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둑
잿빛 도시의 불빛이 흐려졌다.
기차역 플랫폼이 희미하게 번졌다.
건물들은 연기처럼 퍼져나갔다.
이야기가 끝나고 있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반복되는 이야기 속에서,
이번에도 모든 걸 잊어버린다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그녀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이야기의 끝을 바꾸세요.”
그녀는 조용히 숨을 들이쉬었다.
“…어떻게요?”
그 남자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낮고 선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설가가 직접 마지막 문장을 써야 합니다.”
그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지막 문장.
그녀가 직접 써야 한다.
이 이야기를 계속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인지.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
“…내가 쓴 마지막 문장이.”
남자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이 이야기의 결말이 될 겁니다.”
그녀는 손끝을 꽉 움켜쥐었다.
그렇다면,
이야기를 끝내려면.
이제 더 이상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녀는 필사적으로 원고를 집어 들었다.
흩어진 종이, 잉크 냄새,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
거기에,
그녀는 아직 적히지 않은 문장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이야기를 끝낸다.
그녀는 손끝이 떨렸다.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반복되지 않는 마지막.
그녀는 숨을 삼키고,
흰 종이 위로 펜을 들었다.
그리고,
한 문장을 적었다.
그 순간,
세상이 흔들렸다.
빛이 번졌다.
공기가 바뀌었다.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