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도둑
기차역 전광판이 깜빡였다.
멀리서 들려오던 소음이 점점 희미해졌다.
그녀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당신은 이 이야기를 계속할 건가요?”
그녀는 손끝을 꽉 움켜쥐었다.
그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인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온 존재.
그래서.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 그녀도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그녀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건가요?”
남자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야기를 계속하면, 나는 사라지지 않는 거고.”
그녀는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이야기가 끝나면, 나는 없어지는 거고.”
남자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요.”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이야기가 계속된다고 해서, 반드시 당신이 남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빠르게 사라질 수도 있죠.”
그녀는 한순간 숨을 삼켰다.
“그게 무슨 뜻이죠?”
남자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녀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그녀’가 꼭 필요하다는 보장은 없다.
이야기의 방향이 바뀌면.
줄거리가 흐름을 달리하면.
그녀는 언제든 지워질 수도 있다.
그녀는 손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라지지 않으려면.
끝까지 존재하려면.
그녀는 천천히 입술을 깨물었다.
그 남자는 마치 그녀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 말했다.
“당신이 계속 존재하려면.”
그는 짧게 멈췄다.
그리고, 아주 낮고 선명하게 말했다.
“소설가를 찾아야 합니다.”
그녀는 숨을 들이켰다.
소설가.
자신의 기억을 도둑맞은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던 존재.
자신이 겪은 일들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글로 써내고 있던 사람.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존재할지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그녀는 천천히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사진 속에서 지워졌던 얼굴.
그곳에 서 있던 사람.
소설가.
그녀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어디에 있죠?”
그 남자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시선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
“그건… 나도 모릅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모른다고요?”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가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 사람은 얼굴도, 이름도, 흔적도 남기지 않으니까요.”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남자는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가 낮게 이어졌다.
“소설가가 누구인지 찾을 수 있는 단서는 하나 있습니다.”
그녀는 숨을 죽였다.
그 남자는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가장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기억.”
그 순간, 머릿속이 울렸다.
가장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기억.
그녀는 순간적으로 머리를 감쌌다.
어딘가에—
어딘가에 그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릴 수 없었다.
그 남자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걸 기억해낸다면, 소설가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녀는,
숨을 삼켰다.
( 다음 장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