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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난 Sep 15. 2020

그림감상 -숲 속에서의 경배

Adoration in the forest



Adoration in the Forest (숲 속에서의 경배), Fra Filippo Lippi (c. 1406 – 1469)   


   


대학시절 미술사 강의에서 빈번히 등장했던 Fra Filippo Lippi의 작품이다. 보통 대학에서 미술사 강의를 들을 때는 작품의 제작년도, 테크닉, 소재, 상징성 등에 대해서 많이 듣게 된다. 그래서 정작 그림 자체를 제대로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감상'이라는 것을 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이것은 비단 대학시절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무엇을 잠깐 보고 재빨리 '정보를 획득'해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지체되고 느릿하게 움직이고 사고하는 것은 왠지 사회에서 도태되는 기분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누가 쫒아오는 것도 아닌데 마음에 늘 조바심을 품고 살았다. 그렇다고 대단히 빠르게 뭔가를 이루면서 살았던 것도 아니다. 난 여전히 느리고 비생산적이다. 그럼에도 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대학시절에 배웠던 Art History 수업이 생각났다. 그래서 좀 늦은감이 있지만 오늘부터 천천히 내가 대학 시절에 미술사 강의 때 듣고 보았던 그림들을 리뷰를 해볼까 한다.  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 마음 속에서 뭔가 정리되고 무언가 잊혀진 것을 다시금 기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래야 겠다. 


일단 강의 노트에 거칠게 휘갈겨 쓴 메모 아닌 메모을 보자면 (솔직히 내 글씨인데도 못알아보겠다...) 이 그림은 성경을 정확히 고증한 작품과는 거리가 멀다. 분명 아기 예수가 탄생하여 어머니 마리아와 첫 조우를 하는 장면인 듯 한데 장소가 성경에 나온 마굿간도 아니고 성 요셉St. Joseph 이나 동방박사 같은 인물들이 보이지 않는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화가의 내적인 영감 (inner inspiration)에 따라 만든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애초에 성당에 들어갈 작품이 아닌 메디치Medici라는 부유한 가문의 주문을 받아서 그린 그림이라 그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부유하고 득세하는 가문의 사적인 기도실 (Private Altar)에 들어갈 작품이었고,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주문하는 이가 원하는 내용을 상당 부분 반영하지 않았을까 하는 게 학계의 추측이다.


강의 노트를 보면 ‘no longer a sequence of historical events but a path that the individual soul can follow in its attempt to return to God’ 라고 적혀있다. 의미는 이는 단순히 역사적, 성서적 사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그림이 아닌 신에게 회귀하고자 하는 한 개인의 영혼이 밟는 길을 그린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난 이러한 변천Transition이 상당히 의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르네상스... 교리를 넘어 인간 자체를 기록하고 표현하기 시작한 그 시점이 아니던가. 그리고 우리네 인간이 발전하고 변모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주입되는 정보를 받아들이기만 하다가 스스로 해석하고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랄까.   

    

메디치 가문의 수장인 Cosimo Medici의 주문을 받고 그려진 그림이라고 하는데, 강의 기록을 보면 ‘Cosimo Medici- deeply troubled man’ 이라고 적혀져 있다. 분명 교수님이 하신 말을 그대로 받아 적은 것 같다. 골치 아프게 살았던 사람 혹은 내적 갈등이 심했던 사람으로 해석이 된다. 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상당한 돈과 권력이 있는 만큼 고민도 많았을 것 같다. 실상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느 정도까지의 편의는 보장되지만 마음의 평화와 기쁨이 축적된 부와 비례한다는 법칙은 없다. 어쨌든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은 지옥에 가는 것이 몹시도 걱정되었는지 교회를 짓거나 성화를 제작하는 작업에 큰 투자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Fra Fillipo Lippi 의 이름의 ‘Fra’는 형제, 즉 Brother를 뜻하며, 이는 수도사가 갖는 이름이다. 그는 수도원의 수도사이자 화가였지만 여자를 엄청 밝히는 속세적인 인물이였다고 알려진다. (여기서 '엄청 밝힌다' 정도로 순화해서 표현했지만 실제 기록을 보면 '밝히는' 정도를 넘어선다는 것이 포인트!) 어쨌든 기록을 보자면 참 파란만장하게 산 인물이다. 어쨌든 파란만장한 개인사에도 불구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같은 거장에게도 영감을 준 화가라고 하니 꽤나 독창적인 면은 있다.

