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곽의 진실
피트니스가 선풍적이 인기를 끌면서 덩달아 각종 헬스 장비들도 그 인기에 편승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보조’해줄 장비들 외에도 ‘미용’ 목적이 다분한 장비들도 심심찮게 보이는데, 문제는 이런 장비들이 인기가 더 많다. 소비의 욕구는 인간의 환상을 산다. ‘그렇게 될’거라는 일어나지도 않은 희망을 현재로 가져와 너무나 유혹적이게 소비 욕구를 뒤흔든다. 음식은 ‘다이어트’라는 이름을 달고 나와 마치 이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을 거 같은 환상을 심어주며 소비자의 마음을 건드린다. 하지만 세상엔 쉽게 얻어지는 건 없다. 다이어트가 쉬웠다면 다이어트로 힘들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고, 이만큼 선풍적일 수도 없다.
피트니스적 몸매가 유행을 하면서 두드러진 예쁜 몸매에 대한 기준이 생겨났는데, 꿀벅지, 애플힙과 함께 얇은 허리에 관심이 많아졌다. 아니 정확히는 ‘흉곽 넓이’이다. 시장은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흉곽 넓이를 줄일 수 있는 각종 방법으로 마케팅에 가세를 더했다. 지켜본 양상으론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인기인데
첫째론, 흉곽 호흡을 통해 흉곽을 줄인다는 방법과
둘째론, 코르셋이라는 물리적인 힘을 이용하여 흉곽을 줄이는 방법이다.
중세시대가 부활했다. 코르셋이라니? 과거 여성의 몸을 옥죄어 각종 질병에 노출시키고 심지어 생명의 위협까지 가하던 코르셋을 지금 세대들은 흉곽을 줄여보겠다는 ‘환상’을 심으며 하루 종일 차고 있다. 문제가 아니지 않을 수 없다. 이따금 욕망은 모든 걸 덮어버린다. 보고 싶은 거만 보고 듣고 싶은 거만 들으면서 내가 그리는 욕망에만 초점을 맞춘다. 인간의 본성이 어쩔 수 없다지만, 당장을 위해 미래에 겪을 수도 있는 수많은 부작용과 맞바꾸기엔 부작용을 겪으며 살 남은 인생이 더 길지 않나? 그리고 줄어들 거란 현실의 기대감은 그렇게 환상적이지도 않다.
흉곽의 구조
갈비뼈와 복장뼈 흉추로 이루어진 흉곽은 원통의 형태이고, 그 안으로 각종 장기들을 보호하고 있다. 특히나 흉곽을 줄이겠다 하면 갈비뼈를 줄인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뼈는 줄어들지 않는다.
갈비뼈: 갈비 연골에 뼈가 붙은 길고 납작한 뼈이다. 12개로 이루어져 있고, 마지막 11, 12번째 갈비뼈는 몸통 앞쪽과 이어지지 않는 떠있는 갈비뼈의 형태이다. 갈비 연골과 이어져 복장뼈와 관절을 이루고, 뒤로 등뼈와 연결되어 있어 등 움직임에 제한을 건다.
갈비 연골: 상응하는 갈비뼈들과 이어지고 복장뼈와 연결된다. 연골의 연골막은 갈비뼈의 뼈막으로 연결되어 연골의 뚜렷한 전위 없이 연골막 내에서 연골을 파열시킬 수 있다.
복장뼈: 가슴 가운데 위치하는 납작하고 긴 뼈이다. 갈비뼈와 연결된다.
등뼈: 척주에서 등부위에 해당하는 12개의 뼈이다. 갈비뼈가 관절하고 있다.
