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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세시 Nov 10. 2020

괜찮아요, 혼자 먹을게요

사내식당에서 혼밥이 그렇게 어렵습니다.

60분.

이것은 황금 같은 점심시간, 한국 직장인들 대부분의 식사시간이다.

직장인들은 이 시간을 매우 기다린다. 배가 고파서이기도 하겠지만, 회사에서 완전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는 식사가 끝나면 산책을 하는 사람도 있고, 차를 마시며 수다를 하는 사람도 있고, 업무시간에는 자리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식사를 하는 동안, 그리고 식사 후에도 종종 해방감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은 약속이 없으면 대부분 팀원들이 함께 식사한다. 구성원들끼리 밥을 먹으면 대게 회사 이야기를 한다. 더러는 TV 프로그램 이야기나, 스포츠, 영화, 어제 산 신발 등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회사 이야기다. 옆 팀의 누가 어쨌네, 위층 부서가 저쨌네, 오늘 마감하는 일이 어떻네, 오후 보고 자료가 그렇네.

특히 팀장이 함께 식사 중이고 팀에서 진행하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에는 식사를 곁들인 회의시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팀장 가까이에 앉은 구성원은 팀장의 질문에 진행 상황 등을 보고 한다.  간혹 이야기 중에 업무 지시를 추가로 받아, 자신만의 시간임에도 무임금 노동을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식사시간에 '제발' 업무 얘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이 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5분'

줄을 서고, 배식을 아서 밥을 먹고, 엘리베이터를 타기까지의 시간이다.

식사시간에 별다른 이슈가 없을 때엔, 특히나 요즘 같은 상황에선 식사 마무리가 더욱 빨리 진행된다. 나는 외부에서 밥을 먹을 때 남자들만큼 '빨리' 먹는다는 소리를 듣는데, 그럼에도 팀 구성원들과 식사를 할 때면 가장 '늦게'먹어 눈치 아닌 눈치를 보고, 사람들 여럿을 기다리게 하는 불편함을 겪는다. 식사시간엔 주로 듣기만 하지 말하는 법이 없는데도, 어째서 나의 식사는 그들에 비해 '천천히' 진행될까?

나는 종종 헷갈렸다. 내가 밥을 느리게 먹는 것인지, 그들이 밥을 빨리 먹는 것인지. 내가 밥을 반 정도 먹었을 때면 이미 그들은 잔반을 한 곳으로 모으기 시작한다. 나는 이때부터 매우 초조하고 급해진다. 양 볼 가득 욱여넣고 대충 씹어 넘기는 이것이 '점심밥'인지, '먹이'인지 분간이 안 갔다.

맛을 음미하는 것은 애초에 하지도 않는다. 시작부터 내가 늦게 먹을 것을 알기에 나름 최선을 다해 꼭꼭 씹어 먹되, 빠르게 먹기를 시전 하지만 아직 스킬이 부족한 탓에 여전히 늘 '기다림'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참으로 허무하게, 20년을 갈고닦아도 잘 늘지 않는 능력이다.


매일 반복되는 점심시간에 그들은 날 보며 눈빛으로 '제발 빨리 좀 먹어요.' 할 테고, 나는 그들을 생각하며 '왜 이렇게 빨리 먹느냐'라고 타박하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꿋꿋하게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만, 가끔은 그들의 기다림을 못 견디겠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반이상의 밥을 남기고 아까워하며 잔반을 쓸어 담는다.

내가 잔반을 모으는 사이 그들은 마스크를 쓰고 식판을 손으로 잡고 일어설 준비를 했다. 내게 입을 닦거나 느긋하게 정리를 하는 등의 여유는 없다.


나는 이 두 가지 불편함으로, 행복해야 할 마땅한 내 점심시간을 빼앗긴다. 15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오면 남는 점심시간은 45분이나 된다. 보통은 자리에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거나, 커피를 느긋하게 마시며 그간 미뤄둔 물품들도 구매하지만 어쩐지 즐겁지 않다.

속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급하게 먹은 탓인지, 제대로 씹지 않고 넘긴 탓인지, 아니면 팀장의 체할듯한 식사 회의 때문인지, 음식을 양 껏 먹지 못했음에도 속은 꽉 막힌 것 같고 위가 싸한 기분이 드는 것이 영 거슬린다. 이 더부룩한 기분은 퇴근이 다 될 무렵까지 지속된다. 업무를 집중하는 중에도 중간중간 위의 불편함은 집중을 깨트린다. 속이 좋지 않아 그 좋아하는 커피도 절반 이상을 남긴다.

어느 날 문득, 앞자리나 옆자리의 동료가 보았을 때 혹시, 나는 오후 내내 인상을 쓰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함이 크게 다가올 때마다 수시로 명치를 비비며 더부룩함을 달래 볼 때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옆자리 동료에게 내가 혹시 자주 인상을 쓰는지 물어봤다.


병원을 가서 검사를 받아봐요. 너무 자주 체하는 것 같아.


