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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세시 Sep 20. 2020

그래서, 복직하시겠어요?

그 후 일 년

출산 전 휴직부터 육아휴직까지 19개월의 긴 휴직을 끝맺었다.


어린것을 떼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과 전처럼 일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으로 복직이 다가 올 즈음 매우 많이 갈등했다.

하지만 남편은 직업 전향을 위해 공부 중이었기에, 우리 가정의 수입원은 나뿐이었으므로 현실만 놓고 보면 이러한 내적 갈등은 무의미했다.

그럼에도 나는 갈등했다.


임신 후 처음 휴직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내 생에 이런 긴 쉼이 또 있을까 싶어서 그간 못했던 '나의 일'을 하고자 많은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복직이 얼마 남지 않고 보니 계획했던 모든 것을 하지 않았다. 나의 19개월은 남은 게 없는 느낌이었다.


'그냥 쉬어, 그것도 지금 뿐이야. 어차피 계획한 것 하나도 못해."

라고 웃으며 말하던 선배의 모습 떠올랐다.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나 보다.

너무나도 의욕 넘치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고, 그로써 직업도 바꿀 계획까지 세웠으니 말이다.

물론 그런 계획들을 악착같이 해내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나는 내가 의지박약임을 감안할 때 불가한 일이었던 것이다.


계획을 세우던 임신 중반까지만 해도 '육아'가 어떤 세계인지를 전혀 몰랐다.


육아는 듣기만 하고, 보기만 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세계


나도 선배 입장에서는 그  세계를 모르는 철부지였을 것이다.

이 세계는 지금까지 내가 알던 세계와 맞먹는 수준의 범위를 갖고 있고,

아이를 잉태한 순간부터야 아이와 함께 이 세계를 배워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복직을 했다.

긴 '자리비움'이었기에, 당연히 자리는 바뀌어 있었다.

아니, 자리가 없었다. 그들은 내가 '복직'할 줄 몰랐다고 한다.

인사팀이나 소속 부서에서는 복직 일주일 전까지도 복직 의향을 묻지 않았고, 가타부타 어떤 알림도 없었다.

문의 메일을 보내니, 복직 하루 전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복직하시겠어요?"

곤란한 목소리가 내 귀로 전해졌다.

나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일주일간은 자리도 없이 회의 테이블에 앉아서 바삐 돌아가는 사무실 풍경만 봐야 했다.

다음 이주일간은 자리는 주어졌으나 아무것도 없는 임시 책상의 앞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간은, 어떻게무를 받기 위해 애썼다.

그 사이 출근한다는 '설렘'도 그치고, 다시 일을 한다는 '신남'도 끝이 났다.

나는 주어질 업무가 간절해서 집에서 매우 먼 거리임에도 개의치 않고 부서를 바꿨지만, 그곳은 내가 십여 년간 해오던 일과는 거리가 먼 마케팅 소속 디자인팀이었다.

동안 마케팅과 디자인의 첫 글자도 써본 적 없는 마흔에, 갓 새내기처럼 일을 배우려니 모르는 게 대부분이고, 몰라서 벌어지는 실수도 잦았다.

팀에서는 인력부족으로 인원을 받기는 했지만, 높은 직급을 달고 나이 꽤나 먹은 사람에게 새내기 대하듯 친절하게 업무를 알려줄 사수도 없고, 팀원들은 나이와 직급만으로도 부담스러워했다.

이 팀의 특성상 구성원은 오랜 시간 함께 한 사람들이었고, 손발이 잘 맞았다.

그 사이에서 나는 일을 '못'하는 골치에 회식에 잘 끼지 않는 아웃사이더가 되어 자연스레 외면당했다.

팀과 나 모두 곤혹스러웠던 1년이었다.


1년간 나는 많은 '부정'에 시달리고 그 부정에 스스로에게 반문하며, 작은 일에도 크게 놀라는 토끼처럼 자존감이 쪼그라들었다.


내가 이렇게 일을 못하는 사람이었나.

내가 이렇게 멍청했나.

내가 이렇게 사람들과 못 어울렸나.


그렇다고 모든 육아휴직자의 복직이 이런 것은 아니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인사착오'로 형성된 특이한 결과물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내가 점차 배우자의 말대로 '나의 일'을 해야 할 것 같다고 강한 의지를 갖게 하였다.

나는 나를 무너지게 한 회사가 아닌, 나 스스로에게서 나의 지존감을 다시 쌓아가기로 했다.


최소한,

나는 생애 처음 시작한 육아도 제법 잘하고 있었고,

아이에 관해선 세상 누구보다 똑똑하고

아이 또래 부모들과 잘 지냈다.


지금 직장과 육아 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마음의 문을 단단히 세우고 활짝 열 수 있는  찾아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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