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깨서 울거나 열이 나고 아파도 배우자는어떻게 깨지 않고 코까지 골며 잘 수 있는지 신기하다.
내 주변엔 매우 현대적인, 셈이 정확한 아이 엄마가 있다.
배우자와 육아도, 살림도, 경제활동도 모두 최대한 똑같이 나누어하려 한다.
직장에서 퇴근 후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찾기부터재우기까지의 모든 육아와 살림을 분리하여 부부가 한주씩 돌아가며 역할을 바꾼다.
주말에는 엄마가 하루 아빠가 하루 독립적으로 아이를 돌보거나, 하루를 다 같이 참여하면 남은 하루는 오전 오후로 나누어 아이를 돌본다.
다행스럽게도 배우자가 그 요구를 잘 따라준다. 그리고 아이도 익숙한 듯 그것을 잘 따라간다.
처음엔 그 사실이 매우 부러웠다.
나는 아이가 태어난 처음부터 그렇게 똑부러지게 선을 긋지 못해서 아이도 내게만 매달리고 살림도 내가 하고 일까지 하나 하는 불만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다 그 생각을 그만 접고 말았다.
배우자는 결혼 초반에 이런 이야기를 자주 했다.
나중에 안 한다고 불만 갖지 말고, 길들일 수 있을 때 길들여요. 못하면 가르쳐주고, 안 하면 잔소리해서라도
신혼 초에 남편이 하는 살림이 불만족스러워서 내가 다 했더랬다.
배우자도 사십 평생을 설거지나 청소, 빨래를 해본 적이 없었으니 못하는 게 당연했다.
자취생활을 오래 한 나는 나만의 스타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스타일대로 해야 직성이 풀렸다.
그걸 일일이 가르치고, 애써 노력한 사람에게 잔소리하는 것도 못할 짓이었기에 살림은 자연스럽게 내가 가져오게 된 것이다.
처음에 배우자가 하는 일이라곤, 분리해놓은 재활용과 음식쓰레기와 일반쓰레기를 버려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는 그만해도 큰 불만이 없었다.
집에는 둘 뿐이어서 빨래도 자주 할 필요 없었고, 직장을 다니니 식사도 대부분 밖에서 해결했으므로 집에 머무는 시간도 길지 않았기에 설거지나 청소할 것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느라 밤새 쪽잠을 자고, 졸면서 젖을 먹이고, 되는대로 서서 3분 만에 밥을 머시듯 먹어치우고, 아이 분유병이며 하루에도 십 수벌 갈아입히는 옷가지, 아기로 인해 매일 닦아야 하는 아기 물건들과 집안은 아이가 낮잠 시간에도 한가롭게 쉬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남편은 자신의 가사에 화장실 청소를 더 하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완벽한 청소는 아니었으나 나는 그것을 무언으로 수용했다.
그러다 아이가 기기고 잡고서기 시작하자 나는 더욱이 아이 주변을 떠날 수 없었다. 살림은 날이 갈수록 덕지덕지 때가 붙는 것처럼 지저분해졌다.
내가 애써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설거지와 빨래와 아이 용품뿐이었다. 정리는 아이의 활동 반경이 전부였다.
그렇게 정리되지 않고 쌓여가는 살림들을 볼 때마다 불편한 마음을 갖은 채 어느덧 복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복직을 하고 많이 힘들어하자 배우자는 설거지 전담을 선언하였다.
일터는 내게 복직 후 어차피 전쟁터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아이와 살림도 매일전쟁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어째서 내 아이와 전쟁 같은 육아를 하고 있을까?
왜 육아는 영화나 사진이나 짧은 영상처럼 아름답지 않은 걸까?
어째서 그런 것들에서 풍기는 분위기처럼 살림과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엄마가 멋지지 않은 걸까?
