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세대의 블랙 코미디 "일의 기쁨과 슬픔"
오늘은 일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책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이미 판교 소설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던 단편 소설입니다. 이 소설이 출판사의 사이트에 연재가 되고 무려 40만 건의 누적 조회 수를 올렸다고 하는데요.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듯한 이 소설을 카카오톡과 SNS를 통해 서로 공유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벤처기업 종사자는 약 70만 명이고 그중에 7만 명이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판교에는 대한민국의 유명 IT기업들이 즐비하고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유니콘이 되기 위해 욕망을 불태우는 곳이기도 하죠. 스타트업은 기존에 없던 서비스에서 주로 탄생하기 때문에 기술의 변화에 민감하고 적응이 빠른 젊은 청년층이 주로 일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밀레니얼 세대의 직장인을 표현하는데 판교는 꽤 훌륭한 무대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5년 전만 해도 미생에 나오는 무역회사 직원 장그래가 그 시대의 직장인들을 대표했었는데요. 이제는 판교의 스타트업 매니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판교 소설이라고 해서 판교 다니는 사람만 봐야 되냐 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첫 출근, 사내연애, 직장동료의 청첩장 등 이 시대의 직장인들이 생애 주기에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생생하게 다루고 있어 회사를 다녔던 분이라면 누구나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소설입니다. 이 책은 회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공감 상황으로 관객을 잔뜩 끌어들였다가 마지막에는 아이러니컬한 블랙코미디로 마무리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이러니함은 흔히 웃프다고 말하는 상황에 주인공이 내몰리는 것을 말합니다. 관객은 자신이 겪을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긴장을 하면서 읽지만 결국 자신의 상황이 아님을 안도하고 주인공이 겪는 불행에 실소를 터트리게 되는데요. 바로 이 절묘한 웃음의 포인트가 이 소설의 매력입니다.
아이러니 : 당연히 기대되었던 사건이 일어나지 않음으로 당혹감과 실망감을 주는 상황
저는 오늘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세 개의 단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들 단편은 각각 스타트업과 청첩장과 아파트라는 배경에서 시작되는데요. 밀레니얼 세대의 직장인을 표현하는데 이만큼 적절한 키워드도 없는 것 같습니다. 시간 관계상 세 편을 골랐지만 나머지 에피소드들도 하나같이 흥미로우니 꼭 읽어보길 추천합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
“합시다. 스크럼” 스크럼은 스타트업 구성원이 각자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현황을 짧게 공유하는 보고 문화입니다. 단편의 가장 첫 번째 단락을 읽는데 제가 바로 전에 다니던 스타트업이 떠올랐습니다. 당시에 대표님도 실리콘밸리에서 유행하는 경영문화를 바로바로 자신의 회사에 실험하는 스타일이었는데요. 당시 그 회사에 면접을 볼 때 대표님은 이런 말을 제게 해주었습니다. “자네 나와 같이 이 세상을 바꿔 보겠나?” 정말 패기 넘치는 제안에 홀딱 4년의 청춘을 바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대사는 대부분의 스타트업 대표들이 입사 지원자를 꼬실 때 쓰는 단골 표현이었습니다.)
