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둑
기차의 경적이 울렸다.
쇠바퀴가 철로를 미끄러지며 낮고 깊은 진동을 남겼다.
그녀는 사진을 쥔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손끝이 차가웠다.
—그날, 그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들었다.
남자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게 무슨 뜻이죠?”
남자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그날, 당신은 여기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걸 느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남자는 그녀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가만히 있었다.
“나는… 살아 있었어요.”
그녀는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사진 속의 자신.
기차역에 서 있는 모습.
“이 사진 속에 내가 있잖아요.”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더 이상한 겁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확신이 있었다.
“기록은 남아 있습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기억은 남아 있지 않죠.”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기록과 기억의 불일치.
그녀는 기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사진은 존재했다.
그녀는 사진 속, 희미하게 번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사진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처럼.
“…이 사람은 누구죠?”
남자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대답했다.
“소설가입니다.”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방금 말한 단어가 머릿속에서 무겁게 울렸다.
소설가.
그녀가 자신의 기억을 도둑맞았다고 느끼게 만들었던 사람.
자신이 기억하는 장면이 소설 속에 등장하게 만든 사람.
얼굴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존재.
그녀는 손끝에 힘을 주었다.
“…그 사람이 실재하는 인물인가요?”
남자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걸 알면, 당신은 아마도 더 많은 기억을 잃게 될 겁니다.”
그녀는 한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기억을 잃는다고요?”
남자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기억이란 건 쉽게 사라집니다.”
“누군가가 그것을 가져가려 한다면.”
그녀는 손끝이 저릿하게 저려오는 걸 느꼈다.
“그럼…”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내가 잃어버린 기억들은?”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짧은 정적.
그리고,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기억은,”
그의 목소리는 낮고 선명했다.
“이미 누군가의 소설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플랫폼의 스피커에서 기차 도착을 알리는 안내음이 울렸다.
멀리서, 또 다른 기차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 다음 장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