병원이라... 평소 집이나 외부에서 식사 시에는 탈이 없었는데 라고 생각하며,  내 위가 유독 회사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나는 이대로 가다간 위장병이 날 것 같았다. 어쩌면 이미 위장병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평소 내 식습관은 그리 나쁜 편이 아닌데 이러는 이유는 평일 점심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겐 처방이 필요했다.


사내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은 왕따설을 겪기도 한다. 어쩌다 한 번이야 혼자 먹을 수 있겠지만, 혼자 먹는 사람이 거의 없어 혼자 식사를 하는 사람은 더욱 눈에 띈다.

지난날 우리 팀원들도 매일 혼자 식사를 하는 아는 부서의 사람을 보면 자리에까지 와서 쑤군쑤군거렸다. 그럼에도 나는 혼자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내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어본 적이 없고 저런 오해를 견딜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무엇보다 팀에 어떻게 말을 해야 오해 없이 혼자 먹기 편할지 고민되었다. 일전에도 혼자 먹을 생각으로 따로 먹겠다고 했다가 그 이유를 듣고는 '기다려주겠다', '따로 먹으면 우리가 무슨 소리를 듣겠느냐', '눈치 보지 말아라 우린 괜찮다' 등의 답을 들으며 끌려가듯 함께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로 사흘째 혼밥(혼자 밥 먹다) 중이다.

느긋하게 먹을 만큼의 양을 담아, 천천히 식사를 하고 올라와도 내게는 30분의 시간이 남는다. 자리를 찾기 위해 식판을 들고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아도 되고, 혼자 식사를 하니 같이 먹는 사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잔반이 없어 뿌듯하고, 보고 싶었던 콘텐츠를 휴대폰으로 보며 먹을 수도 있고, 위도 편안하다. 위가 편해지니 오후 업무 집중도도 올라가고 인상도 덜 쓰게 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좋아하지만 유일하게 마실 수 있는, 한 잔의 커피를 천천히 모두 마실 수 있어 좋다.


한편 혼자 먹는 데에 따른 부담도 있다.

팀장은 혼자 먹는 것에 대해 심기 불편함을 드러냈고, 팀원들도 같이 먹기를 권유하고 있어 눈치가 보인다. 스스로 그들의 입장에서 느끼기에 유독 튀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숟가락을 함께 담가 찌개를 떠먹는 문화가 익숙한 한국에서, 함께 하는 식사는 화합을 상징한다. 그렇기에 조직활성화의 많은 부분을 회식이 차지 하는지도 모른다. 서먹하거나 싸움이 있던 사이도 함께 식사를 하며 풀기도 하고, '언제 밥이나 먹자'라는 게 인사말이 되는 것도 그러한 이치일 것이다.

또 한 가지의 부담은 동료들과의 교류가 적어진다는 것이다. 업무시간 내에도 교류를 하지만, 업무시간엔 대부분 업무와 관련된 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업무 연관성이 없는 동료와는 종일 가도 눈빛 한번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에 그들을 통해 듣는 정보도 많다. 특히 관심이 없던 분야의 일들은 더욱 그러하다. 드라마나 영 대한 이야기, 화장품이나 액세서리에 대한 이야기, 어제 관람한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 일반적인 사회이슈들과 그들의 생각. 이런 것들은 내게 단 시간 내에 많은 정보와 함께 일반인들의 솔직한 의견을 기도 하는 기회인데, 이것을 스스로 박탈해버린 것이다.


혼밥, 혼밥 하는 시대가 왔어도 대부분 삼삼오오 그룹 단위로 밥을 먹는 큰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기란 아직까지는 아주 당연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은 지난날 내 상사였던 분이 배식판을 들고 자리를 찾다 나를 발견하고는 아는 척을 했다.


왜 혼자 먹고 있어? 어제도 혼자 먹는 것 같던데.. 같이 먹을까?


그분의 말투와 눈빛에서 느껴지는 것은, ‘왜 너만 약속이 없니?’라던가, ‘설마 왕따 당하니?’의 돌림말 같았다. 나는 먹던 것을 멈추고 멋쩍게 웃으며 인사했다.


괜찮아요, 혼자 먹을게요. 다들 너무 빨리 먹어서, 혼자 먹는 게 편해요 ;D


그는 나의 대답을 듣고 동료들이 맡아 놓은 자리로 갔다.

그분의 아는 척에 나는 다시 속이 불편해졌다. 밥을 빨리 먹어서도 아니고, 업무 이야기 꽃을 피워서도 아니다. 사내식당에서도 혼자 먹는 점심밥이 당연하고 쉬워지려면 서로 눈치 주지 말고, 눈치 보지 않고 혼자 먹는 것도  당연하다는 인식으로 쳐다보거나 쑤군대지 않는 것, 혼자 먹는 사람도 그것들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여러모로 따져 보았을 때, 온전히 내 점심시간을 갖는 것이 무척 마음에 든다.

한동안은 계속 이 상태를 유지하고 싶지만, 팀원들이나 팀장이 다른 부서를 통해 내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그들의 입장때문에라도 또 같이 먹어야 될 것이다.


하, 사내식당에서 혼자 밥 먹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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