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들리지 않은 멜로디
음악을 할 때만, 나는 나였다.
말이 많지 않은 나는, 말 대신 기타를 쳤고,
사람들 대신 리듬과 구조와 울림을 만났다.
어느 날, 동생이 말했다.
“형, 누나 한 명 있는데… 형이랑 잘 맞을 것 같아.”
처음엔 그냥 웃고 말았다.
“너는 또 왜 소개를 하냐.”
하지만 그 아이가 말할 땐, 대충 넘기기 어려운 뭔가가 있었다.
그 아이는 사람을 오래 보고 이야기하는 성격이었고,
잘 안 어울릴 사람이라면 애초에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누나는 말이 되게 조용한데… 말의 속도가 형이랑 비슷해.”
“무슨 말이야, 말의 속도?”
“그냥… 누나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야.”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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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라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지는 않았다.
사진도 본 적 없고, 목소리도 들은 적 없었다.
하지만 그 동생이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딘가에 꼭 있어야 할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우연히 나랑 같은 음악을 듣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
같은 날,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자기 안의 세계를 천천히 정리하는 사람.
그런 사람을 한 번쯤 만나볼 수 있을까.
나는 그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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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동생이 말했다.
“형, 누나는 자기 회사 언니를 소개해주고 싶대.”
그 순간, 이상하게 허탈했다.
꼭 뭔가가 틀어진 것도 아니었고,
누구 잘못도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없던 이야기처럼 되어버린 그 상황이 낯설고 허전했다.
“그래, 뭐. 알겠어.”
나는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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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받은 사람과는 한두 번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대화는 길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았고,
나도 굳이 내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그 ‘누나’에 대한 이야기만 몇마디 했다. 나는 만나보지 못한 사람, 그렇게 만났다.
‘누나’에 대한 이야기는, 그 뒤로 더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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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어느 겨울 밤.
라디오에서 기타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오래된 스케치북을 꺼냈다.
그날, 동생과 대화를 나눈 후 떠오른 멜로디를 적어두었던 페이지였다.
거기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아직 시작되지 않은 노래를.”
그때 알았다.
그 소개는 단지 만남의 기회가 아니었다.
그건 내 안에서
한 번쯤 만나고 싶었던 사람에 대한
조용한 상상과 기대의 형상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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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타를 들었다.
그때 만들다 멈췄던 곡의 처음 멜로디를 다시 쳤다.
아직 노래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끝을 향해
조금 더 걸어가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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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지 않은 사람.
하지만 언젠가 어디선가
같은 음악을 듣고 있었을지도 모를,
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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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저녁, 작은 작업실.
벽에는 낡은 악보와 사진들이 붙어 있고,
조명이 낮게 깔린 책상 앞에서 한 남자가 기타를 조용히 튕긴다.
그의 앞에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라는 글이 적힌 스케치북이 펼쳐져 있다.
창밖으로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