제가 취업하던 당시에 스타트업이 굉장히 유행이었습니다. 페이스북과 애플의 창업 스토리가 찬양되었고 차고에 창업하여 대박을 터트린 청년들의 스토리를 띄워주는 시기였습니다. (대표적으로 스티브 잡스가 있죠.) 국가에서는 예비 스티브 잡스를 양산하기 위해 창업 지원금을 뿌리고 있었는데요. 주체적으로 인생을 살고자 하는 젊은 창업가들이 스타트업을 차리거나 멤버로 합류하며 꿈을 키워나갔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서비스들이 튀어나왔는데요. 낙후된 오프라인 서비스들이 순차적으로 온라인 애플리케이션으로 옮겨 오고 있었습니다. 식당의 전단지가 배달의 민족으로 들어오고 부동산은 직방, 택시는 타다, 은행은 토스 이러다가 청소 도우미나 아이돌보미를 이어주는 스타트업 서비스가 생기겠구나 싶었는데 벌써 이런 기업들이 나와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그 당시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대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을 쌓으며 다년간 대기업만 노리는 사람, 노량진에서 재수, 삼수를 하며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 관심사는 접어두고 최대한 초봉이 높은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사람, 마지막으로 회사라고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관심 있는 분야의 스타트업에 지원하는 사람, 당시에 스타트업은 상장해서 거액의 스톱 옥션을 받거나 다른 회사에 좋은 값에 팔려 직원들에게 큰 보상을 하는 디즈니 스토리가 유행이었는데요. 많은 지원자들이 희망찬 꿈을 꾸고 스타트업에 분골쇄신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 또한 스타트업의 대박을 쫓는 유형이었는데요. 당시에는 주체적으로 일하고 싶어서 스타트업을 선택했다고 안위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상황이 절박해 내몰렸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에 소개되는 스타트업의 이야기가 마치 스스로 삶을 돌아보는 것 같아 더 공감이 되었습니다.
초기 스타트업의 구성원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1.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실시간으로 다운로드하여 적용하는 무한 긍정의 아이콘 “대표님”
이분은 주로 서비스의 그림을 그리며 현장감독 역할을 합니다. (회사가 커져도 모든 의사 결정을 참견하려고 하는 게 가장 큰 약점입니다.)
2. 백 줄의 코드를 짜던 한 줄의 코드를 짜던 밤낮없이 고뇌에 휩싸이던 “개발자님”
이분은 대표가 그린 이상한 그림을 해석하며 디지털 세계에 서비스라는 뼈대를 세웁니다. (경이로운 능력을 보입니다. 아티스트와 대화하듯 섬세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합니다.)
3. 영업, 시장조사, 경영지원, 버그테스트, 가끔은 디자인이나 영상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기타 등등 “매니저님”
이들은 대표와 개발자가 만든 서비스의 뼈대에 살을 붙이고 화장을 해주며 최대한 인간답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회사와 밀당을 잘합니다. 회사도 미련이 없고 본인도 회사에 미련이 없습니다.)
초기 스타트업은 각 포지션별로 전문성 있는 인력을 배치할 수 없기 때문에 보통 제너럴 한 인재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합니다. 개발자만은 예외인데요. 개발은 기술자의 영역이고 숙련된 사람을 구하기 어려워 희소합니다. 더군다나 이들은 대표의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요. 이런 이유로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이 메인 개발자를 애지중지하기 마련입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을 소개하는데 앞서 스타트업 구성원에 대한 얘기를 먼저 했는데요. 이야기에 등장하는 스타트업 대표, 서비스를 책임지는 만능 개발자 그리고 그들을 조율하며 서비스를 만들어나가는 매니저 안나가 현실의 스타트업 구성원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인 안나는 우리 동네 중고 마켓이라고 불리는 우동마켓에 다니고 있습니다. 위치기반으로 중고 거래를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스타트업입니다. 현실에서는 저도 자주 사용하는 당근 마켓이라는 서비스와 동일합니다.
어느 날 이 서비스에 거북이알이라는 사용자가 등장해 하루에도 수십 개씩 중고상품을 올리며 거래를 합니다. 페이지를 세 번이나 넘겨도 거북이알 게시글만 있을 정도이니 정상적인 서비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죠. 서비스에 피해를 끼치는 불량 사용자라면 계정을 중지시키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유저의 프로필에는 좋은 거래 해줘서 감사하는 감사 인사로 빼곡하다는 것입니다. 피해 본 사람도 없고 오히려 거북이알 때문에 서비스의 거래 성공률이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우동마켓의 대표는 거북이알을 이해할 수 없는 불량 사용자로 치부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IT 스타트업 대표를 아주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들은 보통 자신이 그리는 그림대로 서비스가 운영되지 않으면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제 불가능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면 결과가 좋고 나쁨을 떠나 오류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좌우지간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 계속 속을 끓이기가 싫어 결국 매니저 안나에게 특별임무를 요청합니다.