아이가 주는 기쁨과 가정 이루고 살림을 꾸려 나가는데서 오는 삶의 안정감은 말로 표현이 안될 정도지만, 그 세 가지를 병행하는 데엔 그 이상의 '힘듦'이 있다. 첫아이는 첫아이대로, 둘째가 있다면 그것대로 말이다. 첫아이의 엄마는 엄마가 처음이라서 육아의 세계를 배워가며 엄마를 수행하느라 어렵고, 아이 둘 엄마는 둘째 엄마가 처음이라서 또 배우며 엄마를 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엄마에게 가장 큰 애착이 형성되기에 엄마와 아이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하지만 일터에서 돌아온 엄마는 이미 에너지를 대부분 소진한 상태라 아이와 조금 놀아주고 나면 그마저도 방전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가 밤잠을 어서 자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리고 쭉 아침까지 자주 길 원한다.
그래야 비로소 엄마의 '육아 퇴근'이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육아를 퇴근하고 '살림 출근'을 시작한다.
간혹 육퇴(육아 퇴근을 줄임말) 전에 저녁 살림을 시작하는데, 아이가 어릴수록 육퇴전에 마치기는 어렵다.
여기서 배우자의 역할이 참매우 중요한 것 같다.
엄마가 육아 퇴근을 준비하는 사이 배우자가 어떻게하느냐에 따라 엄마는 저녁 살림으로 출근하지 않아도 되거나 살림 퇴근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일하는 엄마들은 '저녁 살림'이랄게 없다. 육퇴를 한 후, 혹은 육퇴전에 시작하는 것이 하루 '전체 살림'이기 때문이다.
전일제로 일하는 엄마들은 평일에 일터로 출근 준비부터 퇴근까지 최소 11시간 이상을 할애하고, 2~5시간가량 육아를 하고 1~2시간 살림을 한다.
평소 일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기에 휴일에는 육아와 살림에 많은 할당을 한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늘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지 못해 불만 꾸러기가 무럭무럭 자란다.
만약, 배우자가 엄마의 1~2시간 살림 시간을 채워준다면 엄마는 아마 부족한 수면을 채우거나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약간의 일탈로써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살림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을 것이다.)
실제로 주변을 보면, 나의 배우자를 포함해 많은 남편들이 아내의 살림과 육아를 제법 많이 '도와'준다.
문제는 '도와'주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에 대한 불만이 계속된다.
자기 일처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우자들도 자기 일처럼 하지 않고 '도와'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내의 불만을 이해하기 힘들어하고 고마움을 표하는 대신 날아오는 잔소리나 불만스러운 목소리에 더불어 불만이 쌓인다.
며칠전, 같은 또래를 키우는 아이 엄마가 남편과 한 말다툼을 이야기했다.
주말에 운동하려고 이른 아침에 1시간 걷기를 다녀오고, 잠시 장을 보러 갈때 아이들을 돌봐주면 '내가 아이들을 돌봤다.'라고 생색내며 힘들어한단다. 최근에는 설거지를 하며 나온 음식쓰레기를 버려달라고 하니 내 의무도 아닌데 '부탁'하라고 했단다. 정리를 하면서 같이 치우지 않고 딴 일을 하는 자신에게 궁시렁거렸단다.
아이 엄마는 '나만의 아이인가?, 나만먹은 음식쓰레기인가? 내가 어질렀나?' 하는 의문이 들고 남편의 태도에 화가 난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 엄마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일하거나 내 일 보느라 바쁠 때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고, 설거지를 하거나 집안을 치우느라 애썼는데, 칭찬 한번 안 해줘서 불만이 쌓였나 봐요. 별것도 아닌 말 한마딘데 그걸 못해줘 마음이 상한 것 같아.
그렇다. 그 별것 아닌 한마디 고마움의 표현이 어쩌면 배우자에겐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불현듯 나의 배우자도 '잔소리'말고 '칭찬' 좀 해달라고 종종 이야기했던 게 생각이 났다.
일하는 엄마 대부분 일과 살림, 육아 세 가지 퇴근을 해야 하지만
배우자도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아내의 심기를 살피고 아아와 놀아주려 애쓰고 잘 못하는 살림에 기웃거리며 자기가 아내를 대신해서 '잘'하지 못한다는 부족감에 매일같이 좌절을 느끼고 있다.
그러니 자신감을 얻도록 칭찬해주고 고마워하자. 육아는 차치하고라도 살림의 퇴근이 빨라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