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까칠한말티즈 Aug 19. 2019

책향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이기주 작가님을 꼽는다. 최근 ‘언어의 온도’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기에 유명한 작가를 좋아하는 게 무슨 특별한 일이냐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최애’란 아름다운 활자 한 권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만난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 만남의 의미가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한다. 이기주 작가님과의 첫 만남은 종각역에 있는 Y 서점이었다. 그 당시 극도의 스트레스에 빠져 있었는데 마치 난생처음 외딴섬에 홀로 던져져 시퍼런 물이 차올라 나를 옥죄어오는 느낌이었다. 당연히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히 친구를 따라 들르게 된 곳이 Y 서점이었다.

 첫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Y 서점의 첫인상은 평범했다. 다른 서점에 비교했을 때 조금 더 크고 정리가 잘 되어있는, 그리고 사람이 많은, 그 정도의 특별함이었다. 저녁에 예정된 축구경기를 위해 친구와 인사하고 그대로 발길을 돌릴 수 있었던, 그 정도의 미련이었다. 다시 Y 서점을 찾게 된 이유는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아마 그 장소를 다시 찾고 싶은 막연함, 그 막연함에 끌렸던 것 같다. 첫눈에 반한 연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요?’

분명 이유는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유는 중요치 않은 것이리라. 사랑하기도 바쁜 시간에 이유 따위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 사람의 감정에 서린 은은함이란 형언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지 않을까. 나는 그 은은한 이끌림에 반해 Y 서점을 다시 찾게 되었고, 운명처럼 책향을 만났다.

 책향은 Y 서점에 마련된 독자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약간은 옛날 감성 일지 모르지만 책향이란 ‘책에서 나는 향기’를 말한다. 말 그대로 종이 냄새다. 오래되지 않은,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살아있는 반자연의 종이 냄새다. 그 위에 쓰인 활자들이 독자들의 가슴속에 어우러져 조화로운 향을 만든다. 그 향기가 좋아서 전자책을 뒤로하고 서점을 찾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나 역시도 그 속에서 종이책을 읽는 옛날 사람이다. ‘옛날’이라 표현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책향은 앉아서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요즘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닥에 쭈그려 몰래 읽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조명을 받으며 여유를 즐기는 책향은 소위 ‘정’이 깃든 공간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Y 서점은 책향을 전하는 공간으로 뇌리에 박혀 더 자주 애용하게 되었다.

 어찌 되었건 책향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것은 오랜만에 찾은 Y 서점에서 책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라졌다기보다 변했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마음속 책향은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는 앉을 공간도 없고 지하 구석탱이에 자리한 아웃사이더로 전락했다. 자연히 머무는 사람도 적어졌고 지하의 화장품, 문제집 코너 부근에 자리 잡다 보니 이질감만 남았다. 

 책향이란 공간의 퇴화가 나에게 남긴 메시지는 너무나 강렬했다. 종이 냄새에 취할 수 있는 공간. 자본주의 사회에서 눈치 보지 않고 새 책을 여유롭게 음미할 수 있는 공간. 진정한 책의 향기를 독자들에게 나눠주고픈 아름다운 마음. 이 모든 의미가 사라졌다. 생물학적으로 퇴화된다는 것은 쓸모없다는 뜻이다. 언제부터인지 책을 읽는 행위가 따분하게 비추어졌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에 따라 책향도 서서히 의미를 잃어왔던 것은 아닌지, 나의 20대에 독서와 함께한 추억을 장식했던 공간들이 서서히 사라져 가지는 않을지, 문득 두려움이 밀려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없이 무거워지는 시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