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게 도서관은 작은 세계였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서관 인근 식당에서 일을 하시던 어머니를 따라 함께 출근하였고 나는 식당 옆 도서관에 머물다가 같이 퇴근하곤 했다.
여행서를 통해 한국말고도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접하였고 푸른 수염을 만나 호러라는 장르를 알게 되었으며 소설 속 주인공들과 거위를 타고 모험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도서관이라는 세계에 빠져있었다. (그땐 유난히 푸른 수염이 무서웠던 게 기억난다.)
그것도 인연인지 전공도 아르바이트도 취미도 삶의 많은 부분이 책과 연관되어버렸다.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책벌레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종이책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 하나임을 밝히며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전자책은 단지 특정한 힙스터들의 문화가 아니며 그들을 포함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더 풍요로운 “읽기”를 제공하는 대중의 문화라는 것을 밝히고 싶어서이다.
힙스터 : 대중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고유한 패션과 음악 문화를 좇는 부류를 뜻한다. 인디 영화, 인디 음악과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일반 대중과 자신들을 구분하면서 지적 우월감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과연 무엇 때문에 전자책을 읽는가?
1. 언제 어디서나 책을 소비할 수 있는 즉시성
큰 어려움이 있었을 때 누군가에게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을 소개 해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책을 구하기 위해 인터넷 서점을 검색하고 오프라인 매장의 위치를 검색했지만 결국 난 전자책 서점에서 구입을 하게 되었다. 이틀이라는 배송을 기다릴 여유가 없었고 서점을 가려면 1시간 이상을 소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겐 스마트폰과 아이패드가 있었고 전자책 서점은 내가 서있는 바로 그 장소를 도서관으로 만들어 주었다.
일본 여행 중 츠타야 서점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서점에 대해 더 알고 관광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난 전자책 서점에 접속해 츠타야 서점의 설립자가 쓴 “지적 자본론”이라는 책을 바로 구매해 볼 수 있었다. 물론 그곳의 방문과 경험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얼마 전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는 전자책으로 어마어마하게 팔렸다. 전자책 서점 리디북스에서는 수상 당일 1분당 4권이 팔릴 정도로 인기였다. 언론에서 발생된 이슈는 강렬하게 소비자들의 궁금증을 끌어올렸고 사람들은 그 호기심을 당장 풀고 싶다는 욕망에 전자책을 결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구매자들은 언론에 노출된 양서를 남들보다 먼저 읽는다는 묘한 쾌감마저 느끼고 있다.
누구보다 먼저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은 사회에선 중요한 권리와 힘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전자책은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빠르고 신속하게 그 권리를 전달한다. 알고 이용하느냐 모르고 이용하느냐에 대한 차이일 뿐이다.
2. 뛰어난 보관성 / 이동성
나는 항상 여행을 다닐 때 가장 보고 싶었던 책을 몇 권 들고 다니는 편이다. 그럴 때마다 짐 가방에 몇 권의 책을 넣어야 할지 어떤 책을 선택해야 할지 넣고 빼고를 반복하며 씨름하곤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전자책 디바이스 하나 들고 다니면 어떤 책을 갖고 갈지 얼마나 갖고 갈지는 무의미하다. 오히려 여행지에서 관련된 책을 부담 없이 구해볼 수도 있다.
이사를 가야 하는데 책만 100여 권이 쌓여있었다. 막상 가지고 가자니 돈도 들고 정리에 도움도 안 되고 그렇다고 집이 넉넉히 큰 것도 아니라 추리고 추려 대부분의 책들을 중고서점에 팔아버렸다. 책을 산 돈이 아깝다기보단 한번 더 읽어볼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좋은 책도 있었고 남기고 싶은 문장도 있었지만 결국 종이책들은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나더라 마치 열정이 식은 오래된 연인처럼… 결국 조금 더 여유 있는 집을 구하기 전까지는 전자책을 통해 미니멀리즘을 지향하기로 했다. 나만의 공간이 비좁을수록 종이책도 결국 사치가 되더라.