이런 갈비뼈엔 몸통의 여러 근육들이 붙어 있다. 관절이 움직이는 것은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하기 때문이다. 몸통은 척주의 허리 부분과 가슴 부분을 포함한다. 그래서 이 두 부위의 움직임과도 함께한다. 굽힘, 폄, 가쪽 굽힘 또는 돌림의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몸통엔 생각보다 굉장히 많은 근육들이 붙어 있다.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복근이라 불리는 배곧은근(rectus abdominis) 안으로 여러 근육들(배바깥빗근, 배속빗근, 배가로근) 이 겹겹이 쌓여 있다. 또한 뒤로는 척추를 세워주는 척추세움근들, 허리네모근 등이 함께 몸통을 여러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해 준다. 등뼈, 복장뼈, 갈비뼈가 관절하여 형성된 복장우리(rib cage)는 안쪽의 연부 조직들을 보호한다. 이런 흉곽의 구조는 몸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 호흡과 장기보호이다.
갈비우리 안으론 무엇보다도 호흡에서 제일 중요한 ‘횡격막’이 있다. 또한 갈비뼈 자체에도 여러 근육들이 붙어 있는데, 주로 ‘호흡’을 위한 근육들이 존재한다. 들숨과 날숨시 복장우리를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호흡을 조절한다.
호흡하는 동안 가슴우리의 부피는 변한다. 횡격막과 갈비뼈, 복장뼈의 운동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인데, 결과적으로 가슴의 수직, 가로와 앞뒤 지름은 각각 들숨과 날숨 동안 증가하고 감소한다.
들숨 시 폐 내부로 많은 공기를 들어오게 하기 위해 횡격막이 아래로 내려가고, 갈비 사이근의 수축하면서 갈비뼈를 올리면서 흉부 부피를 횡으로 증가시킨다. 반대로 날숨시엔 들숨으로 인해 이완된 호흡근육이 수동 장력에 의해 흉부와 폐가 수축하면서 가슴의 앞뒤와 가로지름이 감소된다. 속갈비사이근이 수축되어 가슴 우리에 압력을 가하고 복부 근육 또한 복부 장기를 횡격막으로 밀어 올려 흉부의 부피를 감소시켜 날숨을 돕는다. 앞쪽의 복벽 근육들은 몸통 운동에 작용할 뿐 아니라 내부 복압을 발생시켜 숨을 내쉬는 것을 돕고, 배뇨, 기침, 분만과 같은 모든 활동도 또한 돕는다.
이렇듯 몸통 전체뿐만 아니라 갈비뼈 앞, 뒤 사이사이로도 많은 근육들이 존재하고, 호흡을 위한 ‘작용’을 한다.
그래서 위험하다. 물리적으로 갈비뼈를 고정시켜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는 건 호흡 기전 자체를 포기하겠단 이야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뼈는 줄어들지 않는다. 그런데 둘레가 줄었다? 그럼 대신해서 무언가가 대가를 치렀단 이야기다. (이 사이 근육들이 늘어나 수축을 제대로 못해서 갈비뼈가 벌어져 있던 게 아닌 이상) 그 대가는 코르셋을 쪼아 못 움직이게 잡아둔 근육이 치른다. 그렇다. 근육이 퇴화된 것이다. 약해져 제 기능을 잃어 간다.
이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된다. 몸통은 몸의 중심이 된다. 척추가 꼿꼿이 서 중력을 버틸 수 있는 건 주변부 근육들의 힘 때문이다. 특히나 1차 호흡근인 횡격막은 복강 내 압력을 조절하고 척추 안정성을 유지한다. 그런데 이 소중한 근육들을 붙잡아 옴짝달싹 못하 게 하여 점점 퇴화를 시키면 척추는 반듯이 서 있을 힘을 잃어버린다.
