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왕과 사는 남자>, 아직 안 본 이유

천만의 대열에서 조용히 탈주하기

by 글쓰는정혜

최근 연일 기록을 갱신하며 천만을 앞두고 있다는 영화가 있다.
<왕과 사는 남자>.


장항준 감독, 박지훈, 유해진 등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모으는 배우들이 출연했다. 흥행의 기세도 좋다. 어쩌면 이미 ‘봐야 할 영화’의 반열에 오른 작품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


남들보다 조금 더 자주 영화관을 찾는 편이지만, 이상하게도 이 작품에는 발걸음이 닿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가까운 지인들의 감상평이 마음에 오래 남았기 때문이다.


“볼 만은 한데, 그렇게까지 재밌진 않았어.”

누군가의 애매한 평가.

그리고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흘러나온 몇 줄의 혹평.
그 말들이 아주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지만, 미묘하게 내 선택에 스며들었다.


나는 영화를 고를 때 나만의 기준이 있다.
보고 난 뒤, 무엇이 남는가.

그것이 여운일 수도 있고, 질문일 수도 있다.
선명한 깨달음이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든 좋다. 다만 어떤 ‘무엇’이 마음에 걸려 남아 있어야 한다.

영화를 보고 난 뒤, 함께 본 사람과 그 ‘무엇’에 대해 오래 이야기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어쩌면 나는 그 시간을 위해 영화를 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왕과 사는 남자>의 후기들 속에는 내가 기대하는 ‘무엇’이 잘 보이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타인의 시선일 뿐이고, 내가 직접 보고 느끼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는 그 선택을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이게 틀린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주관으로 영화를 고르는 일 역시, 하나의 태도라고 믿는다.

남들이 모두 좋다고 말하는 영화가 반드시 나에게도 좋으리란 법은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천만의 대열에서 조용히 탈주한다.

대신 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그 영화 봤어요?”라는 질문이 나왔을 때, 대부분이 고개를 갸웃하는 다른 영화를 본다. 그러다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영화를 봤다는 이를 만나면, 그 반가움은 배로 커진다. 마치 비밀 동지를 발견한 것처럼.


영화는 결국 취향의 영역이다.
그리고 취향을 지킨다는 건, 때로는 기꺼이 아웃사이더가 되는 일이다.


오늘도 나는 그렇게, 조금 당당한 아웃사이더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