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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웅 Jan 30. 2017

외로움에 관하여

고독으로 도시를 위로한 별들의 이야기

우리는 언제 외로움을 느낄까?


퇴근 후 집에서 홀로 캔맥주를 마실 때

새벽에 자다가 문뜩 울컥함에 깨어날 때

홀로 있던 카페가 타인들의 소음으로 휩싸일 때

좋은 음악, 좋은 음식, 좋은 술, 좋은 장소에 있을 때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그 순간 속에서도


직장을 위해 또는 꿈을 위해 올라온 도시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고독은 꼭 홀로 있다고 해서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수백만의 인구가 밀집한 도시 속에서 느끼는 “도시 고독”은 한 겨울밤 추위를 이겨내려고 울음 짓는 길 고양이와 같다.


나는 고독을 찬성한다.

고독을 통해 내 영혼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방향은 흐트러지지 않았는지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살리는 일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자신을 고독으로 내몰기도 한다. 고독 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내적 고독이라는 것을 서술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 감정을 붙잡을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하겠다. 살아갈만한 세계에서 내몰려 침묵에 잠길 때, 현실 세계를 노래하는 감정을 붙잡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 (외로운 도시 15p)


단 그 고독의 여정에는 시작과 끝이 있어야 한다. 과도한 고독의 몰입은 영감이 아니라 병이고 현실을 도피의 피난처가 된다. “스스로를 잠식하는 일이다”


고독에는 개인의 고독과 사회의 고독이 있다. 고독을 선사하는 주체가 자기 자신인지 사회인지에 따라 구별된다. 보통은 스스로 건강한 고독을 선택하곤 하지만 사회적 고독에 휩싸여 배척당하는 아웃사이더들도 무수히 존재한다. 우리는 흔히 그들을 소외계층 혹은 사회적 약자라 부른다. 스스로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도시 고독"을 느끼는 우리 모두가 사회적 약자이다. 우리에게는 연대가 필요하다.


이 글을 빌어 당신의 고독에 어울리는 친구들을 소개해주고 싶다. 이들은 타의적인 고독을 자의적으로 승화시킨 B급 천재 미친놈들이지만 도시를 밝히는 소중한 친구들이기도 하다.


1. 본격 외로운 도시 화가 E모씨

평범한 광고 회사의 사원이었던 그는 대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림을 하기 위해 상경했지만 도시는 철저히 돈에 논리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풍부하고 고상한 트렌드를 따르고 싶지 않았고 계속 자신만의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유행을 따르지 않는 것은 곧 고독을 선택하는 일이고 사람들은 내성적인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고독한 그에게 운명 같이 아내가 찾아왔다. 그녀는 완벽한 타인이면서 친구였고 그에게 관계를 통해 고독을 알려줬다. 그는 결국 도시 속 타인들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탁월한 작가로 쓱(SSG) 자리 잡는다.

그는 바로 “에드워드 호퍼” 

호퍼는 그림으로 고독을 설계했지만 사람들은 그 이상의 고독을 느꼈다. 그의 그림은 고독의 촉매제와 같다. 그림의 구성부터 색감까지 완벽한 외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그림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은 광고와 영화 음악의 모티브로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다. 이 그림에 헤밍웨이의 글을 덧 붙인다면 완벽한 고독이다. (위스키 한잔 준비하시기를)

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 (A Clean, Well-Lighted Place) 어니스트 헤밍웨이"나는 카페에 밤늦게까지 머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편이야." 나이 든 웨이터가 말했다. "잠들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들, 밤에는 불이 켜져 있어야 하는 사람들 편이라고."


호퍼가 묻는다 내 그림이 당신에게 상처를 주었나요? 치유를 주었나요?

우리는 우리의 고독을 똑똑히 쳐다볼 용기가 필요합니다.


2. 처음부터 끝까지 삶의 악동이었던 A씨

아무도 너를 이해해주지 않을 거야. 네가 하는 말을 듣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어. 넌 왜 적응을 못하니? 넌 왜 그렇게 유별나게 굴어? 사회는 A씨에게 아무렇지 않게 툭툭 이런 말들을 던지곤 했다. A씨는 가난했고 말을 더듬었으며 내성적이었다. 게다가 타고난 생김새도 평범하지 않으니 (부정적으로) 그에게는 무기가 필요했다. 독특한 자신만의 표현 혹은 표출을 항상 고민했다. 어느 순간 그는 유명해졌지만 결국 그의 영원한 친구는 “녹음기”하나뿐이었다.


