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츠업

2. 연결 오작동

by Lamie

1998년, 서울.


나는 ‘왕따’였다.

학교 친구들은 왕따란 말을 안 썼지만 나는 모든 것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운동을 못 했고,

산수를 못했고,

눈치도 없었다.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에 나가지 않으면 이상한 애 취급을 받았다.

나는 교실에 앉아 있었고,

아이들은 내 뒷모습에 대고 ‘기분 나쁜 놈’이라고 수군댔다.


어떤 날은 신발이 사라졌고,

어떤 날은 책상에 낙서가 되어 있었고,

어떤 날은 아무 이유 없이 맞기도 했다.


어른들은 말했다.


“너도 좀 사회성 있게 굴어야지.”


나는 그게 뭔지 몰랐다.

그저 조용히, 남들과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느꼈을 뿐이었다.



2000년, 캘리포니아.


미국의 고등학교는 달랐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내게 먼저 말을 걸었다.


“넌 이 질문에 대한 생각이 독특하구나. 한 번 칠판에 써볼래?”


처음이었다. 누가 내 의견을 ‘듣고 싶어 한’ 건.

칠판 앞에 서는 게 무섭지 않았다.

뭔가를 말할 수 있게 된 느낌이었다.


내 영어는 아직도 어눌했고, 농담도 잘 이해 못했지만,

누군가는 내 말을 끝까지 들어줬다. 그곳에선 천재소년이었달까?


내 풀이는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이번엔 Tim이 어떻게하려나? 하면서 관심을 받았다. 다르다고 해서 배척이 아니라 나랑 얘기하고 싶어했다. 그들의 아이디어도 나에게 얘기하며 내 의견도 궁금해했다.


내가 두고온 한국에서의 아픔은 희석이 되고 있었지만그리웠다. 대학은 한국에서 다니려고 했는데 부모님과친구들이 미국을 추천했다.


내가 그 공간에서 ‘살 수 있겠구나’ 느낀 건,

그 해 겨울이었다.



2005년, 온라인.


누나를 만났다.

진짜 누나도 아닌데, 난 그를 ‘누나’라고 불렀다.

어쩌면…

내가 평생 필요했던 건,

‘제대로 된 누나’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내 말을 자르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

내 감정에 귀를 기울였다.


“나 사실 ADHD 진단도 있었거든. 근데 그게 뭐가 이상한 거야?”

“아무것도. 그냥, 그런 것도 너를 이루는 부분일 뿐이지.”


그 말에 울 뻔했다.

그 어떤 상담사보다 그 누나의 말이 진짜 같았다.



그리고, 그 무렵, 형이 있었다.

내가 아끼는, 음악하는 형.

기타를 잘 치고, 말수가 적고, 좀 불편해 보이는 사람이지만

내가 힘들 때 아무 말 없이 음악을 보내주던 사람이었다.


누나와 형은 닮았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지만,

막상 누가 다가오면 잘 받아주는 사람들.


그 둘이 만나면 좋을 것 같았다.

내가 가질 수 없는 어떤 ‘정상적인 연결’을

그들이 대신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형, 누나 한 명 있는데, 진짜 좋은 사람이야.”

“그래? 어떤 사람인데?”

“음… 나랑 비슷한데, 나보다 훨씬 따뜻해.”



하지만 누나는 말했다.


“회사 언니한테 소개해줘도 괜찮을까?”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소개받기만을 기다렸던 형에게

딱히 설명할 이유도,

말할 용기도 없었다.



며칠 후, 누나에게 메시지가 왔다.


“그 형은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더 잘 맞을지도 몰라.”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그 형은 나 말고…”


나는 알고 있었다.

형은 누나 같은 사람을,

그리고 누나는 형 같은 사람을

한 번쯤은 만나봤어야 했다는 걸.



그때부터 나는, 누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다.

형도 그 소개팅을 한 후 별 말을 안했다. 그냥 잊은 듯했고,

나도,

그 봄을 통째로 접어 책 속에 넣어버렸다.



2026년, 겨울.


드라마를 봤다.

기타를 치는 남자가,

슬픈 눈을 한 여자에게 조용히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문득 누나를 떠올렸다.


“가끔 생각나. What’s up?”



“미국의 겨울 밤. 조용한 방 안.

한 남자가 오래된 파일을 꺼내, 노란빛의 이메일 창을 연다.

제목: ‘누나, 음악 좋아해요?’

그는 이메일을 읽다 잠시 멈춘다.

바깥엔 눈이 내리고, 방 안엔 클래식 기타 음악이 흐른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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