또한 호흡은 모든 움직임의 중심이다. 몸통을 안정화시키고 자세 조절을 하는 중요한 핵심으로서 호흡 패턴이 결여되면 대표적으로 요통에 중요한 원인이 된다. 팔다리를 움직이기 전에 몸통의 소위 ‘코어’라고 불리는 근육들이 먼저 활성화되는 패턴이 올바른 패턴인데 흉곽을 사용하지 못하게 가둬둠으로 주변부 근육들은 점점 약해지고 자연스럽게 갈비뼈가 움직여야 하는 패턴들이 깨질 뿐만 아니라 중심부가 먼저 활성화되어야 하는 움직임 패턴 자체가 깨진다. 즉 인체는 본디 올바른 움직임의 ‘제 기능’을 잃어버린다. 그 대가는 단순히 요통으로만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하나의 문제는 늘 다른 여러 문제를 연쇄시킨다. 불행이 한 번에 일어나는 것도, 부가 계속해서 부를 불러들이는 것도 단순히 운의 여부라서가 아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리 듯 하나의 문제는 늘 연속 적인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켜 점점 커진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할 것이다. 중심부를 버틸 힘이 점점 약해지고 호흡 패턴이 꼬이며 주변부 근육들은 늘 경직되어 있을 거다. 허리가 아프다는 것이 단순히 허리만 아픈거겠지로 생각했다면 그건 굉장한 착각이다. 움직일 때 허리가 아픈 이유 하나로 내가 일상에서 하는 모든 움직임에 제한이 걸린다. 우리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존재이다. 굽히고 젖히고 비틀고 나아가고 휘두르는 등 여러 움직임을 통해 동작을 만들고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해낸다. 그런데 이 일상적 움직임이 고통이 된다면?
그렇다. 움직임 자체는 삶의 질이 된다.
안타깝게도 흉곽의 넓이는 이미 결정된 요소이다. 허리가 긴 체형, 짧은 체형에 따라 흉곽우리 안의 구조물들을 감싸기 위해 흉곽 넓이가 결정되고, 물리적으로 코르셋을 이용하여 넓이를 줄인 듯 대가가 따른다. 겉으로 보이는 사회적 기준의 미를 위해 기어이 코르셋을 착용해야 한다면 뭐라 할 말이 있겠냐만은, 모든 문제는 본인이 겪기 전엔 절대 그 심각성과 나에게 닥쳐 올 대미지를 모른다. 그리고 단순히 흉곽이 넓어 내 체형이 예쁘지 않아 보이는 게 아닐 수도 있다. 전체적인 내가 가지고 있는 밸런스나 비율은 고려하지도 않은 채 단순히 허리가 얇아 보이려면 흉곽을 줄여야 해!라는 접근법은 실로 흉곽 사이즈가 줄었더라도 여전히 내가 기대하던 그 모습은 안 나올 수도 있다.
실로 과거 여성들의 코르셋 수준은 가히 괴기할 정도이다. 이 문제로 보조 없인 스스로 똑바로 서있을 수 조차 없기도 하며, 목숨을 잃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인 거 같다. 그리고 사진에서 처럼 갈비 우리 안으로 우리 모든 중요한 장기들이 보호받고 있다. 장기들의 압박은 소화불량과 기능 상실은 야기하기에 당연하다.
애당초 허리 디스크 환자들이 복대를 차는 이유가 뭘까? 스스로 버틸 힘이 없어서다. 그리고 환자에게도 복대는 오랜 시간 착용을 권하지 않는다. 임시방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료용도 아니고 단지 미용을 위해 눈 가리고 아웅 하기엔 글쎄다.
우리는 모두가 사회적 기준을 아등바등 쫓아 가야 하는 걸까? 이렇게 태어나서 이렇게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엔 분명 내가 어쩔 수 없는 영역이란 게 있는 거다. 흉곽의 넓이가 타고난 건 내가 어쩔 수 없는 문제이고 이런 어쩔 수 없는 문제를 붙잡고 전전긍긍 하기엔 내 모든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 소비가 아쉽다. 세상엔 단순히 겉모습 말고도 나를 충족시켜줄 요소들은 많다.
과거 스키니 한 몸매가 유행일 땐 근육은 존재 여부 조차 거론되지 않았다. 지금은 소위 말하는 ‘모래시계’ 라인을 위해 빵빵한 하체와 대비되는 얇은 허리에 열광한다. 이렇듯 앞으로 시대의 기준은 또 어떻게 흘러 갈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 그때마다 또 사회적 기준을 맞추기 위해 아등바등해야 하는 걸까? 나는 되려 묻고 싶다.
그래, 그렇게 그 기준을 얻게 되면 내 인생은 무엇이 얼마나 달라 질까? 그리고 나는 무엇과 그 기준을 바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