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둑
멀리서 기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차창에 반사된 도시의 불빛이 천천히 흔들렸다.
그녀는 손에 쥔 흑백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사진 속의 자신.
그리고, 희미하게 지워진 얼굴.
소설가.
그 정체불명의 존재가, 자신의 기억과 얽혀 있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장면들이 책 속에 등장했던 것처럼.
하지만.
그 기억이 소설이 된 것일까?
아니면, 소설이 기억이 된 것일까?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녀는 입술을 조금 깨물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은…”
남자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당신이 기억했던 적이 없을 수도 있겠죠.”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했다.
“…애초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는 건가요?”
그녀는 다시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 기차역.
그곳에 서 있던 자신.
그리고, 그 옆에 있던 사람.
얼굴이 흐려진 존재.
사라진 기억.
그녀는 조용히 사진을 뒤집었다.
손끝에서 종이가 바스락거렸다.
뒷면에는 누군가의 필체로 글이 남아 있었다.
희미하게 번진 잉크.
그녀는 조용히 그 문장을 읽었다.
그리고, 손끝이 떨렸다.
—당신은 이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습니다.
숨을 들이쉬는 것이 힘들었다.
그녀는 손에 쥔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오래된 종이, 바랜 흑백의 이미지.
그리고, 희미한 글씨.
이미 알고 있다고?
그녀가?
그녀는 천천히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도 이미 그 문장을 읽은 듯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무슨 뜻이죠?”
남자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
“이 이야기는,”
그의 시선이 그녀를 꿰뚫어보듯 깊어졌다.
“이미 한 번 쓰인 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순간,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했다.
철로 위로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그녀는 멍하니 서 있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흔들렸다.
이미 쓰인 이야기.
그러면.
이 순간도?
이 기억도?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그럼 난, 지금 어디에 있는 거죠?”
그 순간,
기차 안에서 문이 열렸다.
그리고,
한 사람이 내렸다.
그녀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남자는 한 걸음씩 걸어오고 있었다.
흑백 사진 속, 흐릿했던 얼굴.
그가 현실 속에서 또렷하게 나타났다.
그녀의 심장이 조여들었다.
그 남자는,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요.”
그 순간, 도시의 불빛이 흔들렸다.
( 다음 장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