A씨는 사람을 사랑하는데 이성과 동성을 가리지 않았다. 그의 풍부한 관심은 어느 하나를 사랑하기에 너무 차고 넘쳤으므로… 그는 1을 단지 1이라 규정함으로 생기는 소외에 대해서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바로 “앤디 워홀”

낯가림이 심한 이민자의 아들 앤디 워홀은 캠벨 수프와 코카콜라 그리고 메릴린 먼로를 그려낸 팝아트의 대부다. 상품을 찍어내듯 그는 그의 예술을 찍어냈지만 그의 예술 가치는 오히려 상승했다. 좋아하는 것을 찍어 내는 것 그리고 편견 없이 모두가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에 대해 그는 가치를 느꼈다.

동일하게 찍어낸 캠밸스프캔과 친숙한 코카콜라의 이미지는 그에게 “같음”이라는 안정감을 주었다. 그것은 곧 이민자, 장애를 가진 자, 남들과 다른 이방인들에게도 “같음”이다. 워홀은 쉽고 편리한 대중 예술을 선사함으로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고자 하지 않았을까…

살아오면서 언젠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고 막역한 친구를 얻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함께 있을 사람을 한 명도 얻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 가 가장 혼자 있기 싫다고 느낀 바로 그 순간 나는 정말로 혼자였다, 그런데 내가 혼자인 게 더 낫다고, 자기 고집을 털어놓는 사람을 곁에 두지 않는데 낫겠다고 판단하는 순간,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나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나 자신의 의지로 외톨이가 되자마자 “추종자”라 할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워홀이 말한다. 당신은 알고 있는 저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이에요. 알고 있는 것들 또한 맞는 것일 수도 있고 틀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건 당신이 당신 자신을 알고 있는 것과 같아요.


3. 내가 제일 불행해 D씨

D씨의 삶은 이름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케이블 TV 막장 드라마급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가난한 부둣가 출신이며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다. 어머니를 찾아 도시에 갔지만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게이였고 커밍아웃하기 전까지는 심리적으로 매우 위축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세상이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대변했다.


“나는 항상 내 자신이 이상하다고 여긴다. 그리고 세상에는 사회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 사이의 말해지지 않은 연대가 있다.”


그는 바로 “데이비드 워나로위츠”

비극적인 가족생활의 조건이라는 책이 있었다면 아마 그를 보고 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삶과 작품은 어두웠고 더러웠고 불규칙적이었지만 강렬했고 색달랐고 의미 있었다. 불편함을 직시하는 예술로 알려진 그는 저항과 연대 그리고 동성애의 아이콘이었다.

그는 숨기는 것, 약해진 것, 피하는 것(섹스, 세균, 동성애, 종교)을 표현함으로 현실을 직시하게 하려고 했다. 마치 선언을 하기 전 그가 매우 약했던 것을 나무라듯 솔직히 표현하고 강해지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그 메시지는 오늘날 많은 소외계층이 이어받아 자신들의 캐릭터로 사용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소외감을 덜 느끼게 하고 싶어, 나에게 제일 의미 있는 건 그거야, 우리는 소외감을 덜 느끼게 해줄 만큼 충분히 열려있음로써 모두에게 서로가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어” (외로운 도시 189p)
80년대 뉴욕 게이 암이라고 불리던 에이즈의 창궐로 많은 사람이 감염되고 죽어갔다. 간호사들은 그들을 간호하기를 거부했고 장의사들은 시신을 매장하려 하지 않았다. 정치가와 종교 지도자들은 그들을 위한 기음 모금과 교육의 기회를 끈질기게 차단했다.
그때 벌어진 일은 낙인찍기(스티그마)의 결과였다. 그것은 사회가 비인간화하여, 적격자가 아니라고 인지된 사람들, 원치 않는 행동과 특질과 속성을 내보이는 사람들을 배제하기 위해 작동하는 야만적인 절차였다.
시간이 흐르며 "스티그마"라는 단어는 원치 않는 모든 차별성을 가리키는 지시 기호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원치 않는다는 것은 곧 사회 일반이 원치 않는다는 말이다.

