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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도둑

9장. 기억을 쓰는 사람

기억도둑

by Lamie

흑백 사진.

빛바랜 필름.


그녀는 손끝으로 종이를 살짝 움켜쥐었다.

사진 속의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기차역 플랫폼.

흐린 하늘.

그리고, 자신.


기억 속에서 본 적이 없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뭐죠?”


그녀는 조용히 물었다.


남자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사진입니다.”


“그건 나도 압니다.”


그녀는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사진 속 그녀는 플랫폼 한가운데 서 있었다.

혼자가 아니었다.


바로 옆.

흐릿한 얼굴의 누군가.

사진이 오래된 탓인지, 그 부분만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이 사람은…”


그녀가 입을 떼자, 남자가 말했다.


“기억나지 않나요?”


그녀는 말을 잃었다.

기억나지 않는 것과, 잃어버린 것은 다르다.

그 말을 누군가에게 들었던 것 같았다.


남자는 그녀의 시선을 읽고 있었다.


“이 사진은 오래전에 찍혔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리고, 이 사진 속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

“…언제 찍힌 거죠?”


남자는 짧게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대답했다.


“당신이 사라졌던 날.”


순간, 모든 것이 흔들렸다.


공기가 차가워졌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조각처럼 떨어져 나갔다.


그녀는 숨을 삼켰다.


“내가… 사라졌다고요?”


남자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기차역.

흐린 날씨.

그곳에 서 있던 자신.


그리고,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


그녀는 사진을 뒤집었다.

뒷면에는 누군가의 필체로 글이 적혀 있었다.


몇 글자를 읽는 순간.

그녀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흐릿한 잉크.

날짜.

그리고, 한 줄의 문장.


—그날, 그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기억이 맞춰지지 않는 퍼즐처럼 흩어졌다.


그녀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조용했다.


그리고, 낮고 선명하게 말했다.


“소설가는,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쓴 사람입니다.”


그 순간, 플랫폼을 지나는 기차가 경적을 울렸다.


그녀의 귓가에서, 마치 그것이 오래전부터 정해진 소리였다는 듯.


( 다음 장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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