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의 나는 막 성년이 되는 만 20세였다. 몇 년에 걸쳐서 아동 학대를 행하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서 세뱃돈을 모았다. 내게 있어서 아버지는 남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재떨이를 던지는 것은 기본이었고 볼트 커터로 엉덩이를 맞고 머리까지 맞을 뻔하기도 했다. 심지어 무차별 폭력 이후 “차라리 죽을 거면 조용히 죽어”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한 가지만은 모르고 있었다. 나도 언젠간 성장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아버지에게 샌드백이나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돈을 모으는 데 성공한 나는 서울행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대략 20만 원 정도 모았기 때문에 대한항공의 일등석을 예매했다. 어차피 이제 지옥과 같은 집구석으로 돌아갈 생각은 일절 없었다. 제 아무리 악어의 눈물로 내게 돌아와 달라고 해도 소용없다. 내게 이제 존재할 공간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전부였다. 서울에서 나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유일한 목표였다. 2015년 4월 25일 한림에서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제주국제공항으로 갔다.
하지만 시외버스의 정류장은 제주국제공항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대략 12분 정도를 걸어야 했다. 그렇게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제주국제공항은 종합 확장공사를 3년 전에 마쳐서 지금은 어느 정도는 깔끔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나는 2층으로 올라가서 키오스크를 사용해서 일등석 티켓을 발급한 뒤 대한항공의 칼 라운지에 들어가서 유니폼을 입고 있는 승무원에게 일등석 티켓과 신분증까지 보여준 뒤 입장했다. 라운지에서는 비행기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나는 튀김우동을 먹으며 비행기를 감상했다.
탑승 1시간 전에 칼 라운지를 나서서 3층에 있는 출국장으로 이동했다. 참고로 나는 유치원에 막 졸업한 2003년에 부모가 이혼했다. 그러다 보니 엄마에 대한 추억이 없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뚜렷하게 기억하는데 제주국제공항에서 엄마를 만나야 한다고 떼를 부렸다는 것이다. 그랬지만 오늘은 제주국제공항에 대한항공의 일등석에 탑승하는 날이 되었다. 그렇게 여자 경비요원에게 주민등록증과 탑승권을 제시하자 탑승권에 색연필로 동그라미 표시를 했다. 즉, 탑승 가능이라는 뜻이었다.
이후 출국장으로 입장했다. 이후에는 보안검색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고 있었다. 다행히 나에게 짐은 없었다. 그저 내가 입고 있는 옷이 현재 내가 갖고 있는 것의 전부였다. 그러므로 X-검사를 받을 짐은 없었고 문형 금속탐지기를 통과하게 되었는데 알람이 나오지 않아 청원경찰에게 통과해도 된다는 말을 듣고 비행기를 탑승하기 위해 탑승게이트로 갔다. 탑승권에 적힌 탑승게이트는 20번이었다. 20번 탑승게이트 근처에 위치하는 벤치에 앉았다. 출국장에 탑승하려는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10분 정도를 기다린 끝에 탑승시간이 되었다.
나는 탑승권을 승무원에게 제시하자 승무원이 특정 기계에 탑승권에 있는 QR코드를 인식시켰고 A1이라는 좌석명이 모니터에 떴다. 이후 나는 인사를 한 다음에 탑승교를 건너갔다. 탑승교의 끝에 도착한 뒤 비행기 내 승무원의 친절한 인사를 받았다. 그렇게 나도 승무원에게 인사를 건넨 뒤 곧바로 내가 예매한 A1에 앉았다. 국내선이라서 이 정도로 예매할 수 있었고 국제선이었다면 100만 원은 넘게 지불해야 예매가 가능했을 정도로 일등석의 가격은 나의 예상보다도 훨씬 비쌌다. 아무래도 거리 차이가 국제선과 국내선은 비교조차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좌석에 앉은 뒤 나는 상당히 비싸게 지불한 일등석을 마음껏 체험했다.
정면에 있는 개인모니터에는 영화는 물론이고 음악까지 있었다. 책에 이어서 영화와 음악을 참 좋아하는 나로서는 황홀한 시간이었다. 일등석에 맞게 헤드셋까지 무상으로 대여가 가능하다는 점이 좋았다. 딱 쓰고 영화 한 편을 보자마자 아주 좋은 헤드셋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기장이 마침내 이제 이륙한다는 말이 나왔고 곧바로 안전벨트 착용을 알리는 안내등이 커졌다. 나는 이를 보자마자 안전벨트를 매었다. 이때가 처음으로 아동 학대와 아버지라는 족쇄를 벗고서 스스로의 의지로 활동하는 날이었다. 그런 와중에 비행기 추락으로 죽어버리는 경험은 절대 겪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족쇄에서 탈출하는 날이 기일이 된다는 것은 내겐 끔찍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비행기가 서서히 이륙하기 위해 활주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윽고 이륙에서 사용하는 활주로에 도착하자 비행기는 엄청난 속도로 이륙했다. 이륙한 뒤 나는 한동안 비행기에 달려진 창문으로 이젠 추억으로 남게 될 제주도를 눈에 담게 되었다. 물론 제주도를 평생 가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가족과 친척들은 일절 안 만날 생각이었다. 그들은 내 유년 시절을 망쳤던 존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늘이 보이는 상층부에 이르자 창문을 닫았다. 어차피 이때는 하늘과 구름만 보이므로 계속 본다고 해도 지루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내식은 국내선에서는 제공을 하지 않았다. 서울까지 1시간 30분 정도에 불과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만 비행기가 상층부에 이르러 안정적으로 비행이 되자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들이 토마토주스, 오렌지주스 등의 음료를 주기 시작했다. 나는 토마토주스를 마셨다.
토마토주스를 마신 직후 바로 잠을 청한 나는 기장이 이제 곧 착륙한다는 말을 듣고 난 다음에 일어났다. 뒤늦게 창문을 열자 착륙 직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주도와는 다른 풍경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기장의 이 말이 나오자마자 착륙이 시작되었고 엄청난 진동까지 울렸다. 이런 상황에서는 절로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짐이 없기 때문에 수하물 벨트를 지나쳐서 김포공항 입국장으로 나왔다.
이후 엄청나게 긴 환승통로를 통해서 김포공항 국내선에서 김포공항역으로 갔다. 그런 다음에 500원과 복지카드로 우대권을 발권해서 개찰구에 찍어서 들어갔다. 지하 1층에서 에스컬레이터로 아래로 내려가자 매우 웅장한 기둥으로 장식된 지하 2층이 눈앞에 나타났다. 기둥이 엄청 거대해서 그리스의 신전에서나 볼 법한 웅장한 규모였다. 이후로 지하 3층에서 공항철도를 생애 처음으로 탔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알바를 하기 위해 반드시 스마트 폰이 필요했다는 것과 청년 노숙자로 살아가는 걸 5년이나 계속 지속하게 될 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