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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리 Oct 20. 2020

나이듦에 관하여

우리는 늙음에 대한 권리가 있다.

나이듦에 관하여.


나이가 든다는 건 무엇일까? 생물학적으론 한 살, 두 살 숫자가 추가되면서 근육이 빠지고 관절이 마모되어가는, 심폐능력은 떨어지고 시력은 점점 침침해지며, 피부는 진피층이 얇아져 색소 침착과 갈색 반점이 나기 시작하는, 머리는 온통 흰머리로 쭈볏쭈볏 덮이며 균형감각은 유지력을 잃어가고 기억력은 감퇴되며 인지기능이 저하되어 당장 오락가락하는 기억력에 치매를 의심하게 되는 것.


나이 듦이란 이런 단순한 형상의 정의인 것일까?


우리는 대게 '노화'하면 이런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이런 고정된 이미지가 굳혀진 것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오는 생물학적인 신체의 자연스러운 변화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뿐 아니라 노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서도 이미 ‘노인’에게 정의 내려진 관념이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실로 노인이라 하면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이미지가 같이 떠오른다. 왠지 내가 사는 세계와는 다른 차원의 문을 넘어 다른 세상에 사는 다른 존재인  같다. 분명 나와 같은 10 20 30대의 세월을 보내온 시간이 있었음을 아는데도 지금 당장 눈앞의 60, 70, 80대의 고리타분한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모습은 지독히도 개인의 필터링을 통해 정의된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은 집단속 서사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그리고  이야기엔 특정한 관념이 자리를 잡고, 인간은  안에서 본인이 경험한 것들로만 사고를 한다.  관념은 편견이 되어  편견으로 대상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경험 안에서만 대상을 정의한다. 젊음에게 노인이란 그간 살아오며 듣고 보고 겪은 경험들로 그저  정도쯤 나이에 이런 외모를 가지고 이런 생각들을 하며  거라는 관념을 멋대로 정의해버린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죽는다. 그 과정엔 늙어감이 필연적으로 뒤 따른다.
노화는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다.
우리는 늙어갈 운명을 쥐고 태어났다. 우리는 늙음에 대한 권리가 있다.  





인간의 3막


유기체로서 태어난 인간이 신체 생물학적 기능의 최고치에 달하고   본디 소명을  하고 감퇴해가는 불가피한 과정. 유기체로 태어났다면  누구든 겪어야 하는 과정. 나이 . 빛나는 젊음은 영원할  같지만 절대 영원하지  않다.


흔히들 인생을 드라마에 비유한다. 서론, 본론, 결론으로 이루어진 극작법에 따라 인생 또한 유년기 성년기 노년기로 크게 나뉜다. 한 드라마의 3부 각각이 다채로운 에피소드로 알차게 구성되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이야기를 꾸려 나간다. 각각의 막들을 연결하여 이루어진 인생의 드라마에서 마지막 3부인 노년은 인생의 모든 노고와 풍파를 거치고 비로소 갈등이 해소되고 동요가 가라앉는 대단원이다.


 대단원 앞에 우리는 굳이 묻지 않아도 적어도 나의 노년이 풍요롭진 못할지 언정 비참하진 않길 원할 거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노년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산다. 그러다 보니 어영부영 시간은 흘러가고 흐르는 시간 속에 어느새 노년을 맞이하게  것이다. 그럼 그때서야 오는 여러 문제의 현실을 체감하게 되겠지. 그리고 어쩔  몰라 당황하겠지. 내가 생각하는 노년에 대해 생각해봐야  가장  3가지 요소는   


1. 빛나는 젊음의 외모를 잃고, 쭈글쭈글한 주름과 백발로 뒤덮여 탄력을 잃은 피부는 성적인 매력을 반감시켜 생존경쟁에서 도태된다. 인간은 이 젊음의 아름다움을 위해 온갖 위장법을 발명한다.(온갖 해괴망측한 성형수술들, 화장품, 유전공학, 냉동인간까지도) DNA가 원하는 아름다움을 잃는다는 건 머리론 알면서도 직접 경험하게 되면 생각보다 대미지가 큰 일 일수도 있겠다.


