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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세시 Oct 16. 2020

20년째 회식에 적응 중입니다만

저녁회식은 3 不 (불편, 불요, 부담)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하향 조정되었다.

하향되자마자 팀에서 회식 일정을 잡았다.


올 것이 왔구나.


그간 코로나19 감염에 주의하느라 새벽에 더 일찍 일어나서 배우자의 도시락을 싸고, 음료를 마실 때조차 한 모금 마시고 마스크를 바로 쓰는 등의 노력은 팀과의 식사 중에 매번 깨졌다.

어쩔 수 없이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식사 중에도 이야기를 나누어 자리를 불편하게 했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준비된 비좁은 식당에서 가림막도 없이 함께 젓가락질하는 메뉴를 시키거나, 덜어먹기를 잊는 위 때문이었다.


맙소사, 그런데 회식이라니.


이런 행위들은 나의 노력을 매우 허탈하게 했다.

가족을 위해서, 특정 부위의 건강이 썩 좋지 않은 나를 위해서 감염병에 노출되지 않도록 많은 공은 들이는데 그런 것을 단박에 무너뜨려, 될 대로 되라지 심정이 욱욱 올라온다.

사회생활을 한 이래로 저녁 회식을 좋아했던 기억이 단 한 번도 없다.

동료들과의 어울림이 불편하거나 싫어서가 아니다. 하루에 얼마 없는 '내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이고, 심신을 곤란하게 하는 '술' 때문이다.

지금껏 회사생활을 하며 보아온 저녁 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연차가 있는 기혼자이거나, 애주가이거나, 집에 들어가기 싫어 구실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한때 '문화회식'이 유행했던 때가 있다.

일반적인 회식 대신 영화나 공연, 전시를 관람하거나 의미 있는 장소를 탐방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건강하고 가치 있는 회식이었다. (물론 저녁 회식으로 옹기종기 모여 소원했던 동료들 간에 친목을 도모하고 술로 풀어진 긴장과 무장으로 서로에게 에피소드를 안겨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가치가 있다.) 나는 문화회식을 매우 환영했고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때쯤부터 문화예술공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회식이 아닌 때에도 공연이나 전시를 많이 보게 되었다.

이런 분야로 새로운 시야를 넓히게 되어 회사의 회식을 감사하게 여긴 때도 있었다.


부서 내에서 입김이 제법 통했던 때쯤, 문화회식 열기가 식어 다시 저녁 회식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때 '점심 회식'을 제안했다. 당시 구성원들은 술이나 노래방 같은 곳을 좋아하는 이가 극히 일부라 그 의견에 적극 동의했다.

상사는 술을 매우 좋아했지만, 저녁 회식을 해도 재미가 없었던 탓인지 선뜻 점심 회식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한 부서는 몇 년간 점심 회식을 했다.


점심에 평소 자주 먹기 어려운 요리를 먹으러 가거나, 근교 풍경이 멋지고 식 후 산책이 가능한 장소를 가거나, 영화 관람과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곳을 가는 등 그때그때 의견을 모아 선정을 했다.

점심 회식은 부서장의 재량으로 업무시간 1시간가량을 포함해 진행되기에 구성원들의 만족도는 더 올라갔는지도 모른다.

점심 회식이 오래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만족도와 함께, 회식의 뒤탈이 없어 업무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저녁 회식은 3不을 가져온다.


불편, 불요, 부담

저녁 회식은 불편하다.

구성원들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고, 이론상 가능은 하지만 선택적으로 참여나 거부가 사실상 어렵다. 특히 연말연시, 반기에 해당하는 회식은 거부나 불참을 통보하면 마주하는 상사의 불편한 시선과 뒷날 동료들의 왜 참여하지 않았는지 묻는 불편한 질문들, 그리고 그에 대한 해명 아닌 해명은 자신 주변의 공기도, 마음도 불편하게 한다.

술을 마시지 않거나, 직접 돌봐야 하 가족이 있거나, 거주지가 매우 먼 경우는 특히 저녁 회식 소리에 회식일이 되기 전부터 며칠간 마음의 불편을 겪는다.

참여를 하게 되어도 선배나 상사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 알맞은 답을 해야 하는 것도 어려웠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도 불편하다

평소 교류가 없는 동료와 마주 앉거나 옆에 앉았을 때 분위기를 풀기 위해 애써 말을 붙이는 노력도 불편하다.

자리가 좀 되면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이는데, 소극적 성향인 경우 술을 썩 좋아하지 않거나 친해진 동료가 없을 땐 덩그러니 혼자 남아 소외를 느끼기도 한다.


저녁 회식은 불필요한 복지라고 생각되었다.

회식도 '일의 연장'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때 그 말이 유행처럼 여기저기서 우스갯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어째서 일의 연장인가,

일의 연장인데 왜 수당 지급 없이 자기 시간을 써야 하나,

일의 연장인데, 흔히 말하는 영업부의 술상무도 아니고 술은 왜 마셔야 하나.


회사에서 보편적으로 주어지는 복지라면, 자신의 의사에 따라 그 복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저녁 회식은 '조직활성화비'라는 명목으로 부여되는 예산을 사용하여, 때에 따라서는 강제 아닌 듯 강제의 복지혜택을 받게 된다.

그런 명목의 예산을 몽땅 회식에 쓰는 부서의 경우, 회식에  참여하지 않으면 자신의 몫으로 들어온 예산은 당사자에게 티끌의 혜택도 주지 않는다.

'내 몫의 예산을 분리해 주시면 잘 쓰겠습니다.'라고 하고 싶은 것을 목구멍 밑으로 다시 밀어 넣는다.

결국 참여하지 않거나 참여가 저조한 당사자에겐 불필요한 복지일 뿐이다.


불편과 불요는 결국 저녁 회식을 부담으로 느끼게 된다.

작년에 소속 사업장에서는 이런 회식과 워크숍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설문조사를 했다. 그 덕분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저녁 회식이나 주말 낀 워크숍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회식에 적극 동참하는 듯 보였으나 그 속사정은 모두 달랐던 것이다. 설문조사의 주요 항목은 조직활성화의 형태와 그 구성에 대한 자율성 그리고 소요시간이었다.

조사 통계로는 저녁 회식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많았는데, 가장 큰 원인으로는 술과 늦은 귀가였다.

그해 연말 회식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회식 선호 형태에 맞춰 3명 이상의 구성원으로 자율 회식을 하도록 주어졌고, 구성원 중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팀에서는 작은 규정을 마련해(파트별로 한다던가, 같은 업무끼리 묶는다던가, 선착순 그룹 후 남는 그룹을 묶는 등의 방식으로) 인원을 배분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회식을 했다. 조직활성화 일정이 끝나고 다시 설문조사에서 만족도가 매우 올라가 있었다.


일반적인 저녁 회식은 술에 대한 부담, 알게 모르게 행해지는 의전에 대한 부담, 늦은 귀가에 대한 부담, 다음날 컨디션에 대한 부담, 그에 따른 업무능력 저하에 대한 부담 등 여러 가지 부담을 초래한다.


저녁 회식에 부정적인 입장이라 그런 내용을 썼지만 긍정적 효과도 분명히 있다.

또한, 많은 기업들이 오랜 기간 건강한 회식 문화를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2000년 초반과 지금의 회식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담스럽다.


저녁 회식은 좋은 사람끼리 했으면 좋겠다.




하.. 코로나19로 인해 공식적으로는 올해 두 번째인데,

 회식을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이 문제로구나.


어차피 참석할 거면서.

괜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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