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나를 지키는 일에 대하여
태도에 대하여, 그리고 나를 지키는 일에 대하여
일을 잘하는 사람은 많다. 말 잘하고, 프레젠테이션 매끄럽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 기술로 승부를 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틈에서 나는 늘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기술보다 태도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아무리 많은 경험도, 결국 사람을 지탱하는 건 태도라고 믿었다. 배움 앞에서 겸손할 수 있는 태도. 실수를 했을 때 책임지려는 태도. 내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다는 걸 인정하고, 그러니 더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과 태도. 그런 태도가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나는 그렇게 믿었다. 배움은 노력으로 따라잡을 수 있고, 경험은 시간과 함께 쌓이기 마련이지만,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건 그 사람의 결이고, 그 사람이 일을 대하는 방식이고, 그 사람의 마음 속 중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중심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늘 진심이었다. 늘 열심히였다.
초등학생 시절, 그 누구보다 먼저 발표하려고 손을 들며 손끝이 하늘을 찌를 것 같던 아이. 중학교 때는 수학 문제집을 풀며 틀린 문제를 반복하고 또 반복하던 아이. 학교 행사에선 항상 자원했고, 단체 활동에선 늘 리더를 맡았다. 성적표에서 수우미양가 중에 우수수수수라는 평가가 늘 내 이름 옆에 있었다. 그리고 어렸을 때 부터 시작했던 플래너는 빼곡한 계획표로 채워졌다. 친구들과 놀면서도 내일의 숙제를 생각했고, 가족들과 여행 중에도 다음 일정을 걱정했다. 열심히가 내 기본값이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게 두려웠고, 잠시라도 게으르면 뒤처질 것 같았다. 그 마음은 학창시절을 넘어 대학을 거쳐 사회인이 된 지금까지 나를 끌고 왔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는 너무 기뻤다. 드디어 내가 가진 것을 증명할 기회라고 생각했다. 작은 업무 하나에도 정성을 다했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디테일까지 챙겼다. 회의록을 정리하며 참석자들의 말버릇과 말투까지 기록했고, 회의 중에 언급된 참고 자료는 회의 끝나기 전에 메일로 공유했다. 기획서에는 숨 쉴 틈 없이 아이디어를 채워 넣었고, 보고서에는 상사의 말투를 따라하며 완성도를 맞췄다. 회의가 길어져도 불평하지 않았고, 주말에도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대단하다고, 믿음직스럽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너무도 듣고 싶었다. “너 아니었으면 이거 못 했을 거야.” 상사의 "다른 직원들도 다 휘래씨 같았으면 좋겠다". 그 말 한마디에 모든 피로가 녹았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끝이 없을 만큼 더.
“적당히”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게으름의 다른 말처럼 느껴졌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 핑계처럼 들렸다. 하지만 그렇게 전력을 다한 끝에 남은 건, 늘 진이 빠진 나였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피로. 퇴근 후에는 씻지 않고 그대로 누워버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지쳐 있는 몸. 빨래는 한참 밀려 있었고, 바닥엔 옷이 쌓였고, 정리되지 않은 식사는 배달음식으로 덮였다. 나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시간은 점점 축소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의 삶에서 일을 제외한 시간은 점점 없어져갔다. 내가 챙겨야 할 모든 것은 회사 안에 있었고, 회사 밖의 나는 무방비 상태로 방치되었다. 친구와 연락은 미뤘고, 가족과의 대화는 짧아졌고, 내 감정은 이해받지 못한 채 깊이 묻혔다. 나는 나를 회사에 아웃소싱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일을 놓을 수 없었다. 일은 내가 쥐고 있는 유일한 손잡이 같았다. 손을 놓는 순간 나라는 존재가 공중으로 흩어질 것 같았다.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언어는 내 직무, 내 성과, 내 이력서였다. 그래서 그걸 붙들고 있었다. 내가 쓰러지더라도, 그것만은 놓지 않겠다고. 내가 무너지더라도, 그건 마지막이어야 한다고.
그러다 진짜 무너지기 시작했다. 피로가 깊어지고, 짜증이 늘고, 아침마다 눈물이 났다. 아무 일도 없었지만 불안했고, 머릿속은 안개처럼 뿌옇고, 사람들이 말을 걸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엔 피곤한 줄만 알았다.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말엔 잤다. 정말 ‘잠만’ 잤다. 하루 20시간씩, 그 많은 시간 중 반은 꿈이 없는 잠으로 그 반은 정신없는 꿈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냈다. 눈을 뜨고,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밥을 억지로 삼키고, 다시 잠들었다. 연휴가 오면 나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암막커튼을 치고, 핸드폰은 꺼두고, 5일간 거의 모든 시간을 수면으로 도망쳤다. 그게 유일한 회복 같았으니까.
