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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웅 Jun 06. 2016

내가 전자책 리더기를 쓰는 이유

왜 나는 너를 읽는가?

애플에서 아이패드가 나왔을 때 콧방귀를 뀌었던 게 생각난다. PC와 스마트폰의 중간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킨들이 나오고 한국에서 페이퍼, 샘, 카르타 등 전자책 리더기가 속속히 등장할 때도 난 실소를 머금었다. 멀티미디어와 게임이 플레이되는 총천연색의 태블릿 PC가 나오고 있었고 중국의 어마어마한 생산량에 가격도 매우 저렴해졌기 때문에 아무도 e-잉크 방식의 흑백 전자책 리더기를 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난 당황스러울 정도로 틀렸다. 아이패드가 나온 바로 다음 해 내 손엔 아이패드가 들려있었고 전자책을 읽기 시작한 3년 만에 내 손엔 리디북스 페이퍼가 들려있었다.

오직 책 읽는 기능만 지원하는 디바이스라니?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스마트폰만으로도 충분히 모든 콘텐츠를 소비한다라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자책 리더기가 없으면 책을 못 읽을 정도로 리더기가 익숙해져 버렸다. 예전에는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로도 충분히 잘 읽었는데 지금은 리더기가 없으면 책 읽기를 거의 포기하고 있다. 나의 책 읽기가 이렇게 한 디바이스에 종속되어버린 것에 대해 당황스러웠다.


무엇이 내 독서경험을 변화시켰을까?

이 글을 통해 전자책 리더기를 통한 독서경험을 나눠보려 고한다.


1. 내 손 안의 도서관 (휴대성)
전자책 세트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콘텐츠가 있다면 세계문학전집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전서라 그런지 꽤 두텁고 구성도 100여 권 이상으로 방대하다. 애서가라면 하나쯤 갖고 있는 세트이기도 하고 서재 장식용으로도 많이 사용하지만 실제 휴대하면서 읽기엔 너무 무겁고 어려운 책들이다.

하지만 이런 장서들 100여 권이 190g의 손바닥만 한 기기에 넣고 다닌다는 것은 묘한 쾌감마저 안겨준다. 내 가방 속에 100명의 성인들의 지혜가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마치 내가 그들의 지혜를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 언제 어디서나 그들의 지혜가 필요할 때 에밀의 장 자크 루소나 초인 사상의 니체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의 애덤 스미스가 내 등 뒤에 버티고 서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이 장점은 내가 전자책을 읽는 이유라는 글에도 밝혔지만 여행을 가거나 이사를 갈 때 더 이상 어떤 책을 몇 권을 들고 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접어둬도 된다. 시중에 나와있는 리더기는 기껏해야 200g을 넘지 않고 수천 권을 소유할 수 있는 용량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제 책의 목록만 분류하면 된다.


2. 독서는 집중이 필요한 콘텐츠 (목적성)
출판과 종이책은 해마다 사상 최고의 위기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달기 일 수이다. 책에다 꽤 비중 있는 소비를 하는 헤비 독자들은 이해가 잘 안 될 수도 있지만 예전만큼 신규 독자가 늘지 않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독서인구의 감소는 이유가 있다. 학문적 분류를 떠나 콘텐츠를 단순하게 나누어보면 텍스트, 오디오, 비디오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서비스로 분리해보면 텍스트는 책이고 오디오는 엠넷이나 멜론을 들 수 있으며 비디오는 유튜브와 넷플릭스다.


우리가 이들 콘텐츠를 어떻게 소비하는지 잘 생각해보자. 음악은 모든 행위의 백그라운드 역할을 한다. 책을 볼 때도 카톡을 보낼 때도 페이스북을 할 때도 심지어 일을 할 때도 우린 음악을 들으며 멀티 태스킹 한다.


비디오 또한 마찬가지다. 오디오보다 집중력을 요하지만 우린 비디오를 거의 오디오만 소비하며 다른 작업을 하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가 있다. 이들 오디오와 비디오의 공통점은 바로 멀티태스킹이 가능해 집중력 소비가 적고 둘 다 스마트폰에 최적화되어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텍스트는 어떠한가? 텍스트는 꽤나 집중력을 요하는 행위다 집중해서 읽고 사색하지 않으면 맥락이 파악되지 않고 읽고자 하는 행위에서 뭔가를 얻을 수 없다. 바로 이 바로 이 차이점이 다른 콘텐들에 비해 전용 리더기의 중요성과 활용성이 부각된다. 영상이나 음악은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커버가 가능하지만 책 읽기라는 행위에 스마튼폰은 오히려 방해만 된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톡이나 페이스북 알림 그리고 갖가지 사회적 관계들이 텍스트를 소비하는데 필요한 집중력을 깨트리기 때문이다.



3. 눈이 너무 편한 흑백 세상 (E-잉크)
사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E-잉크라는 단어를 처음 듣는 사람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하지만 적절한 비유를 하자면 E-잉크를 안 써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써본 사람은 없다. 텍스트를 읽기에 최적화가 되어있는 이 패널은 눈을 굉장히 편하게 해준다. 물론 종이 인쇄물보다 편하다 할 수 없지만 일반 모니터나 스마트폰에 비하면 그 편리함은 비교가 불가하다.

