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ena yi Aug 13. 2021

Goodbye에 대하여.

시작이 있다면 마침표가 있다.

어제 아이의 어린이집 등원을 하다 새로운 아이를 만났다.

누군지 여쭤봤더니, 아이의 반에 같이 있던 누나가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어, 새로운 친구가 왔다고 했다.

최근 코로나 확산으로 가정 보육 중인 누나를 오래 못 봤는데, 말도 익숙하지 않은 아이가 신나게 이야기하던 누나의 이름이 떠오르며, 굿바이하지 못한 아쉬움이 올라왔다.

겨울 방학에도 조용히 친구 한 명이 인사도 못하고 마무리를 했는데, 이번 여름 두 번째가 되니 많이 아쉽다.


내 마음이 아쉬운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맺은 관계에 대한 아쉬움이랄까.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지'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지나가다 만나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이 초기에 만들어가는 관계에는 짧지만 Say Hello 와 Say Good bye는 중요하다.


8년 간 6세부터 13세 아이들이 다니는 대안 형태의 교육 기관을 운영했다.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바뀔 때마다 큰 일이 나는 것처럼 엄마들은 불안해했고, 출렁이는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늘 섬세한 커뮤니케이션에 힘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누구의 입장에 맞추어 이야기해야 할까? 를 고민하는 기준의 답은, 늘 아이들이었다.


시작하는 아이의 불안함,

마무리하는 아이의 섭섭함,

새로운 친구들을 맞이하는 기대함과 낯설음,

익숙한 친구들을 보내는 섭섭함.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는 어른들의 커뮤니케이션의 방식에서

좀 더 솔직하게, 단순하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참 신기한 것은 이 시작함과 끝에 있어 더 어색해하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라는 것.


시작은 창대했으나, 일의 마지막에서는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들.

어색함이 싫어 도망가듯 떠나는 사람들.

프로젝트의 시작에는 열정이 넘치지만, 마무리 책임에는 회피하는 사람들.


Say Goodbye 의 장면에서 좀 더 감정을 표현하고, 기분 좋게 끝이 나도 좋으련만

같이 일했던 외국인들은 마지막의 슬픔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한국 사람들은 그 부분에 서툴렀고 좋았던 일과 관게 속 마무리는 아쉬운 경우가 많았다.

그들의 잘못이라기 보다, 그런 감정을 표현해보는 경험치의 부족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내가 어른이 되긴 한건지, 아직도 진행형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몇 가지 결심한 인생의 가치관이 있다면 마무리에는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물론 나와의 그 약속을 지키기위해, 손해도 보고 개인적인 감정의 번 아웃의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마침표'를 찍고 나면, 아쉬움은 없었다.


나의 아이가, 혹은 다음 세대의 많은 아이들이 'Say Goodbye'에 건강한 아이로 자라나길 소망해본다.

그것은 먼저 앞서 살아가는 우리가 그들에게 다양한 장면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 스스로가 과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작지만 '순간의 장'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다음 번 운영 위원회 때 조심스럽게 건의해 볼 예정이다.

한 아이가 떠나갈 때는 작더라도 'Farewell party'의 순간을 마련해달라고.


작가의 이전글 과거로부터의 거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