을 다시 열어본다.

오래된 메시지 목록 속 ‘왓츠업?’이라는 문장이 흐릿하게 떠 있고,

창밖으로 눈이 내린다.

그녀는 헤드폰을 낀 채, 클래식 기타 선율이 흐르는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