어느 날부터는 술이 당겼다. 처음엔 하루의 끝을 부드럽게 마무리하는 의식처럼 느껴졌다. 혼자 집에서 맥주 한 캔, 와인 한 잔. 그러다 두 잔, 세 잔. 주말이 되면 거침없어졌고, 금요일 밤마다 폭음에 가까운 양을 마셨다. 아무도 몰랐다. 겉으로는 잘 지내고 있었고, 일도 문제없이 해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고기능 알콜중독자’라 불렀다. 기능은 하고 있으니까, 괜찮다고.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니까, 문제없다고. 하지만 언젠가 상담사가 내게 말했다. “고기능 알콜중독자란 없습니다. 그냥 알콜중독자일 뿐입니다.” 그때 처음, 내가 나 자신을 그리고 내 문제를 외면하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깊이 아팠다. 몸이 멈추고, 마음이 무너지고, 숨이 막혔다. 회의 중 갑자기 뛰쳐나가야 했고,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고, 출근길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쳐 있었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공황장애와 우울증, 2년 동안 매일 아침과 저녁, 나를 진정시키는 알약에 의지하며 살았다. 그러니 또 살아졌다. 행복하지 않았지만, 간간히 죽고 싶은 나날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살아졌다.
어느 날이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정리된 책상과 회의실, 익숙한 얼굴들과 절차적인 말들이 오가는 오전. 하지만 그날 나는, 내가 몸담은 조직이 어떤 어두운 진실을 덮고자 하는 장면을 정면으로 목격했다. 누군가는 모른 척했고, 누군가는 침묵을 선택했다.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진실을 외면하는 회의를 내가 주재해야 했다. 억울함을 지운 채, 모두가 짜여진 각본대로 움직이길 기대하는 시선 속에서 나는 침묵을 택했다. 그 회의실의 공기는 너무 무거워서 숨이 막혔다. 마치 내 안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이후, 나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괜찮은 척 웃으며 인사했지만, 몸은 점점 말을 듣지 않았고, 밤은 잠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해리 증상. 현실이 꿈 같고, 꿈은 현실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달리는 차 안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내 머릿속을 때렸다. 스스로도 낯선 감정이었다. 나는 차가운 창 밖을 보며 스스로를 억눌렀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속삭였다. “이젠 너도 모르는 너야.” 처음이었다. 내가 나를 제어할 수 없다는 공포. 내가 나를 믿을 수 없다는 혼란. 공허와 분노, 수치와 무력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병원을 찾았다. 정신과 의사 앞에 앉아,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 채 울기만 했다. 결국 나는 진단을 받았다. 정동성 양극장애. 흔히 조울증이라 불리는 이름. 그 이름은 내게 낙인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해명이었다. 왜 내가 그렇게 아팠는지, 왜 그토록 무너졌는지에 대한 조용한 설명. 하지만 그 설명이 내 고통을 가볍게 만들진 않았다. 그저 나는 알게 되었을 뿐이다. 내가 내 자신을 외면한 대가로 나는 나 자신을 잃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내게 남긴 상처는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아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한 달의 병가를 냈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고통이었고, 단순한 말 한마디에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병가를 내는 그 순간조차 미안했다. 내가 약해진 것 같아서, 누군가에게 부담을 지운 것 같아서,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설득하며 병가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돌아와야만 할 것 같았다. 모두가 당연히 잘하는 일을 나만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다시 돌아왔고,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다시 업무를 맡았다. 다시 보고서를 쓰고, 회의를 주재하고, 팀을 이끌었다. 회의실에서 웃었고, 메일함을 비웠고,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겉으로는 문제없는 직장인, 언제나처럼 일 잘하는 동료였다. 그러나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무너짐이 천천히, 조용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리고 지금, 나는 또 한 번 사직서를 쓰고 있다. 몇 번째인지 이젠 손가락으로도 셀 수 없다. 어떤 날은 분노로, 어떤 날은 슬픔으로, 또 어떤 날은 체념으로 썼던 그 많은 사직서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도망치기 위한 탈출구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문을 열기 위해 쓰는 것이다. 나는 회사를 미워하지 않는다. 동료가 싫은 것도 아니다. 여전히 나는 일이라는 세계를 사랑한다. 계획을 세우고, 의미를 만들고, 함께 성과를 만들어가는 그 일의 리듬을. 하지만 나는 안다. 만약 이 안에서 내가 나의 태도를 바꾸지 못한다면, 나는 또다시 나 자신을 잃게 될 것이라는 걸. 내가 나를 몰아세우는 방식, 스스로를 혹사하면서까지 버티는 방식, 모든 걸 감내하면서까지 책임지려는 그 태도—그 사랑이 결국 나를 해치고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그 사랑의 언어를 바꾸고 싶다.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더 이상 나를 잃지 않게, 내 진심을 지키는 방식으로 일하고 싶다.
나는 여전히 태도를 믿는다. 진심으로 일하는 사람, 책임을 다하는 사람, 그 태도는 나를 성장시켰고, 내가 사랑받게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태도 안에 ‘나를 향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누구보다 열심히가 아니라,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하며 살아가는 방식으로. 야근으로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주말을 반납하지 않아도, 여전히 나다운 방식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믿고 싶다. 나는 스스로를 혹사시키며 살아온 시간을 지나, 이제는 스스로를 안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늦기 전에, 더 많이 망가지기 전에.
그래서 지금, 나는 다시 사직서를 쓰고 있다. 도망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선택. 끝이 아니라, 나를 위한 새로운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