현재는 종이의 영역인 300 PPI의 해상도를 지원하고 컬러 e-잉크도 꾸준히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스마트워치나 플랙서블 패널에도 속속히 활용되고 있는 중이다. 전자책 리더기를 사용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가장 강력한 이유는 역시 e-잉크의 편리함일 것이다.


물론 앞으로 e-잉크가 모든 모니터 화면을 대체하진 않을 것이고 그럴 수도 없다. 하지만 텍스트를 소비하는 기능성 페널로는 이를 따라올만한 제품은 없다고 본다. 스마트폰의 케이스에 e-잉크를 착용한 러시아의 요타폰처럼 다양한 디바이스와의 콜라보로 마니악한 인기를 구사할 것이다.

참고로 e-잉크 패널은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잘 깨지는 단점이 있다. 사용하는데 큰 무리는 없지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다루듯 막 다루게 되면 깨질 확률이 높으니 케이스나 보호재를 사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아직 크게 대중화되지 않은 패널임으로 보완점들이 많이 존재하나 전자책 리더기로 사용자가 많아지는 추세임으로 차차 내구성이 보완될 것으로 예상된다.)


4. 책 읽기를 넘어 책 읽기를 보여주다. (액세서리)
스타벅스의 인기는 단순히 커피의 맛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 그 정도 맛을 내거나 더 월등 한 경쟁사들도 이미 여럿 있었다. 스타벅스는 단순히 커피만 판게 아니라 커피를 마시는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팔았다. 그 라이프스타일의 정점은 바로 녹색 로고의 빈티지한 테이크아웃 컵이다.


과거의 책 읽기를 보여주는 행위는 독서토론모임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현대의 독서가들은 책 읽기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인식하고 있고 자신의 책 읽는 모습에 많은 신경을 쓰고있다. 이에 반응하여 최근 나오는 전자책 디바이스들은 스타일리시하게 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리디북스의 페이퍼가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우리는 보통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전자책을 꺼내보는데 그 행위 자체가 라이프 스타일이고 폼이다. 폼은 과거에 값싼 이미지로 인식되었을지 몰라도 현대인들에게 폼이란 나를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항목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흔히 삶의 세 가지 기본 요소를 의식주라 칭하는데 앞으로 의식주+폼(스타일)이라고 불리어도 무방할 정도로 폼 비즈니스가 뜨고있다. 폼의 대표적인 주자들은 바로 스타벅스, 이케아, 무인양품, 츠타야가 있다. 이들의 비즈니스를 보면 왜 폼이 중요한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스마트폰이 아니라 전자책 리더기를 꺼내 읽는 자신의 모습이 스마트폰에 코를 박은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가 되어 으쓱해진다면 당신은 이미 책 읽기의 안과 겉을 사랑하는 힙스터다.


5. 취향을 존중받다. (프라이버시)
전자책의 가장 강력한 장점은 바로 취향 존중이다. 보통의 책들은 표지라는 최대한 화려한 옷을 입고 존재감을 뽐내곤 한다. 눈에 띄어야 픽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공장소에서 책을 꺼내 읽을 때 짐짓 책의 표지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자책은 다르다. 디바이스라는 껍질에 쌓여 보이는 거라곤 글과 여백뿐 그 사람이 무슨 콘텐츠를 보는지 알 수 없다. (그 와중에 무얼 읽는지 장문의 텍스트를 넌지시 같이 읽는 사람이 있다면…)

                              무얼 읽던 니 자유


이는 스마트폰도 동일한 장점을 갖는다. 여기서 포인트는 내가 무엇을 읽는지 표지로 판단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전자책 디바이스로 무언가를 읽고 있다는 행위로 판단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자책 리더기의 어떤 점이 나에게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나누어봤다. 전자책 리더기가 확실히 편리하고 가볍고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읽기를 대체할 거란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다. 단지 이 시점에서 신기술도 아니고 팬시 한 능력을 가진 기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성장하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정리하고 싶었다.


현재는 리디북스의 페이퍼 한국이퍼브의 크레마 그리고 교보문고의 샘이 훌륭한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과거에도 수많은 리더기들이 존재하였고 시장 형성을 도전해왔었다. 지금에 와서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은 디지털 에이지들이 드디어 소비층으로 조금씩 올라고 있다는 것과 디지털에 대한 편리함이 디지털에 대한 반감을 조금씩 역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도 음악도 모두 대중성을 갖춘 훌륭한 콘텐츠들이지만 “글”이야말로 숭배에 가까운 존재감을 갖고 있었다. 글이라는 건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선택받은 소수의 귀족의 것이었고 아무나 읽고 쓸 수 없는 문화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 문화가 그들이 가볍게 여기는 디지털의 영역으로 넘어오는데 가장 많은 반발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디지털은 곧 "누구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오래된 콘텐츠 소비자인 독서가들의 소비습관이 드디어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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