2.  퇴화하는 신체적 기능은 생각보다 나의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게 한다. 예전 같지 않은 운동능력, 조금만 걷거나 앉아있어도 아파오는 관절들, 눈앞의 맛있는 음식들을 두고도 즐기지 못하는 소화 기관,

이런 일상의 평범함 마저도 힘겨워지는 시점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쓸모없이 느껴짐에 한몫한다. 자기 존재감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상실하게 만든다는 점. 생각이나 해봤을까.


3. 현 사회의 의료, 복지 시스템의 현실과 노인에 대해 일반화된 사회적 편견(고집, 도태, 쓸모없음, 답답함, 사회적 약자, 무관심 등) 속에서 그럼에도 나도 그런(새로움을 거부, 변화하는 시대에 올라타지 않으려는 아집, 익숙한 거에만 국한된 사고, 경험치를 들먹이면 자신의 옮음에만 빠져있음 등) 노인이 되어갈 수도 있는 무서움.


경험하지 못한 노년기의 인생은 나와는 동떨어진 이야기라 인식한다.


본인이 직접 맞닥뜨린 노화에 대한 감정적인 부분, 퇴화되는 신체 기능, 그런 노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자본주의에 국한되어 있는 노인복지와 의료시스템, 스스로를 건사할 수 있는 한계나 혹여나 일어날 수 있는 질병들에 대응하는 경제적인 부분, 이 모든 내가 피할 수 없거나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노화의 가능성들과 그걸 바라보고 지켜야 하는 가족들의 상반된 감정들 까지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에 대해선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른다. 아니 대부분 생각조차 안 한다. 겉으로 크게 보이는 경제적인 부분, 건강관리적 부분은 분명 누구나 고려하고 있는 ‘당연한’ 체크사항일거지만, 그 큰 틀에서 파생되는 예상치 못한 충격들을 맞딱드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삶에서 무엇이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으면 사람마다 대답이 다 다르다. 그런데 성찰 주제가 죽음으로 바뀔 경우, 각자 번호 매긴 가치의 순서가 대충 엇비슷해진다. 주목할 점은 백이면 백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죽는 것을 최상의 죽음으로 꼽는다는 것이다."

-p.777




나이듦에 관하여




먹거리가 영양적으로도 풍부해지고, 예방접종이 성행되며, 청결이 유지되는 현 사회 덕에 인간의 수명은 두배 가까이 늘어났다. 도래한 100세 시대에 노인의 생물학적 정의인 65세를 기준으로 노년기란 시간은 인생의 40% 가까이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는 필히 우리의 마지막 단원인 노년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현대인에게 인생 3막은 길고도 다채로운 무대가 될 것이다. 주인공인 우리들 각자에게 이번 무대가 어떻게 느껴질지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의 태도에 달려 있다. 부정적 선입견만 가득한 기존 통념의 틀을 깨부수고 한층 밝아진 눈으로 세상을 조망하면 새로운 선택지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 더욱 의미 있고 풍요로운 노년을 만들 수 있는 다른 길이 열린다."

-p.27


나의 노년이 생각하기도 싫은 구차한 생명 연장과는 다른 모습이길 원한다면,

더욱 의미 있고 풍요로운 노년을 보내고 싶다면,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생을 눈감고 싶다면,


사회, 정치, 의료계의 '현주소'와 '나'를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 하여,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젊은은 영원하지 않고 어쩌면 인생의 반을 차지하는 노년 앞에 한 인간으로 태어나 필연의 죽음을 향해 걸어가면서 본디 자신의 소명을 다 하고 눈감을 수 있게, 내 인생의 대단원은 비참함이 아닌 풍요로운 대단원이 되어야 한다. 그 길을 걸어가는 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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