“누군가 거북이알을 만나보면 어때요? 안나가 가볼까? 거북이알이랑 만나서 아무거나 거래 좀 해봐. 아, 물론 산 물건은 안나가 가져도 돼요.” 안나는 딱히 내키지 않지만 어뷰저로? 오해받는 거북이알을 만나기 위해 메시지를 보냅니다. “판교에서 직거래 가능할까요?, “가능합니다. 점심시간에 만납시다.”
약속은 순식간에 잡혔고 안나는 드디어 거북이알을 만나게 됩니다. 거북이알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중고품이 가득 실린 포터를 몰고 다니는 무시무시한 수염의 아저씨? 결혼식날 약혼자가 오지 않아 미리 사두었던 혼수용품을 처분하는 안타까운 신부? 도박빚을 갚기 위해 회사 복지포인트로 산 물건을 현금화하는 회사원? 어떤 상상을 했던 기구한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하루에 수십 개의 중고상품을 팔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결국 만능 매니저 안나는 어뷰저의 정체를 성공적으로 파악합니다. 거북이알은 일의 기쁨을 느끼던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회사는 그녀에게 슬픔으로 보상하였고 결국 누군가에게 오류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거북이알의 사연이 궁금하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벤처회사가 즐비한 판교에 대해 사실적으로 묘사합니다.
너무 크고 현대적인 건물로 가득한 판교, 그 건물 안에 잔디를 깔고 안마의자를 두고 다양한 스낵을 제공하며 사람이 아닌 사원으로서의 복지를 강조하는 회사들, 모두 어딘가의 소속으로 바삐 움직이지만 정작 "나"를 잃어버리기 쉬운 이 곳 판교, 일정한 시간이 되면 사람으로 돌아와 지하철로 향하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에즈라 파운드가 표현한 군중들이라는 시가 연상되어 소개해드립니다.
<지하철 정거장에서> - 에즈라 파운드
군중 속에서 홀연히 피어난 이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에 달린 꽃잎들.
In a Station of the Metro - Ezra Pound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a wet, black bough.
우리에게 일은 단지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행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최근 사회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며 일의 의미에 대해 과한 무게감 부여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은 단지 삶과 연동되는 슬픈 굴레입니다. 소소한 기쁨을 찾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큰 용기를 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바로 이런 아이러니함을 버무리고 있습니다. 본질을 알고 나면 위대한 것이라고는 남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이든지 너무 숭고하게만 생각하면 결국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잘 살겠습니다>
“이 사람이 결혼한다면 내가 기꺼이 결혼식에 갈 것인가?”
결혼을 앞둔 주인공은 결혼식 하객명단의 기준을 명확히 정합니다. 그런데 이 명단에 절대 포함되지 않는 회사 동료 빛나 언니가 갑자기 청첩장 달라며 조르기 시작하며 이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결국 주인공은 빛나 언니에게 13,000원짜리 특 에비동을 사주며 청첩장을 건네었는데요. 황당하게도 빛나 언니는 그녀의 결혼식에 오지 않았습니다. 주인공은 약이 올랐지만 무슨 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며 넘깁니다. 그런데 어느 날 빛나 언니는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자신이 선물해주면 좋을 결혼 선물을 고르라고 합니다. 주인공은 대국민 평균 축의금 금액인 5만 원 한도에서 선물을 고르다 이내 포기하고 맙니다. 5만 원 이하로 사자니 손해 보는 것 같고 5만 원 이상을 요구하는 것도 너무 과한 것 같다는 마음에 갈팡 질팡하는데요. 사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의 요청으로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겁니다. 결국 그녀는 빛나 언니에게 밥이나 한 끼 사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렇게 그녀는 언니에게 25,000원짜리 한정식을 잘 얻어먹습니다. 그러던 말입니다. 빛나 언니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주인공에게 펀치를 날리는데요. 그녀는 어느 날 자신의 키보드 밑에 깔려 있는 빛나 언니의 다소곳한 청첩장을 발견합니다. 정식으로 밥을 사며 초대하는 것도 아니고 피자집 전단지처럼 덩그러니 놓여있는 청첩장에 주인공은 끝내 이성을 상실합니다. 빛나 언니에게 인생을 가르쳐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주인공은 빠르게 계산을 시작합니다.
