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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말티즈 Feb 02. 2021

불안감을 이겨내는 힘

내일이 두려운 우리에게

 여름이 되면 서늘한 곳을 찾아 피서를 떠나기 마련이다. 본가가 합천 해인사 근처이다 보니 여름이 되면 계곡물을 찾아 덤벙 뛰어들곤 했다. 수영을 전혀 못하는 나로서는 가히 맥주병이라 할 만 하지만, 얕은 계곡물에 발을 담글 때의 청량감은 매년 계곡을 찾게 만들곤 했다. 고등학생이 되고는 학업에 바쁘다는 핑계로 계곡을 찾을 일이 거의 없었는데 대학생이 되고 고향 친구들과 함께 ‘고래수’라는 별명의 계곡을 찾게 되었다. 수심은 3m였던가 9m였던가… 나에겐 3m나 9m나 깊기는 매한가지라 수치가 크게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서늘한 공포, 깊은 물속엔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함에 친구들과는 달리 선뜻 물속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이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하나하나 짚어주었다. 첫째,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은 물 위로 자연스레 떠오르므로 팔만 저으면 뭍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 둘째, 도처에 비상 구조대원분들이 있어 위험이 생기면 바로 구해준다는 것. 셋째, 만일 구조대원들이 오지 않더라도 해병대 친구들이 나를 구해주겠다는 것. 하지만 나의 불안감은 쉬이 가시질 않았다. 여전히 물속엔 어떤 위험이 도사릴지 몰랐고, 미래는 어떨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미지’에 대한 불안감. 어쩌면 이는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본능일지도 모른다.


 고3 시절 수능을 마치고 결과를 기다릴 때가 생각난다. 수험표 뒷면에 가채점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당시 수능은 불수능이었다. 도저히 가채점을 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험을 마치고 나온 나에게 남은 것은 불안감뿐이었다. 힘든 수험 생활을 청산하고 싶은데 자신이 없었다. 매일 이런저런 생각에 불안감은 점점 쌓여만 갔다. 그리고 결과가 나오던 날, 생각했던 것보다 성적은 더 좋지 않았고,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생각에 절망했다.


 그렇게 재수를 하게 되었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재수학원에 들어간다는 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가족들 사이의 의견 차이도 있었고 만만찮은 비용에 스스로도 고민했지만 결국 모두 나를 지지해주었다. 변변한 사교육 한 번 받아본 적 없이 독학을 시켜서 미안하다는 부모님을 보며 더욱 나를 다잡았다. 결과 발표가 나기까지, 많은 불안감에 허덕였지만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을 안고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게 불안했던 그 시절,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었다. 바로 나를 온전히 사랑해주는 사람들, 그들만은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나를 응원하고 안아줄 것이라는 점이다.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공감해주지는 못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나누려고 애쓴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두려운 일들을 이겨내고 멋진 날개를 펼쳐 보일 수 있는 건 아닐까.


 힘들고 지칠 때 오히려 주위를 한 번 둘러보는 여유 있는 사람. 소중한 이가 힘들어할 때 조건 없이 응원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염원이 나의 소망과 만나 영롱한 빛을 피워낼 그 날. 우리가 함께한다는 사실은, 세상 어떤 아름다움보다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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