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진료가 힘들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루에 타인에게 몇 마디의 말을 건네고, 그중 타인을 불쾌하게 하는 말은 어느 정도의 비율을 차지할까?’
예로부터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는 말이 있다. 조금 확대해석해 본다면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나도 친절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고, 불쾌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나도 기분이 상한 티가 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속담 중에 이처럼 와닿는 말이 있을까 싶다.
스스로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화가 나면 뜨거운 온기를 쏘아붙이고는 상대방의 당혹감을 흡수해 승리감을 만끽하는 경우를 더러 볼 수 있다. 스스로는 ‘솔직함’ 내지 ‘쿨함’이란 단어로 포장하겠지만 상대방에게는 ‘무례함’이라는 단어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경계를 명확하게 할 수는 없지만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큼 공격적이라면, 이는 ‘무례함’에 가까운 표현이 아닐까 싶다.
이 날은 유난히도 무례한 보호자님들이 많았다. 녹취부터 시작해 다른 병원에 대한 비난, 수의사 집단에 대한 비난을 서슴지 않는 분들은 대다수 환자의 정보를 온전히 전달해주지 않고, 스스로가 무시당할 사람이 아니며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겠다는 엄포를 놓는 데 집중한다. 의학이 컴퓨터 게임처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닌 데다 환자의 정보도 완벽하게 얻지 못하고 문진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100%의 진료 역량을 끌어내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공격적인 사람들 앞에서는 조금 더 방어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아직 경험이 짧아서 일지 모르지만, 내가 만난 수의사들은 적어도 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밤낮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많은 보호자들은 처음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공격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수의사는 방어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고, 진료는 거기서부터 꼬인다. 반면 수의사를 믿고 모든 정보를 제공하며, 진득하게 따라오는 경우에는 온전히 진료에 집중할 수 있기에 진료가 순탄한 경우가 많다.
의료도 사람이 하는 행위다. 내 자식만큼 아낄 수는 없겠지만 내 환자는 끝까지 책임지는 직업이 수의사다. 모든 환자를 살릴 수는 없겠지만, 수의사는 내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인생을 바치는 사람들이다. 수의사와 환자, 그리고 보호자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일이 의료의 시작점이다. 하지만 수의사가 진료 외적인 것들을 걱정하게 된다면, 환자는 온전한 진료를 받기가 어려워진다.
나는 퇴원하는 환자에게 할인을 넣어주며 웃음 짓는다. 할인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수혈까지 한 아이를 퇴원시키는 후련함에, 끝까지 나를 믿고 따라와 준 보호자님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VIP는 요구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수의사와 보호자, 환자 간의 라포가 형성되고, 살려냈다는 뿌듯함이 VIP를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