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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세시 Oct 23. 2020

미혼의 폐경

인생 2막 1장

며칠 전, 딸아이와 친정 가는 길에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나 아무래도 폐경이 온 것 같아.


서른일곱에 폐경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도 지난해부터 이 단어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늦은 나이에 출산을 하고 1년 8개월 만에 다시 생리를 시작했을 때, 내 몸이 전과 다름을 느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두 자매의 엄마는 서른아홉에 폐경이 왔더랬다.


동생은 어째서 폐경이 왔다고 판단했는지 자기 상태를 말하기 시작했다.


지난 1년간 생리 일정이 불규칙하고 거르는 달이 많았다.

1년간 네 번의 생리였으나 양도 전의 반도 안되었고 이틀도 안되어 끝났다.

마지막 생리가 올해 4월이었고, 하루 만에 그쳤다.

최근 몇 개월 동안 쉽게 피로하고 온도 변화에 적응이 잘 안됐다.

우울하거나 짜증 나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최근 두 달 사이 살이 급격하게 쪘다.


동생이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것들은, 그간 내가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찾아봤던 많은 전조 증상과 일치했다. 동생은 이야기를 더해갈수록  온통 '임신'과 '아이'에 대한 욕구로 이어져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흥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생은 아이를 매우 갖고 싶어 하고, 내년 초에 결혼도 계획하고 있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나도 조언하기 어려웠고, 동생도 당장 뾰족한 수가 없었다.

1시간을 넘는 통화가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있는 나를 깨운 건 딸아이였다.


엄마, 배고파요.


친정에 도착해서 아이에게 점심을 먹인 뒤 내내 핸드폰을 손에 들고 조기폐경에 대해 검색했다.

그러며 알게 된 사실은 지금이 엄마세대보다 폐경 평균 연령이 현저히 낮아졌다는 것이다.

그리 따져보니 엄마는 지금으로 치면 30대 초중반에 폐경이 온 것이다. 세상에...


엄마는 내게 놀아달라고 칭얼대는 아이를 얼르며 밖에 데리고 나갔다. 할머니 손을 잡고 대똥대똥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 위로, 팰트로 오려 붙인 것처럼 선명하게 떠있는 구름이 보였다.

폐경이라는 우울한 단어가 무색하게, 화창한 날씨 속에 형형색색 꽃과 산산한 바람과 한창때를 맞은 새들 소리가 들어왔다.


그때 엄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엄마는 돌아와서 황구 봄이랑 손녀가 어떻게 놀았는지 한껏 늘어놓으셨다.

나는 엄마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리 엄마, 이른 폐경때문이구나.


또래보다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이유도

골다공증이 매우 심한 이유도

한동안 잠을 잘 이루지 못한 것도.


"엄마, 엄마 폐경 일찍 왔잖아. 속상하지 않았어?"


엄마의 신나는 얘기 속에 불쑥 묻자, 엄마는 하던 말을 멈추고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속상은 무슨, 세상 속 편했지.


당혹스러움이 밀려왔다. 엄마는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것을 벗어버린 듯 거칠 것이 없었다고 한다.

이미 자녀를 두어서일까? 하지만 나는 자녀가 있어도 폐경은 매우 속상하고 또 속상할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엄마의 성격은 시원시원해서 미련을 잘 두지 않고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린다.

오히려 너무 잘 버려서 문제일 때도 있었다. 성격 탓일까?


엄마에게 폐경 후의 삶이 달라진 것 같으냐고 물었다.

엄마는 기본 역할의 변화는 없지만 사회성은 달라졌다고 한다. 폐경이 오자 오히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실제로 엄마는 폐경 후부터 그 전과 달리 매우 다양한 활동을 하셨다.

산악동호회를 운영하시고, 친목 모임을 많이 만들었으며, 부녀회장을 지속하고, 선거캠프에 참여하시는 등 활동반경이 매우 넓어졌다. 정말 거칠 것이 없는 활동이었다.

엄마에게 폐경은 단순히 '두려움과 슬픔, 잃음'의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도약과 도전이었던 모양이다.

생각의 차이일까? 이런 생각은 갈팡질팡, 오락가락하는 내 직업에 대한 결정에도 미쳤다.

나는 복직 후 여러 사유로 머릿속에 퇴사와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내내 생각해왔지만,


두려웠다.

지금껏 직장생활을 해온 내가 세상 물정 모르고 따박따박 월급 주는 회사를 박차고 나오는 건 아닌지,

강제로라도 규칙적인 생활을 지속시켜주는 '회사'를 떠나면 불규칙한 생활로 몸과 건강과 가정을 해치진 않을지,

이 나이에, 유부녀에 아이 엄마라는 환경에서 퇴사마저 하면, 마치 기능이 끝난 폐경처럼 주부생활만 하며'나'를 버려두게 되는 건 아닌지.


퇴사하면 잃게 될 많은 것이 아까웠다.

생활을 좀 더 풍족하게 해주는 정기적인 월급, 그 안에서 주는 꿀 같은 휴식, 복리후생, 가사와 육아 그리고 나에 대한 배우자의 배려, 아무 성과도 없이 흘러갈 시간들, 그리고 내 이름.


이런 것들이 쌓여 결국 퇴사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제대로 된 나를 찾지 못하고 주부라는 이름으로, 아이의 엄마, 누군가의 배우자라는 이름으로 안주하면, 결국 나 자신을 잃고 우울감에 빠지거나 슬퍼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엄마는 그것을 슬퍼하거나 우울해하지 않고 극복할 방법을 찾은 것이다.

엄마는 갑자기 맞이했고 나는 준비할 수 있다.

폐경도, 퇴사로 맞이할 제2막의 인생도.


친정에서 집으로 돌아와 잠든 아이를 뉘이고 배우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 끝에 점진적인 퇴사 계획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퇴사를 두려워고 퇴사로 후회와 슬퍼할 일들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배우자와 대화를 통해 정리된 계획 실행 단계 첫 번째는, 내 적성에 맞고 즐거워하면서 생산성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일정기간 탐색하기로 했다.

이렇게 탐색한 몇 가지의 일들을 조금씩 접해보고, 최종 하나 선택하여 자기계발에 들어갈 예정이다.




동생에게 일어나는 일은 지속적으로 조기폐경에 대한 검색도 하고 자문도 구하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조기폐경 증상을 자각하고 치료를 통해 현재 다시 생리를 하는 사례들이 많았다. 동생이 이 일로 매우 힘들어할 것을 알기에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묻기가 매우 조심스러웠다.

대신, 평소보다 자주 연락하며, 이와 관련되어 내가 새로 알게된 정보들을 그때그때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동생이 이 일로 많은 것이 무너질까 걱정스러웠다.


'이건 매우 중대한 일이지만 그것에만 몰입하여 인생에 있어 중요한 다른것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고 생각을 전했다. 동생도 내가 전한 말 뜻을 잘 알 것이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아도 얼마나 걱정하고 있을지도...

동생이 하루빨리 귀국하여 적기에 치료를 받고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리 자매 모두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상황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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