25,000 원(축의금 대신 먹은 밥값)-13,000 원(내가 청첩장 주면서 산 밥 값) = 12,000 원
그녀는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을 내는 대신 빛나가 언니가 받아야 할 (정확히 계산된 금액만큼) 선물을 사서 전달하기로 합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남편은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할 일이냐며 그녀를 나무라는 반응을 보이는데요. 주인공은 여기서 명대사를 읊습니다.
“빛나 언니한테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 원을 내야 오만 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 이천 원을 내면 만 이천 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 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
결국 주인공은 결혼식 전날 빛나 언니에게 선물을 전달합니다. 언니가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선물을 전달받은 언니의 반응에 그녀는 당황하고 맙니다. 순수가 과한 건지 눈치 없음이 과한 건지 오락가락하는 빛나 언니 그녀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1. 축의금을 내야 한다면 : 대한민국 평균 축의금 5만 원을 내고 다음 결혼식에 5만 원을 받는 사이
2. 생일 선물을 준다면 : 그 사람이 나에게 보여준 물질적 호의(80%) + 내가 그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20%) = 다음에 내가 선물 받을 때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으로 주고받는 사이
3. 식사를 얻어먹었으면 : 후식 커피 정도는 대접하는 사이 (7,000원 이하의 밥은 바나프레소, 슈퍼커피 / 10,000원 이상의 밥은 스타벅스 커피)
4. 현금으로 붕어빵을 네 마리를 샀으면 : 두 마리씩 나누고 금액의 반을 계좌 이체하는 사이
서로 경제적인 여유가 없음을 이해하고 더치페이로 배려하는 밀레니얼 세대, 이른 독립생활을 통해 철저히 개인 중심으로 소비와 지출을 하다 보니 타인에 대한 지출이 어색하기만 합니다. 어느 순간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은 눈치가 없는 사회 부적응자나 나의 재산에 해를 끼치는 부정적인 사람 정도로 여겨지게 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빛나 언니는 단순히 너무나 순수하고 사랑이 가득했던 사람이 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설령 그렇다한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빛나 언니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아마도 그녀가 그리고 우리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을 애써 버티며 살아왔기 때문이겠지요.
<도움의 손길>
“어떻게 계속하시겠어요?”
그녀는 자신의 외투 자락을 내려다보고 단추를 잠그면서 무심히 말했다.
그러나 그 말에는 누가 봐도 완벽하게 일을 해낸 사람의 은근한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전세를 전전하던 부부는 7년 만에 아파트를 구입합니다. 평생 세입자로 살아오다 인생에서 처음 집주인이라는 타이틀을 따낸 것입니다. 인테리어 회사를 통해 새집을 디자인하고 들여놓을 가구도 허투루 고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부부는 서로의 직장에서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집을 청소하고 관리하기가 버거웠는데요. 좀 더 안락한 생활을 위해 청소를 돕는 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러볼까 고민합니다. 부모 세대에서 도우미 아주머니를 부르는 일은 남부럽지 않게 돈을 버는 부잣집에서나 가능한 서비스였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은 자신이 큰 부자도 아닌 데다가 또 돈으로 인력을 빌려 개인 생활을 도움받는 것이 아무래도 탐탁지 않아 주저하는데요. 일이 바빠 집을 잘 챙기지 못하는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이미 도우미 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에 힘입어 서비스를 신청하게 됩니다.
요즘은 애플리케이션으로 손쉽게 홈클리닝 서비스를 연결 받을 수 있습니다. 몇 번이고 도우미를 변경하다가 서비스가 만족스러운 도우미를 만나면 업체에 수수료를 내고 일정 기간 전담 계약을 하는 형태입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세 번 만에 끝내주게 청소를 해주는 아주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말이 조금 많고 제멋대로 이런저런 충고를 하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청소를 허투루 하지 않는 아주머니가 마음에 들어 전담으로 일하자고 제안합니다. 더군다나 서비스 업체에 신고하지 않으면 8만 원이라는 수수료를 내지 않는 것도 협의해주는 융통성 있는 분이었죠.
