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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세시 Oct 23. 2020

아이폰, 그게 뭐라고.

남편을 기쁘게 해 주려다 그만

나는 휴대폰이 나온 이래로 애플 제품을 써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내 배우자는 애플돌이. 노트북도, 마우스도, 패드도, 휴대폰도 애플 제품이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어느 정도 그 선호는 이해가 갔다.

그쪽 계통 사람들이 특히 더 많이 좋아한다더라는 말을 종종 들었기 때문이다.


내 권유로 지금 휴대폰은 잠시 안드로이드에 와있지만, 늘 아이폰에 대한 로망이 있다.

배우자는 아이폰 출시일이 정해지기 전부터 설레 했다.

매일 내게 그 얘기를 했고, 별 다른 정보가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그것에 대해 찾아봤다.

애플에 '애'자도 관심이 없는 내게는 그저 귀를 통과해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이었다.


출시일이 정해지자 남편의 호들갑은 기승을 부렸다.

시도 때도 없이 그에 대해 찾아보고, 나에게 기회만 되면 이야기했다.

나는 결국, 그렇게 갈망하는 휴대폰을 허락하고 말았다.


"오늘 새벽 00시부터 사전예약 한데."


맙소사, 12시 전엔 자는데 00시부터 그걸 사겠다니.

나는 애써 졸린 눈을 치켜세우려 일부러 집안일을 해가며 참았다.

남편은 5분 전부터 흥분상태였다.

남편과 내 휴대폰에 동시 로그인을 하고, 카드 할인을 확인 후 해당되는 쪽에서 구입하기로 했다.

내 생에 이런 구매 작전은 처음이었다.

이건, 내 인생 가치관에 반하는 일이었다.

복잡한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단순하게 살기를 원해왔기 때문에 지금껏 살면서 무엇도 분초를 다투며 경쟁하지 않았다.

그런데 스스로 구매력이 있던 때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처음 이런 경쟁적 분초 다툼을 하게 된 것이다.


00시가 돼자 우리는 미리 찜 상품을 매섭게 눌렀지만,

몇 번 오류가 뜨고, 다시 정상 페이지가 떴을 땐 이미 판매가 종료되어 있었다.

황망한 3분의 시간.

그 3분 동안 내 가슴도 미친 듯이 나댔고, 3분이 지나서는 심장이 푹 꺼진 느낌이었다.


아이폰, 이게 뭐라고.


배우자의 얼굴을 보니 실망한 듯했다.

배우자는 조용히 자기 방으로 가서 마구 새로고침을 하기 시작했다.

새로고침을 마구 해대자 간혹 다시 구매 버튼이 열렸다.

우리는 기쁜 마음에 잽싸게 결제를 눌렀으나, 결제 도중 조기 품절이 떴다.

렇게 반복하기를 두 시간이 넘었다.

더불어 기대와 실망도 반복하는 시간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기대와 실망을 갖기는 내 생에 처음이었다.

나는 늦어도 다섯 시에는 일어나야 해서, 어서 자자고 재촉을 했다. 남편은 미련 남 얼굴로 잠자리에 들었다.


늦잠을 잘까봐 불안한 마음에 두 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일어났다.

차라리 일찍 출근해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막상 사무실에 오니 피곤하지 않았다. 소중한 개인 시간인데 뭘 할까 고민하다, 새벽에 못다 한 일을 해보기로 했다.

한 시간 동안 수천번 새로고침 했다. 한 번도 다시 구매하기가 뜨질 않았다.

'그래, 시간이 너무 이르잖아. 취소할 사람도 자고 있겠지.'

곧 나의 출근시간이기에 그만 포기하려는 찰나 구매하기가 떴다.


나는 또다시 심장이 쿵쾅거렸다. 결제하기 버튼이 사라진 것처럼 눈이 허둥댔다.

결제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연달아 두 번이나 실수해 지웠다.

'아, 끝났. 또 손 빠른 사람 차지가 됐겠구나.' 하는 절망감이 밀려왔다.

결제 결과를 알려주기 위한 동글뱅이가 돌고 있었다. 아까운 내 한 시간.



'결제가 정상 처리되었습니다.'

이 문구가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있었나.

나는 너무 신이 나서, 배우자에게 이 소식을 빨리 알려주고 싶었다.

시간을 보니 아직 7시가 채 안되었다.

8시까지 참았다가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생각하니 혼자 비실비실 웃음이 삐져나왔고, 좋아할 배우자를 떠올리니 마음이 설레었다.


아이폰, 이게 뭐라고.


오늘 내 기분까지 즐겁게 해 주는구나.

보태서 이런 경쟁적 구매로 성공의 맛을 알게 해 주다니,

이 일을 배우자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고마워하라고 해야 하나.






남편은 내게 늘 이야기했다.

당신처럼 직관적이고 복잡한 것 싫어하는 사람들은 특히 아이폰을 써야 해


그러나 나는 아마도 평생 쓰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쓰기 위해 익숙한 것을 벗어나는 복잡함도 싫으니까.


어쩌다 결혼기념일 선물이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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