워나로위츠가 묻는다. 사회적인 관념과 규범으로 당신의 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나요? 그의 죽음은 당연하고 그저 지켜보기만 할 건가요?


4. D의 불행함이 가소로운 H씨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일곱 살이 되기도 전에 이미 두 부모를 잃었다. 열 살이 되던 해 정신지체 판정을 받고 정신 병원에 가야 했으며 고아원과 병원을 전전하던 중 드디어 병원 잡역부로 일하게 되는데 그 일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일이 되었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철저히 자신의 세계에 몰입했다. 그는 전업작가 아니었다. 오롯이 독학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했으며 방대한 작품 활동을 했다. 흥미로운 건 살아있는 동안에 한 번도 출품이나 출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의견이 두려웠던 것일까 누군가의 의견도 필요가 없었던 것일까…


그는 바로 “헨리 다거”

헨리 다거는 적어도 남들이 보기에는 충분히 불행한 삶을 살았다. 부모가 없고 친구가 없어서 또는 가난해서 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의 작품을 생전에 인정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그는 오랜 시간 공들인 작품들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은 그가 죽고 나서 집을 정비하기 위해 들어간 집주인에 의해 발굴되었다. 헨리는 예술 교육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아웃사이더 아티스트였다. 그는 신과 사회를 미워하기도 했고 용서하기도 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창작하며 표현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에게는 일종의 의식이었고 더 미치지 않기 위한 수단이었다.


클라인이라는 학자는 다거의 행동을 일종의 자가 치유방법이라고 표현했다. 타인과의 교류가 거세당한 사람에게 남은 건 자기와의 교류뿐이다.


헨리 다거는 묻는다. 당신의 외로움에 스스로 미치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다거의 작업실


외로운 도시 속 빛나는 그들의 연대

이들의 공통된 키워드들은 바로 사회적 약자로서의 외로움이다.  

가난, 차별, 호모 섹슈얼, 예술, 반항, 도시라는 외로움에 맞서 그들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표출하였고 자신과 같은 이방인들을 위안하려고 했다. 사실 누구보다 위로받고 싶었던 건 그들 자신이었을 것이다.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이 바로 스스로가 살고 이방인들 또한 살 수 있는 방법이었다. 끊임없이 관심을 주고받는 상호관계만이 영혼의 건강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호퍼는 도시의 외로운 사람들 그리고 그의 부인과 연대했다.

앤디 워홀은 그의 작업실 팩토리 속에서 예술인들과 연대했다.

워나로위츠는 그의 동료와 모든 소수자들과 연대했다.

헨리 다거는 스스로와 연대하며 고독과 싸웠다.


이들의 작품은 철저히 고독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도시의 고독을 다시 구원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자신들을 위한 일이기도 했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이들을 외로운 도시의 친구로 맞아들여보자. 사적인 고독을 향유하고 정치적인 고독에 연대하자. 우리 모두는 지독한 개인주의자임을 인식하자. 하지만 타자와의 연대 없이 온전한 개인도 의미가 없음을 깨닫도록 하자.

참고한 도서, 추천하고 싶은 도서, 그들의 내밀한 친구가 되기를 원한다면 일독을 권한다.

전자책 "외로운 도시, 올리비아 랭" : http://bit.ly/2jsi4R2

예술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기묘한 능력이 있다. 모든 상처에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모든 흉터가 추한 것은 아니다. 예술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줌으로써 상처를 치유한다.
고독이 반드시 누구를 만남으로써 치유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두 가지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신을 친구로 여기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개인으로서의 우리를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스티그마와 배제라는 더 큰 힘이 낳은 결과임을, 그래서 저항할 수 있었고 저항해야 하는 대상임을 하는 대상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상처가 켜켜이 쌓인 이곳, 너무나 자주 지옥의 모습을 보이는 물리적이고 일시적인 천국을 함께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 서로 연대하는 것, 깨어있고 열려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감정의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외로운 도시 3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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