하지만 서비스가 거듭될수록 평소보다 청소의 질이 떨어지고 아주머니의 출근 시간은 점점 늦어집니다. 버스를 놓쳤다거나 손주를 봐줘야 한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더군다나 그녀는 30분을 늦게 와도 퇴근은 정시에 칼같이합니다. 주인공은 아주머니에게 어려운 사정이 있겠거니 하며 불만을 참습니다. 그리고 얼마지않아 다음 청소일이 찾아왔는데요. 거실장 밑이나 화장실 청소 상태가 견딜 수없을 정도로 엉망인 바로 그날 주인공은 결국 아주머니에게 싫은 소리를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불평을 꺼내려던 찰나에 난데없이 아주머니의 통보를 받습니다.
“새댁, 나 다음 주부터 못 와요.”
“그리고 이런 얘긴 안 하려 그랬는데.”
“점심시간 끼어 있으면 대충이라도 먹을 거는 주고 그래야 아줌마들이 좋아해. 새댁이 잘 몰라서 그러나 본데.”
벙찐 주인공은 손가락을 비비꼬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이 둘은 어디서부터 꼬였던 것일까요? 도우미 아주머니를 부른 것? 아주머니의 점심을 챙겨 드리지 못한 것? 연회비를 아끼려고 업체와 계약하지 않은 것?
이 이야기는 노동을 제공하는 세대와 노동을 소비하는 세대의 충돌을 보여줍니다. 최근 건장한 노년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들은 인력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장 큰 세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소비의 중심이 되어 가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들은 자신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부모 세대의 시간을 사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IT 기술의 발전으로 수요와 공급은 더욱 원활해졌고 덕분에 큰 부자가 아니어도 서로 원하는 조건에 노동을 교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둘은 어디서부터 꼬였던 것일까요? 도우미 아주머니를 부른 것? 아주머니의 점심을 챙겨 드리지 못한 것? 연회비를 아끼려고 용역업체를 부르지 않은 것?
노동을 소비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줄 건 주고받을 건 받는 합리적인 계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노동을 제공하는 부모 세대는 인간 적으로 이렇게까지 했으면 알아서 이 정도는 챙겨줘야지 하는 “인지상정”식 계산을 합니다. 하지만 두 세대가 가지고 있는 인지상정의 기준이 매우 다르다 보니 서로가 서로의 세대에게 굉장히 뻔뻔해지는 상황을 종종 마주하곤 합니다.
여기 나오는 주인공은 자신이 당연하게 받아야 하는 서비스에 대해 엄격함을 요구하지만 이 글에 나오는 아주머니는 서비스 제공자와 인생 선배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아주머니가 보여주는 선을 넘는 행동에 약이 바싹 오르지만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천역 덕스러운 어른들의 모습과 겹쳐 실소를 머금게 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한 가지 실수를 한 게 있다면 바로 업체를 통해 정식 계약을 맺지 않은 것입니다. 계약은 서로가 인지상정으로 생각하는 기준이 우선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서비스 기준에 따르기 때문에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단지 계약으로 묶여야만 간신히 언약을 지키는 모습이 한없이 인간 다워 조금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오늘은 일의 기쁨과 슬픔에 수록되어 있는 3편의 단편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우리가 겪었던 또는 우리가 겪을 수 있었던 일들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었는데요.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 있을법한 비현실적인 주인공들의 (거북이알, 빛나 언니, 도우미 아주머니) 활약으로 사회와 우리 세대를 비틀어볼 수 있어서 즐거웠던 소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위치해있나요? 스타트업? 청첩장? 아니면 아파트를 고민하고 있나요? 어떤 과정에 있던지 슬픈 아이러니에 빠지지 않고 잘 이겨내기를 바랍니다.
한국문학이 너무 입지적인 과거 세대의 작가들과 또 그들을 존경하는 젊은 작가들의 무거운 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목마름이 있어왔는데요. 작고 개인적인 자신의 이야기를 모아 하나의 세대를 재치 있게 표현한 일의 기쁨과 슬픔을 환영하고 싶습니다.