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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도둑

8장. 누군가 보고 있다

기억도둑

by Lamie


바람이 불었다.

길가의 가로수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전신주 위에 걸린 전깃줄이 낮게 떨렸다.


그녀는 핸드폰을 손에 쥔 채 멍하니 서 있었다.

어딘가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남자는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차역 플랫폼에는 이미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흐릿한 그림자처럼.


그녀는 가만히 시선을 돌렸다.


길모퉁이, 가로등이 닿지 않는 어둠 속.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 남자였다.


기차에서 내렸던 사람.

자신들에게 말을 걸었던,

기억에 대해 묻고, 확신을 뒤흔들었던.


그는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마치, 떠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남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림자가 가로등 빛 아래로 퍼져 나왔다.


그녀는 옆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

그도 시선을 떼지 않았다.


마침내, 그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기억이라는 것은,”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다.

“확신이 아니라, 조각에 가깝죠.”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남자는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기억이 온전하다고 믿어요.”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하지만 그 기억이, 처음부터 자신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겠죠.”


그녀는 숨을 삼켰다.


그의 말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마치 진실을 말하는 사람처럼.

아니, 그보다는—


마치.


기억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그녀는 조용히 물었다.


“우리를… 아는 겁니까?”


그 남자는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짧게 웃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도 당신들을 기억한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녀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머릿속이 흔들렸다.


남자가 말했다.


“기억이란 건 이상하죠.”


그리고, 아주 조용히.


“당신들이 떠올리는 기억 속에도… 내가 있었을 텐데.”


그 순간, 공기가 멈춘 듯했다.


그녀는 한 걸음 물러섰다.

남자는 옆에서 미세하게 긴장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 남자는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곧 알게 될 겁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한 장의 종이였다.


바람에 흔들리는 종이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것을 받아들었다.


차가운 감촉.

낡고 오래된 종이.


그녀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숨이 멎었다.


흑백 사진.

오래된 필름카메라로 찍힌 듯한, 빛바랜 사진 한 장.


그곳에 찍힌 것은—


기차역.


그리고.


그녀 자신이었다.


그녀는 차마 숨을 쉬지 못했다.


이 사진은…

기억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 남자가 말했다.


“기억이 사라지는 순간을, 기록하는 사람이 있죠.”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는 그걸 소설가라고 부릅니다.”


그 순간, 도시의 불빛이 흔들렸다.


( 다음 장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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