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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말티즈 Feb 16. 2021

귀향

부모님 생각

 2021년 2월 9일. 작년 추석 이후 첫 귀향길에 올랐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귀향이다. 엄밀히 말하면 아직 졸업식을 하지 않았기에 졸업 예정이지만, 마음만은 이미 학교를 떠나 사회로 향하고 있다. 학생이란 두 글자가 이리도 편한 입장이었던가. 오래간만에 고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삿짐센터를 부르는 김에 차량에 동승하기로 했다. 아마 기사님은 이런 동행에 익숙했을 테고, 무슨 말을 할지 이미 레퍼토리가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 어떠랴. 그 레퍼토리가 나를 사색하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서울에서 합천까지. 4시간은 꽤 긴 시간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기사님도 레퍼토리가 고갈되었을 것이다. 침묵과 이어지는 사색. 그 끝은 부모님 생각에 다다랐다. 4년 전 뇌출혈로 오래 입원하셨던 아버지, 평생 좋은 옷 한 번 못 입고 맛있는 음식은 자식에게 양보하신 어머니, 게임에 빠져 40대가 되어서야 철이 든 형, 돈을 좇는 생활을 혐오하며 안분지족을 실천하는 올해 마흔 누나. 그리고 20대 후반에 접어든 철없는 나. 5인 가족의 모습이 선선하게 떠올랐다.


 자연스럽게 가족 얘기를 하게 되었다. 초면인 기사님께 실례였겠지만, 깊은 얘기를 꺼냈다. 늦게 태어나 부모님께 아직 용돈 한 번 드리지 못했다는 얘기, 내가 첫째였다면 조금이나마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았을까 하는 얘기, 바쁜 생활 속에서 부모님을 챙겨드리지 못하는 불효자가 될까 두렵다는 얘기 등. 조용히 듣고 계시던 기사님이 답하셨다.

“너무 일찍 철들려고 하지 말아요. 모든 걸 짊어지려고 하지 말고 부모님께 전화 한 통 자주 드리고 잘 사는 모습 보여주는 게 부모님이 생각하는 효도일 거예요.”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 부모님이라면, 아니 대부분 부모님들이 그렇게 생각하실 게 뻔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명절 아니면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지도 못하는 내가 이런 위선을 떠는 게 우습다.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고 그 속에서 홀로 설 나는 하나 둘 핑계가 늘어갈 테고, 부모님은 1인치 2인치씩 마음이 넓어질 것이다. 자식에게는 한없이 넓어지는 마음, 그게 부모님 마음이라는 생각에 이번 귀향길은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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