3. 합리적인 가격의 콘텐츠 소비
전자책은 보통 종이책보다 30% 정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가 된다. 게다가 전자책 서점의 이벤트나 출판사의 이벤트가 더해지면 편의점에서 사는 과자 한 봉지보다 싼 가격에 양질의 책을 사 볼 수가 있다.
소유보단 소비를 하고 싶었던 시절 그 옛날 책을 빌려주는 서점이 사라지고 우리는 저 멀리 있는 공립도서관이 아니면 책을 빌릴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전자책 서점은 대여 서비스를 도입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책이 소멸되는 기술을 도입했다. 콘텐츠의 가격은 사서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낮아졌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구매를 진행했다.
사람들은 전자책이 아직도 너무 비싸다고 생각 하지만…. 실상 스타벅스 커피 한잔이면 책 한 권을 사고 커피 열 잔이면 전자책 디바이스를 한 대 살 수 있다. 나 또한 커피를 매우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커핀 한잔의 가치보다 한 권의 책이 더 가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4. 책을 접하는 다양한 미래
전자책은 디지털 콘텐츠로서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에 구속될 필요가 없다. 때문에 전자책 구독 모델이나 전자책 회원제 모델 또는 인터렉티브 전자책 등 다양한 모델로 탈바꿈하여 독자를 공략할 것이다. 소비자는 자신에게 맞는 더 합리적이고 폭넓은 서비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광고를 보면 책이 무료가 되는 플랫폼도 있었으며 오직 웹 서비스만 제공하여 출판사와 다이렉트로 독자를 연결시켜준다는 플랫폼도 있다. 이들의 포맷이나 형식은 다르지만 같은 전자책이고 미래의 “읽기”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서비스들이기도 하다.
읽는 행동 양식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전자책의 형광팬이나 메모 리뷰 등은 클라우드에 연동되어 내가 어떤 디바이스를 이용하더라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고 내가 읽은 책이 몇 명이 읽었는지 누가 함께 읽었는지 어떤 페이지가 인기가 많았는지 등을 나누며 독후 활동으로 소셜 리딩이 활성화될 것이다.
영국에서는 매년 독립출판 작가들이 7%씩 늘어나고 있으며 그레이의 그림자나 마션 등 성공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성장한다고 해서 출판사가 위기라고 보는가? 그렇지 않다. 출판사에서 나오는 상품과 1인 출판에서 나오는 상품은 격이 다르고 결과도 다르다. 단, 더 많은 사람에게 출판의 기회를 주고 독자에게 폭넓은 선택의 기회를 준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한국의 기술과 전자책을 홍보하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의 북페어를 다녀본 적이 있다. 대중들은 물론 전자책의 뛰어난 확장성과 화려한 그래픽에 매료가 되었지만 지자체들은 전자책이 단순한 흥미를 넘어 교육의 양극화나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고 적극적이었다. 나는 이에 깊이 동의한다. 하나의 IT 인프라가 구축되면 교육의 딜리버리에 대한 한계비용이 매우 낮아지기 때문에 얼마든지 전자책으로 교육의 복지를 실현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는 정치인이나 전문가가 있길 바란다,)
전자책은 이렇듯 다양한 쓰임새로 앞으로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차지해나갈 것이다.
말 대신 금속으로 된 자동차가 나왔을 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서워했지만 천천히 적응해나갔고 e-mail이 나왔을 때도 종이 편지를 쓰자는 운동까지 했지만 결국 e-mail 은 mail이 되었다. 조금은 더디더라도 전자책 또한 ebook에서 book으로 정의될 날도 멀지 않았다. 어렸을때부터 아이폰으로 뽀로로를 보고 전자칠판으로 교과서를 배운 디지털 에이지들이 무섭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내 얘기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10년째 전자책 시장은 오지 않는다고 콧방귀 뀔 수도 있지만 느리게 온다고 해서 미래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다. 시대의 흐름 앞에 우리는 조금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종이책이 과거가 됐듯이 전자책도 곧 과거가 될 수 있으며 훗날에는 휴대용 VR리더기가 모든 콘텐츠를 집어삼킬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때도 전자책과 종이책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말과 편지가 지금까지 남아있듯이 말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울리는 “읽기”를 현명하게 선택하고 소비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