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보다 아련한 '첫 야옹'

고양이: 야아옹! / 거인: (뭉클)

by 송코튼
치즈냥: 까까 / 고등어냥: 꾸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고양이 형제 꾸꾸 까까와 함께 한 지 어느덧 3년 돌파. 배 아파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들은 내 삶에 지극히 당연하고도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오늘날의 나는 맨손으로 내 새꾸의 똥꼬를 닦으며 손가락 끝에 묻은 뜨뜻한 이 고동색 물질마저 귀엽다고 여길 정도로 진정한 사랑의 경지에 매일 같이 오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들은 아직—때때로 혹은 필요 이상으로 자주—나를 경계하는 것 같지만 분명 이 부족한 인간이 분명 고양이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라 반성할 뿐 크게 상처받지는 않는다. (그렇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요 털 뭉치들은 나에게 무수히 많은 털, 할 일, 책임감, 기쁨, 사랑 등 많은 것을 주지만 그중 단연 최고는 인생에 대한 가르침이다.



가르침이라니?


그렇다. 가르침!



고양이에게 이런 것들을 배울 것이라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은, 고양이가 아니었으면 죽을 때까지 깨우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깨우침을 길이길이 보존하기 위하여 아무도 유심히 읽지 않을 이곳에 쓸데없이 정성껏 기록해 보기로 한다.







'첫 야옹'을 기억해




우리 집에 왔을 때 형제의 모습


새끼 때 머나먼 홍성에서 우리 집에 오게 된 꾸까는 낯선 인간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손바닥보다 작은 아깽이가 하악질을 하며 꽁무니를 빼는 모습은 내 눈에는 그저 앙증맞고도 귀여울 뿐이었지만, 본인들은 나름 필사적으로 처음 보는 거인을 거절한 셈이다.


둘 중 성격이 유독 예민한 까까는 3개월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형제인 꾸꾸는 간혹 가다 야옹거리거나 낑낑거려도 까까는 벙어리처럼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1) 고양이는 원래 이렇게 조용하다

(2) 까까는 원래 이렇게 조용하다

라고 여겼다.




이런 까까가 처음으로 야옹 했던 순간.

초특급 수다냥의 탄생을 예고했던 바로 그 순간.



나는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내 발 옆에 앉아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까까를 아주 조심스럽게 안아 무릎 위에 올렸다. 평소라면 식겁하며 도망쳤을 까까였지만 그날은 다소 얌전히 내 품에 머물렀다.



고양이의 언어를 통달한 적은 없지만 그냥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요 녀석이 만져달라고 울었다는 것을.


이 작고 소중한 생명체를 가만히 쓰다듬고 있으려니 코끝이 찡했다. 괜스레 뭉클한 거인은 작은 털뭉치에게 고맙다고 고백했다. 마음을 열어줘서, 믿어줘서, 내 손길을 필요로 해줘서 고맙다고.


그리고 속으로 약속했다. 네가 마지막 숨을 쉬는 그 순간까지 지켜주겠다고.




오오,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다른 종의 동물들이 무조건적인 믿음과 사랑을 쌓는 것.

이 기적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나는 '기적'이라는 개념을 성경이나 거창한 신화 같은 인간의 작위적인 언어가 아니라

고양이의 순수한 언어를 통해 깨우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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