   

지금 우리가 보면 그저 ‘잘 그려진’ 성화로 보일지 모르지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매우 새로운 느낌과 기법으로 표현된 그림이였을 것이다. 장족의 발전이랄까?     


Fillipo Lippi가 큰 영향을 받았다는 마사치오Masaccio의 그림만 봐도 뭔가 매우 딱딱하고 교회의 근엄한 느낌이 강한데, 그러한 교회의 단단하고 형식적인 면에서 조금 물러나서 개인의 내적인 영감에 집중한 것이 였보인다.


여성을 좀더 여성스럽고 부드럽고 아름답게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전의 남자 화가들이 그리는 추상적이고 딱딱한 여성상과는 퍽 다른 진짜 여자의 살결과 감각적인 아름다움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화가였다. 아마도 수도사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하니 여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렇기에 제대로 표현하는 게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난 개인적으로 이 그림의  톤(Tone),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미묘한 분위기가 좋다. 

무언가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여기에는 독특한 공간적 특성이 있다. 언뜻 보면 어두운 숲 속같은 느낌이지만, 보면 볼수록 평범한 숲속, 3차원적 공간이 아닌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야만 볼 수 있는 마음 속의 풍경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책을 읽듯이 이 그림은 들여다보고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그림이라는 것도 좋다.


강의 노트에는 ‘Little garden of Soul’ 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이 역시 교수님의 말씀을 받아 적은 것이다. 말 그대로 영혼의 작은 정원이라고 볼 수 있는 그림이다.


작품의 디테일, 성모 마리아의 옷소매

작품의 디테일도 볼 만하다. 전에는 그저 휙 지나가서 보지는 못했는데 그림을 확대해서 보니 성모마리아의 옷소매와 로브에 새겨진 무늬가 신비한 느낌을 준다. 패턴처럼 보이기도 하고 글씨처럼 보이기도 한다. 빛의 문자 (Fire letter)를 연상시킨다.    

아기 예수의 주변으로는 잘려진 나무들, 즉 장작들과 도끼가 보이는데, 도끼 위로는 뚜렷하게 화가의 이름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자신의 사인을 제법 센스있게 남겨두었다. 몰랐는데 성경구절에 도끼로 잘려진 나무들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고 한다.

      

도끼에 새겨진 화가의 이름

마태복음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And now also the axe is laid unto the root of the trees:

therefore every tree which bringeth not forth good fruit is hewn down, and cast into the fire.      



바닥을 보면 땅이 깨어져서 열려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지진으로 깨져 열린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 그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가 있고 옆에 서 있는 한 아이는 요셉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 위로는 한 수도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Saint Romuald 라는 수도사이다. 그림을 설명하는 어떤 해석에 따르면 이 영혼의 작은 정원은 저 수도사의 모습처럼 기도하고, 마음의 눈으로 깊게 들여다보아야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실제로 수도사가 깊은 묵상에 빠져 있을 때 성령과 연결되면서 드러난 장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그림이 전혀 달라보인다.


묵상 중인 Saint Romuald

맨 위에 떠올라 있는 인물은 바로 God, The Father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으레 ‘하느님’하면 떠올릴 수 있는 그런 모습이다. 인자한 할아버지상이랄까. 나도 어렸을 때는 하느님이 저렇게 생겼는줄 알았다. 구름 위에서 저런 모습의 할아버지가 잠을 자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 하느님 밑에는 Holy Spirit,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의 모습이 보인다. 날개를 활짝 펼치고 빛을 뿜고 있다.      





그 성령이 내뿜는 빛은 화살촉의 모양으로 아기 예수에게 내려오고 있다.

이 그림을 보다보면 내 마음 속에서 오래 전에 잊혀졌던 '하느님', '신'이라는 존재가 다시 떠오른다...

이 세상에서 화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일까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 Adoration in the Forest라는 작품은 비단 한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훗날 Lippi는 같은 작품의 다른 버전을 그렸고 그것은 현재 플로렌스 florence의 Uffizi 갤러리에 있다. 훗날 그린 작품은 뭔가 좀 더 세련된 느낌이 든다. 이 작품에서 하느님은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표현되기 보다는 손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표현이 더 좋은 것 같다. 그래도 그림 전체적인 느낌을 보고 더 좋은 그림을 고르라면 바로 이 작품이다. 두 번째 작품처럼 세련된 면은 없지만 뭔가 더 수수하고 순한 듯한 느낌이 성모마리아의 느낌과 더 어울리는 듯 하고 아기예수의 표정도 더 부드럽고 영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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